하나님의 얼굴을 뵈옵자

 주일설교 2008-05-25 ♣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자\"


시 11:1-7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국회의원 공천을 받기 위해서 각당의 실권자의 얼굴을 뵈러 아침부터 그 집 문앞에서 문전성시를 이루던 때가 있었습니다. 높은 사람의 얼굴을 뵈옵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분께 부탁을 드리고, 사정을 하고, 도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뵙다\'라는 말은 웃어른을 대하여 보는 것을 말하지요. \'뵈다\'라는 말보다 더 겸양의 뜻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지체가 높고 귀한 분을 찾아가 뵙는다\'라는 의미인 \'알현하다\'라는 말이 있지요.

   웃어른을 찾아가 뵙는 것은 아랫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요 예절입니다. 부모님을 찾아가 뵙고, 스승을 찾아가 뵙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인사도 드리고 감사도 표현하고 그리고 부탁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지를 만드시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믿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기도를 응답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이러한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얼마나 뵙고 있습니까? 뵙기 위해서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윗 사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전화로 도움을 요청합니까? 전화하지 않습求? 편지로 요청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직접 찾아가서 설명을 드리고 사정하고 부탁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일뿐만 아니라 윗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윗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자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찾아 오기를 원하십니다. 잠언 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그러한 자들을,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여기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시편 17편을 쓴 다윗은 참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아무 죄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여 신발도 신지 못한채 궁궐에서 도망을 나와 피신을 했어야 했습니다. 많은 원수들로 부터 위협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다윗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를 열망했습니다. 왜 다윗이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기를 갈구했을까요? 하나님은 다윗의 어려운 형편을 그 누구보다더 더 잘 알고 계시고, 보살피시고 지겨 주시는 전정한 피넌처가 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뵈옵다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구약의 대제사장이나 되는 그러한 분이나 하나님을 뵈옵지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뵈올수 있겠는가. 그러나 신약의 시대는 다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휘장을 찢어셨습니다. 막힌 담이 무너 졌습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을 뵈올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뵈올 수가 있을까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방법은 바로 예배를 통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왜 예배가 중요합니까?

첫째, 예배는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내가 시간이 나고, 내가 기분이 좋을 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내 중심의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나의 형편과 상황과 처지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뵙기 위해서 나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보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본다는 것은 내가 보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된다는 말이지요. 예배는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 드리러 간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서 내가 은헤를 받는 것은 2차적인 효과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하고 에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예배을 드리는 1차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사야 43;21을 볼까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피조물인 우리로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학교 선생님은 학교 수업시간에 학생을 찾습니다.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출석을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찾으실까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서 나에게 부어지는 주된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은혜의 생수가 흐릅니다. 성전 동편 문지방에서부터 생수가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지만 기도는 내 중심의 성향이 많은 접근 방법이라면 예배는 온전히 하나님 중심의 접근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때 부어지는 은혜는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것도 억지로가 아니라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대강 대강 예배보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에배드리는 자를 찾는 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한복음 4:23에서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놀라운 은혜를 받고 싶습니까? 진정으로 묶였던 것이 풀어지고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이 자라기를 원하십니까? 평강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배에 빠지지 마십시오.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십시오. 에배시간에 늦지 마십시오. 예배를 그 무엇보다고 귀중이 여기십시요.

   하나님께서 미적거리고 안주하고 있는 야곱에게 벧엘로 가서 단을 쌓으라고 몇 번씩 강조하시고 재촉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배를 통해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셋째,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존경하는 사람과 좀더 만나고 싶고, 좀더 이야기 하고 싶고, 좀더 시간을 갖고 싶고, 좀더 있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요즘 연예인들을 만나고 싶어하고 교제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팬클럽이 생기게 되고 심지어는 스토커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출연하는 공연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합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보기 위해서 밤을 새면서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하나도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힘들어 하지 않습니다. 기대감에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편이 예배이기 때문에 우리는 에배를 기대하고 사모하고 갈망해야 합니다. 

   진정한 교제는 서로 소통이 있어야 합니다.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쌍방의 커뮤니케이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진정한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헌금 등을 통해서 하나님께 헌신합니다.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교통의 현장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우리의 삶의 현장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예배 만큼 교제의 깊이를 더하고 예배 만큼 하나님께 집중하는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교제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특히 예배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9:42-45을 볼까요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내가 그 회막과 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는 그곳, 즉 회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는 오늘 날 예배를 말하지요. 제사를 드리는 회막은 오늘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시고 예배드리는 교회에서 우리를 만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나쳐서는 안됩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던 한 사람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다윗을 꼽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고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시편 27:4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내 생전에 여호와 집에 거한다는 것은 성전에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아름다움 속에 깊이 빠져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참 멋진 말이지요. 우리가 상대방과의 교제를 깊이 있게 나누면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 전에서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말은 다윗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얼마나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원했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날 각 영역에서 성공한 크리스천들이 간증 도서들이 많이 발간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갈망했던 사람들이요, 예배에 열심을 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효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으로 효도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효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자주 뵙도록 합시다. 아니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뵙도록 합시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