ㅏ부흥을 맛보고 싶습니까?


♣ 주일설교 2007-10-21 ♣
\"부흥을 맛보고 싶습니까?\"

 

요 21:1-23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베드로는 한 때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열 두 제자를 다 데리고 가시지를 않으시고 몇 명만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 중에 베드로는 빠지지를 않을 정도로 예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은 제자였습니다.
   영적으로 성공하고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도 예수님이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실 때, 자기도 예수님의 정권에서 큰 권력을 잡을 것이라는 소망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의리와 의협심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는 다 예수님을 버릴찌라도 자기는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할 것을 말씀하셨을 때에는 주님 그리하시면 안된다고 말린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나오시는 예수님을 잡으려는 사람들을 향해 주님을 넘겨 줄 수 없다고 담대하게 칼을 휘두른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오른 팔의 자격이 있는 제자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베드로에게 엄청난 추락이 시작됩니다. 추락에는 날개가 없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이 심문 받으시는 현장에서 계집종 앞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그는 대성통곡을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감이지요. 나 같은 몸은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예수님의 제자, 즉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니라 물고기를 잡은 어부, 과거의 베드로로 돌아갑니다. 베드로의 추락은 이제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기 전으로 추락을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의욕도 사명감도 열정도 비젼도 다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완전한 실패요, 패배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에게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회복이 찾아오게 됩니다. 기적적인 부흥이 다가오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이 그 내용입니다. 그럼으로 진정으로 치유와 회복을 바라는 분들은, 진정으로 부흥과 성공을 갈구하는 자들은 오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해야 합니다.

먼저, 베드로처럼 주님 앞에 우리의 빈 모습을 솔직히 고백합시다.

   5절을 봅시다.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베드로가 어부로서 잔뼈가 굵은 어부입니다. 디베랴 바다는 베드로가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이 잘 아는 곳입니다. 어느 곳에는 고기가 있고 없고, 어느 시간대에 고기가 잘 잡히고 잘 안 잡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 밤새도록 수고했는데도 불구하고 고기가 없다는 것은 아주 창피한 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솔직하게 자신의 빈 모습을 고백했습니다. 고기가 없다고 말입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아갑니다. 의사가 묻습니다. 언제부터 통증을 느꼈습니까? 어떤 증세가 나타납니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만일 거짓말로 대답을 한다면 그 사람은 병을 고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솔직하고 정확하게 말해 주어야 의사는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는데 도움을 얻게 됩니다. 그리해야만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지금의 빈 모습, 상황에 따라 빈 모습이 다르다 할찌라도, 그것이 영적인 빈 모습이든지, 물질적으로 빈 모습이든지, 가정과 직장과 비지니즈에서의 빈 모습이든지 상관없이 그것을 주님께 고백할 때, 주님은 그 사람을 위한 회복을 위한 작업을 시작하십니다. 그러므로 빈 모습의 솔직한 고백은 진정한 회복과 치유를 치유한 첫 계단을 올라가는 것입니다. 

   349장을 우리는 참 좋아합니다. 그 가사처럼 \'나 주의 도움 받고자 내 모습 이대로\', 주님께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베드로처럼, 우리의 마지막 아킬레스끈인 자존심 마저도 내러 놓읍시다.

   6절을 볼까요.
   [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내가 이래도 이 부분에서는 전문가인데, 당신이 뭘 안다고 충고를 해.. 령하시는 분이 예수님인줄 모른 상태인데 웬 젊은 청년이 고기 잡는 것 가지고 충고하면 엄청 기분 나쁘지요. 

   어떤 사람은 죽으면 죽었지 자존심은 못 버린다고 하는데, 과연 그 자존심이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인 궁금합니다. 실은 우리가 고집부리면서 붙들고 있는 자존심이란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이 많습니다. 괜히 그것을 붙들고 있다가 실컷 손해보고, 망가지고,,  후회하는 경우가 참 많지요.

