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와 미련한 차이

♣ 주일설교 2008-02-10 ♣
\"슬기와 미련의 차이\"


마 25:1-13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 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듣기 싫어하는 말 중에 \'너는 미련하다\'라는 말 보다 더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과 인격을 아주 안 좋게 평가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몹시 미련한 사람을 가리킬 때 \'미련퉁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상대방이 들을 때는 매우 기분이 안 좋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미련하다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심지어는 아이들에게도 말입니다.
   예수님도 이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마태복음 5:22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라가\'라는 말은 아무 쓸모없는 멍청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지만 \'미련한 자\'라고 말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켜 말씀하시면서 한 부류의 사람들을 슬기로운 자들이라고 평가하셨고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미련한 자들이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자들을 슬기로운 자들이라고 평가를 하셨고 어떤 자들을 미련한 자들이라고 평가를 하셨는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가 있습니다. 여기서 처녀란 신부가 아닌 결혼 잔치에 초대된 신부의 들러리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저녁 무렵부터 등을 들고 나가 신부를 데려오는 신랑을 기다렸다가 그들 일행을 혼인 잔치로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들 중 다섯 명은 신랑 신부와 그 일행들을 혼인잔치로 잘 안내해야 하는 들러리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미련한 자들이라고 하셨는데 왜 이들에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는가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고 슬기로운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미련한 자들이라고 평가하신 다섯 처녀들은 어떠한 자들이었습니까?

첫째,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신랑이 늦게 온다는 사실을 알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신랑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자기 집을 떠나 신부를 데리러 신부의 집에를 먼저 갑니다. 그리고 신부의 집에서 종교 의식을 비롯한 여러 예식을 마치고 나서 해가 질 즈음에 신랑은 신부를 데기로 자기의 집으로 돌아 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아주 늦게 돌아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신부의 들러리가 왜 몰랐겠습니까?
   너무 늦게 오니깐 기다리다가 피곤해서 졸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신랑이 늦게 오니깐 열 명의 들러리들이 다 졸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그러나 다섯 명은 신랑이 늦게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 여기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열 명 다 등은 준비를 했습니다. 기름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다섯 명은 신랑이 아주 늦게 올 것을 대비해서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른 다섯 명은 기름을 충분히 준비했는데 말입니다. 실은 기름 값은 얼마 안됩니다. 어느 곳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을 비유로 설명하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준비하되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2000년이 지났는데도 재림하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예수님이 참 늦게 재림하시는구나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전혀 색다른 사실이 아니지요. 신랑을 기다리던 처녀들이 졸며 잤다는 말은 그만큼 예수님의 재림이 오래 지연되고 있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졸고 잔 것에 대해 책망이 없습니다. 이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늦다보니 우리들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성 때문이지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늦는 것에 대비해서 기름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령을 말합니다. \'등\'은 성도들의 외형적인 신앙의 모습을 상징하지만 \'기름\'은 외형적인 신앙생활을 유지하게 할 뿐만 아니라 불타오르게 하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요한일서 2:27을 볼까요.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우리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즉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받되 잠시, 조금 받다가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충분히 아니 충만히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18에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16을 봅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여기서 충만을 받으라는 말은 명령형입니다.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은 그러한 선택이 아닙니다. 받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충만을 받으라는 동사의 시제는 계속형입니다. 계속적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받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일시적으로 받는 것으로 끝나서도 안됩니다. 계속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계속 기름을 공급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고 하더라도 기름이 없으면 그 차는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된 차라도 기름이 항상 공급되면 어디든지 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도들이 한 번 은혜 받고 끝나서는 안됩니다. 한 번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계속적으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계속 불타 올라야 합니다. 처음 믿을 때는 뜨거웠다고 하는데 왜 지금은 식었습니까? 성령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경건의 모양도 필요합니다. 즉 등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건의 능력입니다. 이 경건의 능력은 성령의 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경건의 능력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고 비판하는 자가 됩니다. 이런 자들은 천국에 합당한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신의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도 그러한 부류에 자칫 잘못하면 속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디모데후서 3:5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는 데 최선을 다합시다. 성령의 은혜를 받는데 우선순위를 둡시다. 이것 이상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둘째,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드디어 신랑이 옵니다. 신랑을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졸고 있던 열 명의 처녀들이 깨서 신랑을 맞으러 나가려고 합니다. 기름이 다 해서 등불이 껴져 갑니다.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다섯 명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명은 자기들이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빌려달라고 하지만 거절을 당하고 맙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는 있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은 준비를 당연히 해야 하는데도 그러지를 못하는 아주 잘못된 습성이 있습니다. 시험보는 학생도 미리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미리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미리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내가 바쁘니 내가 퇴직하고 나서 예수님을 잘 믿어야지\', \'지금은 젊은 데, 늙고 난 뒤에 예수 믿고 교회 나가면 되지..\', \'지금 대강 대강 신앙생활하고 집에 애들이 다 크고 출가시키고 난 뒤에 신앙생활 잘 해야지..\'

   그러나 뒤에 후회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갑자기 인생의 위기가 다가오고, 갑자기 하나님 앞에 가야할 때가 되었을 때, 그 때 후회들을 합니다. 내가 물질이 있을 때.. 헌금을 했어야 하는데, 구제를 했어야 하는데.. 내가 젊었을 때, 내가 건강할 때.. 교회 봉사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고 신앙생활도 잘 했어야 하는데..   

   어떤 분이 돈을 한창 잘 벌 때 잘 살았습니다. 그 분은 집에 한 오백 만 원 하는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들여 놓았습니다. 바빠서 별로 듣지도 못하는데 말입니다.  벌써 10여 년 전인데 그 당시 오백 만원 정도하는 오디오 시스템은 아주 좋은 것에 속했습니다. 부도가 나서 빚쟁이 들이 집에 있는 물건을 다 가져가고 난 뒤에 진작 교회에 갖다 놓았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후회를 했다고 합니다. 그 분이 출석하는 교회는 아주 작은  작은 개척교회이었습니다.

   자 이제 설교를 통해서 깨달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신앙생활 잘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후회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셋째, 신랑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신랑은 참 냉정한 것 같습니다.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그리고 문이 닫힙니다. 그들은 와서 닫힌 열어달라고 두드립니다. 그러나 신랑의 태도가 냉담합니다. 싸늘합니다. 본문 10-12절을 봅시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신랑은 모든 것을 다 용납할 수 있어도 혼인잔치를 망치는 자들을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들은 신랑 신부의 일행을 안내하고 인도해서 혼인잔치를 잘 치러지게 하고 신랑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도록 해야 하는데 도리어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게 했으니 혼인잔치에 손해를 끼친 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들은 더 이상 혼인잔치에 필요 없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참으시지만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참으시는 것의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끝이 언제인지 아세요.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날이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이 때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판결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단순히 사랑의 하나님이라고만 생각하고 막 나가면 안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9:27과 고린도후서 5:10은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오늘 본문은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자지말고 깨어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하실런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끝이 언제인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슬기와 미련의 차이는 준비입니다. 준비를 하고 있느냐 하지 않고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신앙적으로 잘 준비합시다. 무엇보다도 항상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지 않은 슬기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