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신앙이란?


♣ 주일설교 2008-03-09 ♣
\"성숙한 신앙이란\"



단3:13-18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8]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9]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10] 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무릇 사람마다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리어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11]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하신 자이어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 오라 명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열정이 있고 뜨거움이 있는 성도들은 \'믿습니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나에게 좋은 배우자를 주실 줄 믿습니다. 나의 진로를 열어 주실 믿습니다. 내 병을 고쳐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도 마태복음 7:11에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함으로 좋은 것을 얻게 되고, 문제가 해결되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물질적으로 풍성한 복을 받게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것을 간증하자면 한 두 가지겠습니까? 참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이지요. 심지어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고 주시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마태복음 6:8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런데 우리가 구하는 데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셨습니까? 물론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내 욕심대로 구하는 것은 이루어지지가 않지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이라고 야고보서 4;3은 말씀하고 있지요. 또한 의심하면서 구하는 것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지 않는 것은 받지 못합니다. 이런 것들이 아닌데도 내가 구하여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다니엘의 친구들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라는 세 아스라엘 청년이 나옵니다. 이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자들이지만 총명하고 지혜로와서 바벨론의 도지사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포로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니 바벨론 관리들이 배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죽일 계략을 세웁니다. 바벨론 왕이 섬기는 우상에 절하지 않는 자는 다 죽이자고 왕을 꼬드깁니다. 드디어 드 작전이 성공이 되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왕에게 일러 바칩니다. 왕이 노발대발하여 그 세 사람들을 끌어오라고 명합니다. 왕이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줍니다. 악기가 연주되는 소리가 들리거든 자기가 만든 신상 즉 우상에게 절하라는 것입니다. 절하지 않으면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지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풀무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금속을 용해하고 제련하는 용광로를 말합니다. 저는 오래 전에 포항제철에 가서 시뻘건 쇳물이 흘러나오는 용광로를 보았습니다. 쇠를 녹이는 불 속에 집어넣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특히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자세를 눈 여겨 보면서 우리는  신앙의 단계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타협하는 단계입니다.

   신상에게 절하면 살려주고, 절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협박을 하면서 타협을 시도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의 제의에 거절을 했지요. 타협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한테 손해가 되고, 나한테 불이익이 되고, 내가 좋아는 것을 놓치고 잃어버릴까봐 하나님의 싫어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들이 있을 것입니다. 타협을 합니다.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하신 예수님께 마귀는 다가와서 타협을 시도합니다. 애굽이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게 동침하자고 타협을 시도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사자굴이라는 무기로 다니엘에게 타협을 시도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타협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고, 타협을 제의 받을 때도 있습니다. 하여튼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타협을 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니지요.

   이런 단계를 믿음의 단계에 들었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신앙생활의 초보 단계라고 말할 수 있지요. 우리가 이러한 단계에 있다면 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거절하는 단계입니다.

   나에게 손해가 되고 불이익이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입니다. 뇌물을 거절합니다. 엄청난 제의와 회유를 거부합니다. 남이 아무도 모른다할지라도 스스로 불의한 일을 거부합니다. 부정을 거부합니다.
   요셉이 그랬지요. 자기가 섬기는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그렇게 집요하게 유혹했지만 그는 비록 자기에게 엄청난 시련이 올 거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이렇게 거절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정말로 대단합니다. 풀무불이 앞에 있지만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거절합니다. 이 밀에 대해서 왕에게 대답할 필요조차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 부분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1;10에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우리의 믿음이 거절해야 하는 것을 단호히 거절하는 단계에 있다면 바른 신앙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셋째, 확신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을 확신하는 단계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께서 풀무불에게 건져내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봅시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풀무불에 던져지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확신의 단계는 성숙한 믿음의 단계입니다. 의심하지 않는 단계입니다. 야고보서 1:6-7은 확신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는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지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확신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역사 하십니다. 주변의 상황과 여건이 아무리 좋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자에게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주 성숙한 신앙의 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단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다음의 단계까지 기필코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있습니다.

넷째, \'그리아니하실찌라도\'의 단계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베느고는 18절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풀무불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시 않더라도 우리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죽고 사는 것에 상관없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온전하게 성숙한 신앙의 단계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놓고 아버지여 이 고난의 잔의 내게서 옮겨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즉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곧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순종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생각대로가 아닐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뜻대 온전히 순종하겠다는 말씀이지요.
   다니엘도 내가 사자들에게 물려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나는 우상을 섬길 수 없다는 마음으로 사자굴로 들어간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가 기도합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응답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고 순종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도달해야 할 성숙한 신앙의 단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하실찌라도\'의 믿음의 단계까지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이지요. 좀 더 자세하게 그 이유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인생의 주관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 생노병사등 모든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주권하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는 욥도 이 사실을 깨닫고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욥기서 1;21-22에,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의 소유자요, 우리가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주실 권한도 있고 가져가실 권한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릇이 자기를 잘못 만들었다고 그릇 만드는 사람을 원망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음을 로마서 9:20-21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이 세상이 우리의 본향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잘 되기를 원하시고 계시지만 그러한 것은 잠시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한시적인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중요하고 영원한 그리고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복, 천국의 복을 주시기를 더 원하시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않았다면 하나님은 스데반이 순교하는 것을 막았고,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는 것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막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사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지나가는 나그네 길이요, 여관이요, 하숙집에 불과합니다. 80년-90년을 산다고 할지라도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영원한 삶에 비하면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분초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그리아니하실찌라도\'라고 담대하게 왕에게 외쳤던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 3:17-18에서 \'그리아니하실찌라도\'의 믿음의 단계에서 하나님께 멋지게 고백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주실 줄 믿습니다. 해결하실 줄 믿습니다. 라고 기도하기 전에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우리의 심령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이러한 고백을 우리에게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풀무불에 들어가서 죽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천국가게 되어 기쁘고, 풀무불에서 살려주시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게 되어 기쁘고..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순절 기간을 맞이하여 나를 위해 돌아가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드디어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나도 그리아니하실찌라도\'의 신앙의 단계까지 기필코 나아가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결단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