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합당한자

♣ 주일설교 2008-02-24 ♣
\"주님께 합당한 자\"[마10:37-39] 권 다니엘 목사




  
(본문) [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사순절은 부활절 이전 40일을 지키는 절기로서 재를 이마에 바르며 죄를 회개하는 재(ash)의 수요일(2월 6일)부터 시작해서 부활절 전날(3월 22일)까지를 말합니다. 사순절의 포커스는 십자가입니다.
   사순절의 세 번 째 주일인 오늘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될 수 있을까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면서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되기를 다시 한 번 결심하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을 10장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시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복음을 전파하도록 파송하십니다. 파송을 받는 제자들에게 박해와 핍박을 각오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내게 합당한가 하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합당하다\'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적합하다\'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딱 맞는다\'는 말입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합당한 자로 사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목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 나름대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나에게 합당하다.\'라고 인정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모른다고 하신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을까?\'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내게 합당한 자가 되려면 이렇게 하라고 친히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 그대로 순종하고 행해야만 주님께 합당?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주님을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홍수가 나서 당신의 가족이 물에 떠 내려 간다면 당신은 누구부터 구할 것인가? 당신의 아내인가? 당신의 자녀인가? 당신의 부모님인가?\' 참 곤란한 질문이지요. 이러한 질문의 요지는 우선순위입니다. 누구에게 우선순위를 두겠느냐는 것이지요.

   나에게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를 가장 우선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요구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선순위에서 \'너는 나를 먼저 선택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주님은 우선순위에서 가장 먼저 선택되어야 할 자격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시오,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본문 37절을 봅시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우리가 이 본문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아비나 어미와 자녀들을 미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이들보다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날 우리의 주변에는 우리가 사랑하지 않고서는 안될 것 같은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남편이 그렇고 아내가 그렇습니다. 특히 자녀들이 그렇습니다. 요즈음은 자녀들 때문에 남편을 포기하는 부인들도 꽤 많습니다. 자녀를 유학시키기 위해서 반대하는 남편과 이혼도 불사하는 부인들을 있습니다.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이라면 불법도 서슴치 않고 행합니다. 불의를 행합니다. 어떠한 나쁜 일도 행합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지옥 가는 일도 마치 마다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로 말입니다. 그들은 크리스천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안중에 없습니다. 그들의 우선순위 목록에조차 주님은 없습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입니다. 자녀가 우상이 되고, 물질이 우상이 되고, 돈이 우상이 되고, 직장이 우상이 되고, 건강이 우상이 되고, 교제하는 이성이 우상이 되고, 친구가 우상이 되고, 공부가 우상이 되고, 출세가 우상이 되고, 명예가 우상이 되고...  
   죄송하지만 이런 자들은 주님께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적당히 주님도 사랑하고 세상적인 것도 사랑하면서 두리 뭉실 신앙생활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더 사랑하는 지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것을 더 사랑하는지 분명히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게 바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맞이하여 내가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주님을 그 누구 보다고 그 무엇보다도 더 사랑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주님을 우리의 사랑의 우순 순위 제일 앞에 두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을 더 사랑하지 않는 자세로 버틴다면 주님은 우리가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흩으실 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 합당한 자로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가족도 물질도 직장도 심지 우리 자신까지 하나님은 흩으실 수가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둘째,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번에 각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각 당의 대통령 경선 후보들이나 대통령 후보들을 결사적으로 따르고 있는 모습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좇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서 그들은 어떤 일도 저지를 자세로 따랐던 것입니다. 거짓말하고 불법을 자행하기도 하고 경쟁 상대자를 모함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경쟁 상대자를 테러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과연 주님께 합한 자인가를 점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주님의 교훈을 따르고 있느냐, 내가 주님의 삶을 따라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8절에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우리가 실제적으로 주님을 따르고 있지 않는다면 주님과는 상관없는 자가 되고 맙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야 합니다. 여기서의 \'자기 십자가\'란 무엇을 말합니까? 주님을 위해서 받는  핍박과 환란을 말합니다.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과 고난과 손해와 희생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을 회피하지 않고 당연히, 기쁨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지 않고서는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것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해하고 있습니다. 아니 잘못 알고 있습니다.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갖고 \'크리스천\', 많은 크리스천들이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나에게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안 합니다. 나에게 귀찮고 힘들 것 같으면 미룹니다. 희생이 요구되고 헌신이 요구되면 마음에 불평이 꿈틀거립니다. 결국 십자가를 지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죽 고통스러웠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셨을까요. 주님께 손해 되기 때문에, 주님이 힘들고 귀찮아서, 주님께서 희생하기 싫어서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하기도 싫지요. 끔찍하지요.

   주님의 십자가에 비하면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순절에 나를 위해 지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누가복음 14:27의 말씀대로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십자가를 집시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셋째, 주님을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라고 39절에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을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하라는 말입니다. 심지어 자기의 목숨까지..  주님을 위해서 목숨까지 포기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복음을 위해서 순교한 자들.
   양화진에 가면 복음을 위해서 한국 땅에서 순교한 자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순교자들이 있었기에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게 되었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놀라운 은총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그렇게 많이 전개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자세와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만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우리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것들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함을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제 주변에 주님께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 좋은 것들을 포기하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되어 얼마나 도전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기의 명예를 포기하는 자들도 있고, 유명한 대학 교수직을 포기하시는 분도 계시고, 좋은 직장을 포기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돈과 좋은 집과 좋은 차를 포기하고 주님가신 길을 따르는 자들도 있습니다.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을 위해서는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 포기해야 합니다. 즉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마태복음 16:24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학생이 객차가 연결되는 부분 계단에서 손잡이를 잡고 바람을 쐬며 서 있었습니다. 아주 위험하지요. 기차가 다리를 건널 때 바람이 갑자기 세게 불어 그 학생이 쓴 모자가 벗겨지려고 했습니다. 그 학생은 한 손으로는 계단 옆 손잡이를 잡고 있었고, 한 손으로는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모자가 벗겨지려고 하니깐 계단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으로 벗겨지려는 모자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그 학생은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모자를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모자를 포기하지 못하는 순간 그는 목숨을 포기하게 되는 위험한 순간을 직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행히 그 학생은 모래사장으로 떨어져서 죽지는 않고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을 포기할 것인가. 다른 것 때문에 주님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배도 그물도 포기했습니다. 부모와 집도 포기했습니다. 전토와 자기의 직장도 생업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포기한 것은 잃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훨씬 더 크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주님은 이것을 마가복음 10:29-30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사순절을 보내면서 이번 한 주간은 나는 과연 주님께 합당한 자인가 묵상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 무엇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들이 됩시다.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됩시다. 주님을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자들이 됩시다. 그리하여 주님께 합당한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