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날수 있는가?


♣ 주일설교 2007-12-16 ♣
\"누가 날 수 있는가?\"



신명기 32:9-14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성경은 독수리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특히 독수리를 신성한 영적인 동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이 추구하는 신앙생활의 모습을 독수리를 통해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폭풍우가 불어오면 다른 새들은 전부 둥지를 찾아 숨어버립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날개를 펴고 그 폭풍우를 향해 날아오릅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불수록 더 높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저 높은 하늘 꼭대기에 올라가서 구름 아래 폭풍우가 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유유히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문에 독수리를 새중의 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에 환난이 몰아치고 풍파가 닥치면 낙심하고 절망하고 어디든지 숨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환난과 시련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환난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올리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환난과 고통은 오히려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오늘 우리들 중에 환난과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는 훈련입니다. 독수리처럼 陋痼?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흔히 \"모세의 유언의 노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생활 40년 동안에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시고 보살피시고 채워주셨습니다. 얼마나 멋지게 그리고 아름답고 풍성하게 인도하셨는가를 13-14절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여기서 \'땅의 높은 곳\'은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가나안을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것을 말합니다.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게 기름을 빤다는 말은 자갈과 바위가 많은 가나안 땅에서 조차 축복을 받아 많은 소산물을 얻을 수 있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최고의 소젖과 어린양을 기름을 먹게 하셨고, 최고의 수양과 염소를 먹게 하셨고 아름다운 밀과 최고의 포도즙을 마시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최고의 좋은 것과 풍족한 것으로 채우셨다는 밀씀입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것으로 주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것이 있습니다. 즉 \'연단\'이요 \'훈련\'이었습니다. 그냥 좋은 것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받을 만한 그릇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11절의 말씀입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연단을 시키셨으며 어떻게 훈련을 시키셨습니까?

첫째는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높은 나무 꼭대기나 절벽에 둥지를 트는데, 둥지 바닥은 거친 나뭇가지와 가시를 엮어서 만듭니다. 그리고 그 위에 부드러운 털과 풀로 덮습니다. 겉은 푹신하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부화된 새끼 독수리가 어느 정도 자라서 날 때가 되면 어미 독수리는 둥지의 부드러운 털과 풀을 다 날려버립니다. 그러면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가시가 드러나게 되지요. 이것을 본문에서는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제 새끼 독수리는 움직일 때마다 가시에 찔리게 됩니다. 도저히 둥지에 앉아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어미 독수리의 등에 올라갑니다. 그러면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태우고 높이 올라가서 밑으로 떨어뜨립니다. 새끼 독수리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게을러지고 나태해 질 때, \"그냥 이대로가 좋사오니\" 하고 신앙의 잠을 자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둥지를 어지럽히십니다. 날카로운 가시들로 우리를 찌르게 하십니다.
  우리들 중에는 날카롭게 찔러대는 가시가 있어서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그 자리에 누워 있거나 주저 앉아 있지 말고 하나님의 등에 업히라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하나님의 등에 업혀서 나는 것을 배우라는 신호입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믿고 살았던 것이 갑자기 사라지고 날카로운 가시만이 남아 나를 찔러올 때, 바로 그때가 지금까지 나태하였던 믿음생활, 게을리 했던 믿음생활을 벗어버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십니다. 그때는 우리는 깨닫고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빨리 일어나야 합니다.

