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셔야 할잔


♣ 주일설교 2007-06-17 ♣
\"내가 마셔야 할 잔\"



 마 20:20-28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나 지금이나 자녀들이 잘 되고 출세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같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권력을 잡으실 때에 자기 아들들을 최 측근 높은 자리에 앉혀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구원의 세계임을 모르고 로마의 압제를 무너뜨리고 세우지는 새로운 정부로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아마 예수님께 간절히 부탁했던 어머니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도 자기 어머니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들도 예수님이 정권을 잡을 때 한 자리에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께서 이루실 주님의 나라를 육신적인 것으로, 정치적인 것으로 계속 이해했던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주님께서는 매우 답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불렀습니다. 마가복음 1:17을 봅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불렀다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일에 동역하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영혼의 구하는 일은 세상적인 영광을 받는 일이 아닙니다. 출세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영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이러한 복을 무엇과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잔을 받아야 할 때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자기 아들들을 출세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구하는 것이 잘못되었구나. 너희가 나를 오해하고 있구나. 너희는 과연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가 있는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실 수가 있어야만 너희도 나와 함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마시려하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가 있느냐?\' 이 말씀은 그 당시 제자들의 어머니와 제자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고 몯고 계시는 주님의 질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잔을 마시기를 주님은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의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내가 섬기는 것처럼 너희도 섬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섬김의 잔\'을 받을 수 있느냐는 말씀이지요.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낮아지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은 인간이 구더기가 되는 것보다도 더 큰 낮아지심입니다. 왜 이렇게 낮아 지셨습니까? 바로 우리들을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권력자와 같이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음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그러므로 너희들도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출세하기를 원하는 제자들과 그 어머니에게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하시고, 종이 되라고 하시는 말씀은 아주 도전적이고 충격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처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섬김의 잔을 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섬겨 주기만을 바라고, 나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무관심하고 귀찮아 한다든지 하면 아직도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성숙한 신앙의 단계로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섬김의 잔을 마셔야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공하고 싶습니까? 잘 되고 싶습니까? 존경을 받고 싶습니까? 종이 되십시오. 섬기십시오. 이것이 정답이요 비결입니다. 본문 26, 27절이 바로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는 물음의 의미는, \'내가 고난당하는 것처럼 너희도 고난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잔\'을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는 순간에도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태어나시는 것도 그렇지만 마땅히 태어나실 장소가 없어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우리 주님의 공생애 기간 3년은 고난의 연속이셨습니다. \'공중의 새들도 머리 둘 곳이 있는 데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주님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삶이 얼마나 고난의 연속이었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53:3에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유대인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제사장들,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주님은 엄청난 정신적인, 육체적인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갖은 고난을 다 당하시다가 드디어 십자가에 못 박혀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고난과 고통의 절정이지요.

   \'이 고난의 잔을 너희들이 받을 수가 있느냐\' 하는 물음입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물음 앞에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고난의 잔을 마시겠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우리로 하여금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믿고 구원 얻고 영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너무나 감사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만 알고 있다면 절반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나머지 절반의 정답이 무엇인지 아세요.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립보서 1:29에 명확하게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내 일 때문에, 내 문제 때문에 고난받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고난을 요리 저리 피해서는 안됩니다. 감사함으로 그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로마서 8:17의 말씀이지요.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기업을 받는 상속자라면, 이러한 영광을 받을 자라면 당연히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도 골로새서 교인들에게 이렇게 기쁨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24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고난을 받읍시다. 주님을 위해서 받는 고난을 기쁘게 여깁시다. 마태복음 5:11-12을 현대어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제자라는 이유로 모욕당하고 박해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받을 때 너희는 행복하다. 그럴 때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이같이 박해를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라.   

   너희가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의 주님의 질문의 또 다른 의미는 내가 죽는 것처럼 너희도 죽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잔\'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습니다. 육체만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영혼까지 버리심을 당해야만 하셨습니다. 자존심도, 인격도 핍박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침 뱉음을 받으셔야 했고, 주먹으로 구타를 당하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이 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이 모든 것이 죽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 5: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욕심이 살아있고, 우리의 이기심이 살아있고, 우리의 야망이 살아있고, 우리의 자존심이 살아있고, 우리의 고집이 살아있고, 우리의 옛 습관과 성격이 살아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이 죽음의 잔을 받을 받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내가 죽어야만 내 안에 주님께서 사실 수가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만 내 속에 성령께서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했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가 죽었음을 깨달읍시다. 죽었음을 확인합시다. 내가 죽었음을 선포합시다. 그리고 그렇게 삽시다.

   기독교는 역설적(逆說的)인 종교입니다. 성경은 역설적인 교훈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잘 이해하기가 힙듭니다. 역설적이라는 말을 아시지요? 어떤 주장이나 이론이 겉보기에는 모순되는 것 같으나 그 속에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섬겨라 그러면 큰 자가 된다.  종이 되라 그러면 으뜸이 될 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넘치게 되리라. 버려라 그러면 찾게 될 것이다. 죽어야 살리라.

   오늘 우리는 이제 이기적인, 내 중심적인, 이해타산적인 신앙의 자세를 다 내려 넣고, 이제 주님이 주시는 잔을 받읍시다. \'주님이 본을 보이셨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섬김의 잔, 고난의 잔, 죽음의 잔을 내가 받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