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것과 사는것에 갈림길


♣ 주일설교 2007-07-08 ♣
\"죽는 것과 사는 것의 갈림길\"



 행 16:19-34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9]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서는 사람들이 적지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섰던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는 내 인생의 가장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그 어떤 문제도 이것을 우선 할 수도 없고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돈, 권력, 명예, 지식, 건강, 출세, 성공..  그 어떤 것도 죽고 사는 문제 앞에는 뒤로 밀리게 되어 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세계의 중심지 뉴욕 맨하탄,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테러에 의해서 무너지는 끔직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911 테러 사건이지요. 50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고 말았습니다. 嗤뮌?사람들이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살아나기도 했고, 죽기도 했습니다. 간만의 차이로 죽은 사람들도 있고, 간만의 차이로 산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테러가 나기 한 달 전에 그 부근을 지나갔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5월, 약 6년 만에 그곳에 다시 한 번 서 봤습니다. 

   1995년 6월 29일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기억하십니까? 501명의 사망자를 냈던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던 날입니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 갇혔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단 세 명만이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건물더미에 묻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섰지만 살아난 사람이 불과 세 사람이었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 날도 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뽀얀 먼지와 탁한 냄새를 저는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어느 집사님으로 부터 급하게 울부짖는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목사님, 어머니가 그 시간에 삼풍백화점 안에 있는 은행에 가셨는데, 어쩌면 좋아요 기도해 주세요.\'  이렇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있을 때는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도 급박합니다. 중보기도했지요, 다행히 그 분은 무너지기 직전에 그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맨하탄의 세계무역센타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기 8개월 전, 1994년 10월 21일 출근길에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32명의 아까운 생명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오전 출근 시간에 이 성수대교를 건너 교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강남성모병원에서 장례가 나서 장례식에 참석하러 1시간 일찍 이 다리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렇게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섰던 경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경우가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때의 세 명의 생존자, 그들은 건물 잔해 더미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했고 절박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생사의 갈림길에 선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바울과 실라요, 한 부류는 간수 즉 감옥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귀신들려 점을 쳐주는 여 종, 즉 노예이지요. 귀신을 내어쫓고 이 여자를 고쳐 주었습니다. 이 여자는 점을 쳐서 주인에게 돈을 벌어주는 돈 버는 기계나 마찬 가지였는데, 돈벌이가 끊어지게 되었는데 주인이 가만있겠어요. 고발합니다. 그래서 감옥에 갇히는데, 엄청난 죄목으로 뒤집어씌웁니다. 그래서 보통 감옥이 아니라 아주 중범죄자를 넣는 깊은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당시의 압제자인 로마를 반대하는 죄로 뒤집어씌었기 때문에 살아나오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20-23절을 봅시다.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바울과 신라는 맨살에 많은 매를 맞고 깊은 옥에 던져지고 그 것도 부족에 발에 착고가 채워졌습니다. 과연 우리가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이 곳에서 죽게 될까, 그들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또 한 부류의 사람은 감옥을 지키는 간수였는데, 감옥이 열려진 것을 보고 죄수인 바울과 신라가 도망친 것으로 알고 그 책임을 추궁을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자살을 하려고 합니다. 지금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실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는 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했다 할찌라도 결과가 죽는 것으로 끝나버리게 된다면 그것처럼 허무하고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아나게 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것처럼 기쁜 일이 있을 수 없지요.

  우리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죽는 것과 사는 것의 갈림길에 서게 될 때, 우리가 사는 길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좋은 사람을 만나도록 하십시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복입니다. 사람을 잘 못 만나 전 재산을 날리는 사람도 있고, 사람을 잘 못 만나 감옥에 가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사형을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잘 만나 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잘 만나면 인생역전을 할 수도 있고, 삶이 놀랍게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바울과 신라를 지키는 간수는 정말로 사람을 잘 만난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 인생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과 실라가 도망갔다면 그는 엄청난 책임을 물어야 됩니다. 그래서는 그는 죽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신라는 도망가지를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결하려는 그 사람에게 죽지 말라고 고함을 칩니다 .이런 고마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27-28절을 봅시다.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죄가 없는 자기들을 감옥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간수를 도리어 살려 줍니다. 다른 죄수였다면 열 이면, 열 다 도망갔을 것입니다. 감옥이 귀신이 곡하듯이 쫙 열리는데, 이거 하늘이 나를 살리는 구나 하고 도망가지 않겠어요. 그랬다면 간수는 죽었을 것입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되, 특히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만나십시오. 그 중에서도 바울과 실라와 같은 믿음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십시오.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살아나는 행운을 얻게 될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정말로 잘 믿으십시오.

