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의 거룩한 분노

♣ 주일설교 2007-10-28 ♣
\"한 사람의 거룩한 분노\"


삼상 11:1-11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를 대하여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2]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3] 야베스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유예를 주어 우리로 이스라엘 온 지경에 사자를 보내게 하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4] 이에 사자가 사울의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고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가로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로 고하니라 [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7] 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8]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을 계수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이더라 [9] 무리가 온 사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 하라 사자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10] 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가로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소견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 [11] 이튿날에 사울이 백성을 삼 대에 나누고 새벽에 적진 중에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사울이 왕으로 선택을 받았지만 정식으로 취임은 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이방나라인 암몬 족속의 왕인 나하스가 요단 동편 길르앗 야베스를 포위했습니다. 길르앗은 므낫세 지파입니다. 요셉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이방인 암몬 족속의 왕에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한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프라이드는 눈꼽 만치 없습니다.
  먼저 언약을 요청합니다. 우리를 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우리는 너희를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얌몬 족속의 왕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모욕합니다. 너희의 오른 쪽 눈을 다 빼면 너희와 언약을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이스라엘 온 지파에 연락을 해서 우리를 구원해 줄 사람이 없으면 너희의 말대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비굴하고 비겁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성통곡을 합니다. 왜 우리들이 이렇게 처량해졌나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존심이 상하고 모욕을 당해도 어찌할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백성들의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백성들이 우는 이유를 들었을 때 사울에게 하나님의 신이 감동되고 노가 크게 일어났습니다. 6절을 볼까요?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사울은 거룩한 분노를 느낍니다. 그리고 분연히 일어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촉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모욕과 멸시를 당하고 있는데 너희들이 겁먹고 너희 자신들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만있으면 너희들의 소를 각을 떠서 죽여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7절, \'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드디어 이스라엘이 사울과 사무엘을 중심으로 모이고 뭉칩니다. 그리고 동족을 암족 족속의 손에서 구원합니다.

   오늘 날 예수 믿는 우리들도 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나약한 상태에 있지 않는가를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심이 있는지, 세상을 이기고 변화시키려는 거룩한 분노와 의지가 있는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우리는 한 공동체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요즈음 핵가족화 시대가 되다보니 개인주의가 팽대해지는 것 같습니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촉구하기 전까지는 그러했습니다. 다른 지파야 어떻게 되든 내 지파만 잘 되면 되, 다른 족속은 어떻게 되든 내 족속만 안전하면 되..
  이스라엘의 족속들은 열 두 지파에서 나왔습니다. 열 두 지파는 야곱의 아들들입니다. 한 아버지 밑에서 나온 것입니다 야곱의 아버지는 이삭이요 이삭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동체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영적인 조상인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입니다. 이것은 유기적인 한 공동체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5은 이것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교회가 진정으로 부흥하기 위해서 이러한 지체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옆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어떤 때는 권면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내 코가 석자인데..  내 자신도 추수르기도 힘든데, 뭐 귀찮게..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지요.
  발이 지금까지 걸었는데, 피곤하고 나가기 싫다고 손이 칼에 베여 피가 나고 있는데 병원으로 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너희는 하나이고 하나가 되라는 주님의 명령에 대해 우리는 적극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둘째, 한 사람의 거룩한 분노가 공동체를 살립니다.

   사울 한 사람의 분노가 길르앗 야베스 족속을 살렸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살렸습니다. 이기주의와 패배주의와 안일무사주의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었고 경각심을 일으켜 주었습니다.
   만일 사울이 강력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전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며, 동족애를 새롭게 세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일어서는 사람이 우리가운데도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초대교회가 새로워지고 부흥될 것입니다.
   딴 사람이 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사울처럼 일어서야 합니다.

   북해에서 청어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가장 큰 고민은 북해에서 잡은 청어를 어떻게 하면 살아있는 채로 런던까지 운송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청어가 런던에 도착하기 전에 죽어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어부는 언제나 북해에서 잡은 청어를 산채로 런던까지 운송을 해와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었습니다. 그 비결을 다른 어부들이 알려고 했지만 알려 주지를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 비결이 알려졌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청어가 담긴 수조 속에 메기 한 마리를 집어 넣은 것이었습니다. 청어들은 메기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서 수조 안에서 필사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메기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그 긴장감이 청어로 하여금 수조 안에서 오랜 시간동안 살아남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거룩한 분노로 일어났던 루터로 인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죽어가던 기독교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메기와 같은 존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초대교회 공동체가 잠들지 않도록, 안일한 상황 속에 안주하지 않도록 도전을 주고 자극을 주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거룩한 분노는 성령님께서 기뻐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6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성령에 크게 감동될 때 사울에게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성령님께서 역사할 때 거룩한 분노가 일어납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분노를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거룩한 분노가 일어날 때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 집중되기 때문에 사람을 겁내지 않습니다. 주변 환경을 겁내지 않습니다. 사울에게 있어서 암몬 족속이 아무리 강하고 군사력이 많다 할찌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 그들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었어도 그들을 거룩한 분노로 책망을 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을 책망합니다. 사도행전 3:14-15을 볼까요?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베드로를 잡아 가둡니다.

  \'사람을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령의 감동으로 거룩한 분노를 가져야 합니다.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안타까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살고, 공동체가 살고, 교회가 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독자 한마디

의견쓰기
이 름 E-mail
제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