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설교 2008-05-04 ♣ \"예수님의 안수와 축복을 받는 비결\"
막 10:13-16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인기있는 연예인의 손을 한번 잡아보려고 비행기를 타고 먼 곳까지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대통령 취임식을 끝내고 걸어나가는 대통령과 악수하기 위해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TV를 통해서 보았을 것입니다. 인기있고, 존경받고, 유명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 보고자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바램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머리에 안수를 받는 것은 더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님의 안수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안수받기 위해서 긴 줄을 섭니다. 안수라는 것은 악수와 격이 다릅니다. 악수는 반갑다는 표시지만 안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저도 영적으로 존경받는 영성이 깊은 분들의 안수를 받은 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그분들의 안수를 받고 싶은 열망이 일어나더라고요. 그분들의 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영감이 나에게 전달되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들을 은총과 복의 통로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실천하셨던 우리의 영적이 스승이셨고, 예수원의 설립자이신 대천덕 신부님을 아시지요. 2002년 8월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요. 그 분의 기도 중에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기도가 있지요. \"주님,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허락치 않으신다면, 저로 하여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어떤 분이 대천덕 신부님에 대해서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만 만나고도 평생에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천덕 신灌纛?그렇습니다. 나는 그 분을 단 한 번 만났습니다. 그것도 서른의 좀 늦은 나이에.. 예수원에서 아침 예배드리는 그 조용한 순간에 잠시 눈이 마주친 것이 그분과 나의 인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대천덕 신부님은 소천하셨습니다. 불과 몇 달 사이의 일이었습니다. 짧지만 긴 인연, 하나님의 축복, 아마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분과의 눈길을 마주치는 것으로도 그분에게 인생의 교훈을 받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씀드릴 정도로 대천덕 신부님은 위대한 우리의 스승이셨지요.
그 분이 돌아가시기 몇 년 저는 새해 초두에 대천덕 신부님을 만날 수 있는 은총의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수십명의 사랍들이 어느 집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새해 초에 대천덕 신부님은 고령의 나이에 불편한 몸으로 그 곳에 있는 분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분은 안수기도를 잘 하시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집 주인과 잘 아시는 사이인지라 집 주인의 간곡한 부착으로 기도를 하신 것 같아요. 그 분은 가장 먼저 목사인 저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모습으로 제 머리위에 손을 얹고 안수하시면서 축복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많은 축복의 기도를 해 주셨지만 10여년의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 기도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까지 제 마음속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기도의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리라\" 아멘.
저는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후로 많은 분들을 위해서 어떤 때는 안수하면서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분의 기도 그대로 저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이 흘러나가는 놀라운 은총을 그 분의 기도대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적으로 훌륭한 분들의 안수를 받는 것도 좋지만, 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으로로부터 직접 안수를 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실은 우리가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서 받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곁에 계서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감동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터치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께 안수를 받는 어린이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어린이가 부러워보이지 않습니까? 복의 근원이 되신 예수님께 직접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안고 안수를 하셨으니... 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안으시고 안수를 하셨을까요? 제자들은 어린이들이 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꾸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쁘신데 왜 애들을 데리고 오냐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은 바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을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제자들에 대해 오히려 분히 여기셨습니다. 이렇게 바쁘신 예수님이 왜 어린이들을 반갑게 맞아 안으시고 손을 얹어 안수를 안셨을까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안고 안수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오직 어린이들외에는 말입니다. 물론 안수하여 병을 고치신 사람들은 많았지만 직접 안고 안수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에수님이 어린이들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안수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셨지요. 그러나 어린이들을 사랑하신 이유가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순진하고, 정직하고, 어른의 말에 순종하고, 교만하지 않다는 어린이들의 보편적인 특성 때문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어린이들을 사랑하셔서 어린이들을 직접 안고 안수하신 이유를 15절에서 찾아야 합니다. 15절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어린이들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어린이들이 자세에 대해서 예수님은 늘 감명을 받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 예수님을 복을 주시고 싶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직접 안고 안수를 하시는 놀라운 복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영으로 알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어린아이의 자세는 어떤 것일까요?
첫째, 믿음으로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먼저 여기서 \'받든다\'라는 말의 의미를 바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받는다\'라는 말은 \'받아들인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복음 전파하시고 가르쳤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간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렇게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예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과학적으로 이것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데 천국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끝나는 것인데 천국이 어디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따집니다. 히브리서 9:27을 봅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는 천국에 대해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15절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둘째, 천국을 환영합니다.
\'받들다\'라는 말은 \'환영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천국을 환영합니다. 이 말은 천국에 내가 갔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내가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습니다. 천국의 주인되신 예수님께서 천국을 환영하고 천국에 대한 기대감과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내가 멋진 파티를 준비했다고 초청을 했는데, 초청받은 사람들이 파티를 환영하고 기대감과 소망을 가져야 내가 보람이 있고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별로라는 표정을 짓고, 심지어는 귀찮다는 자세를 보이면 정말로 힘빠지고 기분이 상합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가르치십니다.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초청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치에 오도록 보낸 종들에게 안가겠다고 거절을 합니다. 임금이 베푼 잔치 초청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종들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자기 일하러 갑니다. 바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임금의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기 까지 합니다. 임금이 너무나 화가 나서 그 사람들 진멸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의 잔치에 초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거절하는 이유가 많은지, 좀 더 돈 벌고 난 뒤에..., 좀 더 나이들고 난 뒤에...., 지금은 바빠서 안되고 좀 한가해지고 난 뒤에..... 이렇게 초정에 거절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어른들은 생각이 복잡하고 이유가 많은가 봅니다. 단순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린아이들처럼 천국을 환영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는 예수님의 초청을 환영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만 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안으시고 안수하며 축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셋째,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받아들인다\'라는 말 속에는 \'영접한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천국을 영접했습니다. 즉 천국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쉽게 예수님을 믿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을 보면, 보편적으로 제일 먼저 애들이 믿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믿고 나중에 아빠가 믿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어린아이들이 가장 먼저 천국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나귀타고 예루살렘으로 성으로 입성하실 때, 성전에서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분을 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양을 기쁘게 받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15-16을 볼까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사람은 자기를 영접하는 자를 좋아합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영접하는 자를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얼마나 영접하기를 원하시느냐 하면,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요한복음 1;12을 봅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은 우리가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합시다. 예수님 나에게 오세요, 내 마음의 문을 엽시다. 이렇게 한 번 외쳐 보세요.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안고 안수하여 축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린이주일은 어린이만 선물받는 날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물을 받기를 바랍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안아주시고 안수하여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내가 너희 외로움과 고통과 아픔을 다 알고 있단다. 나에게 안겨라, 내가 너를 안수하고 축복해 주마. 이 선물을 예수님으로부터 받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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