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나에게 나타나십시오

♣ 주일설교 2008-03-16 ♣
\"주님, 나에게 타십시오\"


마 21:1-11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11]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한국계 풋볼 영웅 하인스 워드가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왔을 때, 하인스 워드를 태우기 위해서 많은 자동차 회사가 경쟁을 한 끝에 기아자동차의 \'오피러스\'라는 차가 낙점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스포츠 영웅을 태우기 위한 경쟁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이번에서 기아의 SUV(스포츠를 목적으로 하는 다목적 차량) 모하비에 하인스 워드를 태우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누구를 새로 출시하는 신형 차에 태우느냐, 즉 누구를 자동차 광고 모델로 삼느냐에 따라 자동차의 판매량이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물론 자동차의 품질이 중요하겠지만 광고도 그 못지 않게 판매의 성공과 실패 여부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그러니 유명한 스타를 태우려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입니다.

   현대자동차의 투산에는 이효리를 태웠고, 기아자동차의 스펙트라에는 장나라를, 현대자동차 신형 아반테에는 가수 에릭을, BMW 뉴 Z4 쿠페에는 가수 비를, 기아자동차 세라토에는 가수 싸이를, 르노삼성자동차  SM5에는 배우 김혜수를 태웠고, 쌍용자동차  액티언에는 정려원과 박해舅?태웠다고 합니다.
   GM대우  젠트라에는 다니엘 헤니를, GM대우 마티즈에는 김태희를, 기아 자동차 스포티지에는 조인성을, 현대자동차 소나타에는 장동건을, 현대자동차 i30에는 임수정을, 기아자동차 로체는 김명민을 태웠다고 합니다. 이렇게 누구를 태우느냐에 따라서 그 차는 명성이 달라지고, 인기와 품격이 높아지게 된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기 위해서 무엇을 탈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야인데 백마를 탈까? 아니면 멋진 마차를 탈까? 이렇게 고민하실 만도 한데, 예수님은 즉시 나귀를 타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것도 나귀 새끼를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1-3절을 봅시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왜 하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려고 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데, 특히 예수님을 미워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코를 좀 납작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멋지고 좋은 것을 타고 입성하시면 좋을텐데, 왜 하필 \'나귀\'란 말입니까! 

   나귀는 당나귀를 말합니다. 조그마하고 보잘것없는 동물입니다. 몸이 좀 작고 귀가 크며 머리에는 말처럼 멋진 긴 털이 없습니다. 부리기가 좋아 주로 짐을 싣고 다니는 동물이지요. 하여튼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아도 예수님이 타시기 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나귀를 낙점하셨으니 나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영광이지요. 보통 영광이 아니지요. 이런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태우고 가는데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나도 나귀처럼 주님에게 쓰임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도 나귀처럼 예수님을 반드시 태워야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나귀처럼 예수님을 태우는 일에 낙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첫째, 정결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는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라고 되었지만 마가복음 11:2에는 예수님의 명령이 좀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오늘 본문에는 \'나귀 새끼\'라고 되어 있지만 마가복음에는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단순한 나귀 새끼가 아니라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정결한 나귀 새끼를 말합니다. 거룩한 목적에 쓰일 나귀 새끼를 말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목적에는 온전하여 흠이 없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짐승을 사용합니다. 민수기 19:2과 신명기 21:3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민 19:2) 여호와의 명하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 오게 하고  
   (신 21:3) 그 피살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 곧 그 성읍의 장로들이 아직 부리우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고

   오늘 우리가 우리 주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결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디모데후서 2;21의 말씀은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결하신 주님께서 불결한 우리를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더러운 우리들을 쓰실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서 피치 못하게 하시는 작업이 있습니다. 바로 \'연단\'입니다. 왜 연단하십니까? 우리를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즉 나에게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여 정금을 만들기 위해서 나를 연단하셨다고 욥은 욥기 23:10에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결합시다. 손님을 태우기 위해서 개인택시의 기사도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하고 방향제를 뿌리고 하는데 우리가 우리의 구원주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을 태우기 위해서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합시다.

둘째, 겸손해야 합니다.

   본문 4-5절을 봅시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살면서도 겸손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은 여전히 겸손하십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겸손한 척 하기 위해서 나귀를 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품과 인격과 삶 자체가 겸손이었습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이 보잘것없는 나귀를 타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겸손하셨는가 하는 것은 빌립보서 2:6-8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마태복음 11:29에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할 뿐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겸손해야 하겠지만, 우리의 행동, 말, 자세, 태도, 모습, 말투까지도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하지 않으면 주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겸손할 때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고 우리를 높이 실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5-6을 볼까요?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아멘.

셋째, 섬겨야 합니다.

   나귀는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단련되어져 왔습니다. 나귀는 영광을 받는다든지, 명성이 있다든지, 다른 어떤 짐승들 위에 군림하는 그런 동물이 아닙니다. 희생하고 섬기는 짐승에 불과합니다. 5절에 이 내용이 나옵지요.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나귀는 멍에를 메는 짐승의 새끼입니다. \'나귀가 멍에를 멘다\'는 말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하고 섬기는 짐승이라는 말입니다.
   주님도 섬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섬기는 삶을 사셨고, 섬기는 삶의 절정이 십자가를 지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은 마태복음 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는 요한복음 13;14의 말씀대로 우리도 주님처럼 섬기는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똑똑하다고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경력이 많다고 쓰임 받는 것도 아닙니다. 희생과 헌신과 섬김의 자세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쓰임에 합당한 그릇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종려주일을 맞이하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는 찬양을 받으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동시에 주님을 태우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나귀도 관심 깊게 바라봅시다.
   찬송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메시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태운 나귀도 얼마나 영광스러울까요? 부럽지요? 그러나 이러한 영광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스도를 태웁시다. 주님을 태우는 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맙시다. 항상 주님이 다른 사람에게 타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을 겁니까? 내가 주님을 태우도록 다음 달에는 준비해야지, 내년에는 준비해야지, 한 삼 년 후에는 준비해야지 하면서 기회를 다 놓치겠습니까? 이제 우리도 자신감 있게 외쳐야 하지 않겠어요. \'주님, 내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나에게 타십시오\'
   정결합시다. 겸손합시다. 섬기는 자가 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쓰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타시는 영광스러운 나귀 새끼와 같은 멋진 일꾼들이 되시기를 종려주일에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