   어떤 젊은이가 사막 길을 가다가 자가 멈추어 섰습니다. 차를 고치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조치를 취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때 어느 차가 그 곁을 지나다가 멈추어 섰습니다.
   \"여보세요 제가 도와 드릴까요?\"  그 소리를 듣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젊은이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백발이 휘날리는 노인이었던 것입니다.
   \'내가 고치지 못하고 있는데 저 노인이 어떻게 이 차를 고쳐.\' 머뭇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다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봐요 젊이 제가 봐 드려도 될까요?\"
   이 젊은이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밑져야 본전이지 하고 \'고쳐 보시유\'하고 마지 못해 허락을 했습니다. 그 노인은 어디 한 번 볼까하고 차를 드려다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무엇을 만지는가 싶더니 젊은이에게 시동을 걸어보라고 했습니다. 부르릉 시동이 걸렸습니다. 젊은이는 깜짝놀랐습니다. 자기는 지금 몇 시간동안 이 차를 고치려고 땀을 뻘뻘 흘려도 못 고쳤는데 도대체 이 노인은 누구란 말인가?
   이 젊은이는 공손한 자세로 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이 차를 만들은 포드라는 사람입니다.\"
   만일 젊은이가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다면 그는 엄청난 어려움을 당했을 것입니다.

   자존심하면, 베드로도 대단하지요.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고, 주님으로부터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장담하기를 좋아하고 어떤 때는 잘난체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는 이제 자존심을 내려 놓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없었다면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회복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배경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있습니다. 당대의 최고의 스승인 가말리엘릐 문하생입니다. 율법에 있어서는 둘 째 가라면 서러울 사람입니다.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배설물처럼 자존심을 버립니다.

   이렇게 우리의 자존심을 내려 놓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하실 때, 우리는 진정한 권위를 얻게 됩니다. 우리의 자존심하고는 비교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아킬레스끈과도 같은 자존심을 내려 놓고 포기 할 때 치유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회복의 징조가 나타나게 됩니다. 부흥의 시동이 걸리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머리 굴리지 말고 무조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명령에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반대의 생각도 말하지를 않습니다. 마치 반사적인 자세로 순종합니다.  6절을 보세요.
   [6] 이에 던졌더니

   머리 굴릴수록 고생합니다. 만일 베드로가 자기의 머리를 굴려서 계속해서 고기가 있을 만한 곳에 그물을 던졌다면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못 잡았을지도 모릅니다.

   6절의 \'이에\' 라는 말은 예수님의 명령과 순종사이에 시간적인 그리고 심리적인 간격이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순종했습니다. 망설이지도 않았습니다. 주저하지도 않았습니다. 연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갈등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똑똑해서 탈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배웠고, 너무 많은 경험들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너무나 많은 전문적인 식견과 지식을 갖고 있고 든든한 빽(bsck)과 돈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순종이 바로 되지 않을 때가 참 많습니다. 일단은 경험으로 명령을 판단합니다. 지식으로 판단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소유를 갖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요리 저리 따져 보고, 검토하고 분석하고 판단합니다. 지혜로운 것 같지만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이미 기회는 지나가고 맙니다.

   목사님이 공 예배에 가능하면 빠지지 말고 열심히 나오세요, 다른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나오십시오. 저는 저를 위해서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간절히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순종하고 안 하고 하는 것은 여러분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나아가서 하나님께 얼굴을 보여 드려야 할 것 아닙니까? 뭐 하나님이 꼭 교회에만 계시냐? 어디에나 계시지, 하면서 공예배가 비즈니스 때문에,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 때문에 우선 순위가 밀려나게 되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언 8:17의 말씀과 히브리서 12장 25절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주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사명을 회복시키십니다. 사람낚는 어부로서의 비젼을 새롭게 해 주십니다. 베드로에게 영적인 부흥을 주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고, 내 양을 치라고. 베드로는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베드로는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다시 베드로에게 부흥의 불길이 붙습니다.

  우리에게도 몸과 마음과 영혼의 치유가 풍성하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내 개인과 가정과 생업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부흥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그리고 이 초대교회 위에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처럼 영적인 부흥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