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설교 2007-10-07 ♣ \"만남의 축복\"
삼상 10:1-8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 [2]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비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를 인하여 걱정하여 가로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3]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께 뵈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이 너와 만나리니 하나는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하나는 떡 세덩이를 가졌고 하나는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4]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 손에서 받으리라 [5]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6]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7]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8]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삶을 인도하시는 방법 중에 놀라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만남\'이라는 것입니다. \'만남\'이라는 하나님의 섭리는 비단 한 개인의 삶을 인도하는 일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역에도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꺼집어 내실 때, 하나님은 모세를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큰 손으로 집어서 단숨에 가나안 땅으로 옮기실 수도 있지만 그리 하시질 않으시고 모세를 만나셔서 모세에게 그 일을 맡기십니다. 이제는 양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러한 80세의 늙은 양치기 모세에게 말입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들을 찾으시고, 만나셔서 일을 맡茱決윱求? 하나님은 다윗을 만나셨고, 이사야를 만나셨고 엘리야를 만나셨고, 요나를 만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왕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요구가 아니었지만 그들이 강력하게 구함으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왕으로 세울 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시골에서 사는 청년입니다. 베냐민 지파의 작은 족속의 한 청년이지요. 그의 아버지 기스는 아들 사울에게 잃어버린 암 나귀를 찾아오라고 심부름을 시킵니다. 아무리 찾아도 암나귀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사환의 말에 따라 암나귀를 찾기 위해서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이 찾아 올테니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세우라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단지 암나귀를 찾기 위해서 사무엘을 만나지만 사무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그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시골의 청년에서부터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세워지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놀라운 변화가 그에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은 아무 것도 몰랐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사울을 위해서 사람들을 준비시켜 놓았던 것입니다. 사울이 만났던 사람들은 그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사울과 같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사람들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만남의 은총을 통해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만남의 은총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만남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새롭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떤 분들을 만나야 할까요?
첫째, 좋은 영적인 지도자를 만나야 합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만났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사울에게 왕으로 기름을 부을 영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너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다.\'고 사울의 사명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절을 볼까요. [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 이렇게 우리도 영적인 지도자를 잘 만나게 되면, 그 분을 통해서 영적인 기름부음 즉 성령의 기름부음을 전이(轉移)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 자신의 은사와 비젼이 무엇인지를 그분을 통해서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기름부음의 전이를 \'임파테이션\'이라고 하지요. 이것은 영적인 지도자 자신이 성령의 은혜를 부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은혜를 전달하도록 도구와 통로로 사용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과 바울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합니다. 하나님이 사도들과 바울을 사용하셔서 성령의 은혜와 기름부으심을 베푸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행 8: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좋은 지도자를 만날 때,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비젼과 사명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울과 다윗이 사무엘을 만났을 때 그랬지요. 그러므로 우리도 좋은 지도자, 좋은 멘토를 만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만났고, 엘리사는 엘리야를 만났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둘째, 좋은 소식을 전해 주는 분들을 만나야 합니다.
지금 사울의 최대의 관심사의 일은 아버지의 심부름인 암나귀를 찾는 것입니다. 암나귀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암나귀를 찾았다는 너무나 기쁘고 좋은 소식을 전해 주는 두 사람을 사울은 만나게 됩니다. 2절을 봅시다. [2]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비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를 인하여 걱정하여 가로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사울에게 있어서 얼마나 기쁜 소식었습니까? 아마 뛸듯이 기뻤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암나귀를 찾기 위해서 고생하고 염려해온 사울에게 큰 위로와 격려의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하러 들어간 열 두 명의 정탐꾼 중에 열 명이 부정인 보고를 했지요. 가나안 사람들에 비하여 자기들을 메뚜기와 같다고. 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슴을 치며 울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여호수와와 갈렙은 긍정적인 믿음의 소식을 들려 주었습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가나안 사람들을 우리의 밥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수와 갈렙의 소식에 다시 힘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정탐하려 들어간 두 명의 정탐꾼을 라합이라는 기생을 만났습니다. 이 만남은 두 명의 정탐꾼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에게 행운이었습니다. 라합을 만남으로 두 명의 정탐꾼은 여리고 왕에게 잡히지 않을 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리고성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신 소식들을 이미 알고 있었고 이것으로 인해 그들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소식을 들려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공격하는 데 큰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좋은 소식, 긍정적인 소식, 소망의 소식, 위로와 격려의 소식을 전해 줄 사람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안된다는 소식, 부정적인 소식, 비관적인 소식을 전해 주는 사람을 만나지 말고,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 라합과 같은 사람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배자를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실한 마음으로 섬기고 예배하는 믿음의 지체들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3, 4절을 보면 사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3]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께 뵈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이 너와 만나리니 하나는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하나는 떡 세덩이를 가졌고 하나는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4]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 손에서 받으리라
하나님께 뵈려고 즉 하나님께 예배하려 가는 세 사람을 만나지요.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는 떡 두덩이를 사울에게 줍니다. 사울을 언제 봤다고 말입니다. 이들은 갖고 있었던 떡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준비했던 것입니다. 사울은 지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이 곳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제물이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와 함께 하나님께 예배할 자, 내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도록 나를 도와 줄 사람을 만나도록 기도합시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못하게 하는 자, 예배드리는 것을 방해하는 자를 만나면 우리의 삶이 비참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넷째, 영적인 중보기도자를 만나야 합니다.
사울은 계속 가다가 또 이상한 무리들을 만납니다. 어떤 사람들이지요? 5절을 봅시다. [5]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며 예언하며 내려오는 선지자들을 만납니다. 이 당시에 이곳에 선지학교에 있었던 같습니다. 오늘날의 신학교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사무엘이 이 선지자들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성경에 보면 선지자들은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도록,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권면하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선지자가 사무엘이요, 이사야요, 예례미야입니다.
바로 사울이 만났던 선지자들은 앞으로 사울이 다스릴 이스라엘을 위해서 중보기도할 자요, 왕으로 세워지는 사울을 위해서 중보기도할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영적인 중보기도자들을 만나도록 기도합시다. 영적인 중보기도자를 만나게 되면 우리의 앞길을 막는 사단의 세력들이 깨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를 공격하고 미혹하는 어두움의 영들로 부터 보호를 받게 됩니다.
다섯째, 성령님을 만나야 합니다.
구약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사울이 성령님을 만났다는 것은 놀라운 은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6절을 봅시다. [6]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사울에게 여호와의 신 즉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 후에 본격적으로 보혜사 성령님이 오셔서 역사를 하셨지만 구약시대에 이렇게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이 사울을 만날 때 사울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을 합니다. 이것은 사울에게 성령이 임했다는 증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완전히 새사람이 됩니다. 이스라엘 왕으로의 영적인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지금이나 우리는 성령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령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는 새사람이 되는 됩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7절에,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성령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고 난 후에 너는 왕으로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리라. 너의 앞길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랍고도 형통한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남의 축복은 무엇보다도 귀중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우리가 이 가을에, 아니 우리의 생애에, 이 초대교회에 좋은 영적인 멘토와 지도자들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좋은 소식, 긍적적인 믿음의 소식을 전해 줄 사람을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함께 예배하고 섬길 일꾼들과 봉사자, 성도들을 만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강력한 중보기도자를 만나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보혜사 성령님을 만나고 그 분이 우리의 전 생애와 이 교회를 인도하시는 놀라운 은총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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