  이렇게 자기를 살려준 바울과 실라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느냐\'고.  여기서 구원을 얻는 것은 육신적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만 영적으로도 살 수 있느냐하는 간곡한 물음입니다. 29절, 30절을 봅시다.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바울이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고 대답합니다. 주 예수를 믿는 것이 너와 네 집안이 진정으로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살 수 있는 확실한 선택입니다. 우리는 인류의 시초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죄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도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 죄를 우리는 원죄(原罪)라고 합니다. 로마서 5:18에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우리 스스로 짓는 죄 즉 자범죄(自犯罪)라고 합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기 때문에 우리는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6:23의 \'죄의 삯은 사망이요\' 에베소서 2:1의 \'너희의 죄와 허물로 죽었던\' 

  그런데 이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우리는 살리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5:24 말씀은 이것을 분명하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래서 바울도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서 있는 간수에게 다른 어떤 말 보다도 \'주 예수를 믿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분들은 기왕이면 잘 믿어야 합니다. 잘 믿는 것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우리들이 暈瑛?갈림길에 서게 될 때 우리는 살리는 원동력이 됩니다. 마귀는 죽이는 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마귀가 우리를 우습게 보지 못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예수님을 잘 믿으니, 그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지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감옥문을 열어 바울과 실리를 살리십니다. 할렐루야.

셋째, 기도하고 찬양하십시오.

   우리가 어려움을 만날 때도 있고, 죽고 사는 생사의 갈림길에 설 때도 있을 것입니다. 환경과 처지를 보면 두려움이 우리를 누르게 됩니다. 걱정과 근심이 우리를 휩싸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도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길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너희가 염려함으로 너희의 키를 한 자나 더 키울 수가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염려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아세요. 결국 자기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수도 자기 목숨을 끊는 것을 순간적으로 선택하려 했던 것입니다.

   요즈음 자기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해 전쟁이나 살인으로 죽는 사람들을 합친 수 보다 자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더 많은 실정입니다. 이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도 매년 자살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데, 한 해 평균 35만 여 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중 1만 932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이 같은 수치는 매 48분마다 1명이 자살하고, 1분30초마다 1명이 자살을 시도하는 꼴이지요.
   어떤 사람은 자살은 의지가 약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아주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들의 구별이 없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들의 구별이 없습니다. 청소년에서부터 노인들에게 이르기까지 구별이 없습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 의지가 약한 사람, 구별이 없어요. 자살은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갑니다. 순간적입니다.
  가정이 행복하면 자살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자살에는 다양하고도 수만 가지의 외적인, 내적인, 정신직인, 육제적인, 환경적인, 심리적인, 인간관계적인 요인이 많기 때문에 자살은 정말로 무차별적입니다.
  그래서 자살한 사람의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자살할 요인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그 가족조차도 생각하지 못하는 자살의 요인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어떤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목사님, 이래서 자살을 하는 거군요.\' 자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자기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니 하니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 외에는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없어요. 믿음의 사람들이 다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생사의 기로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니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26, 26절을 볼까요.
  \'[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다니엘이 위기 속에서 기도하니 사자들의 입을 하나님이 막으셨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불에서 하나님이 건지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기도하니 하나님이 그 생명을 15년 연장시키십니다. 에스더가 금식하고 왕께 나아가니 이스라엘 온 국민들이 죽음에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할 때 오기일 전도사는 정보군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학생들의 동태를 살피고 오라는 밀명을 받은 후 등산객으로 가장하여 광주 시내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다가 보초를 서고 있는 5명의 대학생들에게 체포가 되었습니다. “군인인가?” “아니다” “왜 산에서 내려오나?” “아침에 등산 갔다 온다.” 학생들은 그의 몸에서 육군이라고 쓰인 호신용 권총을 찾아 냈습니다. 군인의 신분이 드러난 것이다. “손 들고 뒤로 돌아서라.” 총에 실탄을 장전하는 소리…. 그는 생명을 포기하고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학생이 물었습니다. “예수를 믿는가.” “나는 신학생 전도사다.” “나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종을 죽일 수는 없다.” 이 찬송으로 오기일 전도사는 지금까지 살아있습니다. 찬송은 우리를 위기에서 건지는 구원의 열쇠임을 보여 주는 실제의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살 수 있는데도,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면 그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대로 우리는 사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믿으시는 분이시면 기왕 믿는데 잘 믿으세요, 기도하고 찬양합시다. 그리하여 어떤 위기 속에서도 진정으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놀라운 은총의 수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