둘째는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미 독수리가 둥지에 있는 새끼들에게 날개를 펴서 나는 시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날개는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너도 날을 수 있다.\" 이렇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끼들은 어미가 하는 것을 보고 날개짓을 하다가 나중에는 결국 날게 되는 것이지요. 움직여 보고, 나는 시늉을 하다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값지게 사는 것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닮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고, 제자는 스승을 닮습니다. 부부가 오래 살면 생긴 것도 서로 비슷하게 닮아갑니다. 사람은 서로 보면서 닮아가는 것입니다. 좋은 것도 닮아가고 나쁜 것도 닮습니다. 생각도 닮고 행동도 닮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정말 모범으로 삼고 닮아갈 수 있는 대상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정말 모범으로 삼고 닮아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세상에 어떤 성자라도 그가 한 시간 동안 생각한 것들을 종이에 적으라면 자신 있게 적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루는 어미 게가 새끼 게에게 야단을 쳤습니다. \"너는 어째서 똑바로 걷지 못하고 자꾸만 옆으로 걷느냐? 똑바로 걸어라.\" 그러나 새끼 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똑바로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보다 못한 어미 게가 \"에이그 한심한 것, 지금부터 내가 하는 것을 잘 보아라.\" 하면서 시범을 보였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모범을 삼고 본받아 닮아갈 수 있는 완전한 분이 계실까요?
  우리가 정말로 닮아야 할 분, 우리가 정말로 우리 미래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그 주님의 말씀 그 말씀만이 우리를 바르게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시편 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들의 인생을 독수리처럼 훨훨 날아가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이렇게 날갯짓을 해보아라.\" \"이렇게 날아보아라.\" 가르쳐 주십니다.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하나님은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푸른 창공을 날아다니는 독수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고 바라봅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등에 업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떨어뜨립니다. 그런데 처음 날아보는 새끼 독수리가 제대로 날 수가 없지요. 몇 번 푸덕거리다가 땅으로 곤두박질칩니다. 그러면 어미 독수리는 재빠르게 날아가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아 등에 다시 업고 올라갑니다. 훈련을 시키되 절대로 땅에 떨어져 죽게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믿음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가시같이 찌르는 것을 만나게 하시고, 그래서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십니다.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게 하십니다. 그 동안의 게으름을 떨쳐 버리고 믿음의 열심을 내게 만드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합니다. 굳게 결심을 했다가도 어느새 허물어집니다. 주님을 사랑하노라고, 주님 뜻만 따르겠노라고 다짐했다가도 어느 순간 세상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말씀대로만 살겠노라고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지만 어느새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내 욕심이 앞서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다시는 이런 죄를 짓지 않겠노라고 애통해하며 회개했지만 어느 새 또 그 자리에 가 있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안간힘을 써서 날개를 푸덕여 보지만 어느새 다시 곤두박질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다시 한번 날개를 펴서 우리를 받아주시고 등에 업혀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한번, 또 다시 한번, 우리가 날 수 있을 때까지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독수리 새끼가 떨어 질 때 살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날개 짓을 하듯이 우리도 이제 스스로 영적인 날개 짓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기도해야 합니다 .스스로 전도해야 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스스로 수요예배 금요기도회에 나와서 말씀을 배우고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세계선교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날개 짓이 없다면 우리는 날 수가 없게 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적인 날개 짓을 하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약속의 성취와 복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게으르지 않고 훈련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안주하지 않고 연단되어지는 자에게 허락됩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떤 철새가 하늘을 날다가 내려다보니 아래에 많은 먹이가 널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철새는 배고픔을 못 이겨 그 먹이가 있는 장소로 내려가 실컷 주워 먹었다고 합니다.. 먹이에 정신이 팔려 결국 그 새는 그곳에 눌러앉고 맙니다. 다시 1년이 지나자 동료 철새들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 철새는 자기도 이제는 합세해 보려고 날려고 했으나 너무 살이 많이 쪄서 날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또 다시 1년이 지나자 동료 철새들이 고향으로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다시 시도해 보았으나 전번의 반도 못 오르고 그냥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번 째 겨울이 지나게 되었을 때 철새는 몸이 너무 비대해져서 고향으로 날아갈 꿈을 영원히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혼자 외로이 살다가 쓸쓸히 죽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나태하거나 게으르면 안됩니다. 안주하거나 주저앉아 있으면 큰일납니다. 영적으로 비대해 지게 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둔해지게 됩니다. 하늘을 날아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힘차게 날아갈 때 날지 못하는 처지가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처기가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영적으로 연단과 훈련을 잘 받아 독수리처럼 날개치며 올라가는 멋진 신앙의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