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진리

♣ 주일설교 2007-06-03 ♣
\"비움의 진리\"


딤후 2:20-26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우리가 어떤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 문제가 물질에 대한 문제이든, 부부간의 문제이든, 가정의 문제이든, 비즈니스의 문제이든, 인간관계의 문제이든, 건강에 대한 문제이든, 장래에 대한 문제이든, 어떤 문제이든지 간에, 더 나아가서 죽느냐 사느냐에 대한 문제이든지 간에 결국 도달하는 곳은 어디인지 아세요? 하나님 앞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카드를 내 놓아야 할 곳은 \'하나님의 보좌 앞\'이란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오기 까지 많은 곳을 거치게 되지요. 많은 사람들을 거쳐 왔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진정한 문제해결을 찾기가 힘들었다는 말입니다.

  12년동안을 혈루증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아왔던 한 여인이 많은 의사들을 거쳤습니다. 많은 물질도 거쳤습니다. 결국 그녀가 마지막에 도달한 곳은 주님 앞이었습니다. 마태복음 5:25-27을 볼까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우리의 모든 문제의 외형적인 원인은 문제마다 다를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영적인 것입니다. 영적막?풀 때 모든 문제가 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 1:2에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혼이 잘되는 것이 모든 잘 되는 것의 기초이요, 모든 잘 되는 것을 가져오게 하는 견인차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라\'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지막에 가서야 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 어쩌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마지막 까지 가서 이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없습니다.  미련하게도 마지막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삶으로, 교훈으로 가르쳐 주신 이 원리를 따라 살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에 놀라운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원리대로 살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십시오. 이루어질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는 요한복음 15:7의 주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진리를 \'비움의 진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진리는 세 가지의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비우는 단계입니다. 

  비움으로 문제 해결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체하든지, 감기나 병에 걸리게 되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입맛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짐승들도 아프면 잘 먹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속을 비우는 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첫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소화불량은 배 속을 비워야 낫게 됩니다. 급체했을 때는 토하고 나면 속이 편해 집니다. 소화제를 먹는 것 보다 비우는 것이 급선무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많은 문제가 우리 속에 많은 것이 있고, 또 많은 것을 가지려 하기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욕심이요 탐심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불안감을 줍니다. 근심과 두려움을 줍니다. 불평과 불만을 일으키게 합니다. 미움과 증오를 줍니다.
  토하는 것이 당시에는 매우 힘들지요, 그러나 땀을 흘리면서 토하고 나면 얼마나 시원합니까? 의사한테 갈 필요가 없지요. 우리가 미리 비우게 되면 마지막 과정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도 늘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자신을 비어 좋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까지도 비우셨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구원의 사역을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은 권력에 대한 욕심도, 물질에 대한 욕심도, 명예에 대한 욕심도 없으셨습니다. 늘 비우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빌립보서 2:6-7을 봅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우리는 주님의 이러한 삶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바울도 자기의 모든 것을 비웠습니다. 자기의 학문과 자기의 배경, 자기의 권력, 자기의 신앙적 열심, 자기의 명성, 모든 것을 버렸지요, 배설물 처럼 버렸습니다. 빌립보서 3:8-9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아브라함도 비웠습니다. 자기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친척들이 있고 삶의 터전이 있는 고향을 떠났다다는 것은 자기가 의지하던 모든 것을, 자기가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것을 비웠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가슴 속에 하나님 대신 슬며시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이삭을 비우도록 하기 위해서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까지 비웠습니다.

  롯에게 에덴 동산 같이 보이는 물과 목초가 풍부한 소돔 땅을 조카 롯에게 양보합니다. 비우는 것입니다. 비운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스타일과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비운다는 것이 엄청난 손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손해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비워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요, 문제 해결의 첫 계단입니다.

  요즈음 영성이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하고. \'그 사람이 영성이 있다, 영성이 깊다.\'라는 말을 쓰는데, 영성의 첫 단계가 비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우지 않고서는 영성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도 비워라는 의미의 말을 많이 사용하여 바울은 디모데에게 중요한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21절에,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22절에 \'정욕을 피하고\', 23절에 \'변론을 버리라\'는 말이 나오지요.
\'깨끗하게 하라\', \'피하라\', \'버리라\'는 말은 모두 비워라는 말입니다.
  비워야만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말입니다. 비우지 않으면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두 번 째 단계는 채우는 단계입니다.

  영성은 비우는 것으로 시작하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비움은 채움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왜 비우라고 명령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채우시기 위해서 입니다.        
  요즈음 명상이 많이 유행하지요. 우리는 이 명상을 조심해야 합니다. 동양의 명상은 비우는 것으로 끝납니다. 하나님 없는 명상은 비우는 것으로만 끝나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비워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비우셨지만 하나님은 거기에다 놀라운 것을 채우셨습니다. 무엇이지요? 은혜와 진리입니다. 성령과 능력입니다. 요한복음 1:14과 사도행전 10:38을 봅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가 비워질 때,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오게 됩니다. 은혜가 한량없이 주어지게 됩니다. 능력이 주어기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꾸만 채우려고만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채우는 것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채우는 것이 내 문제의 해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우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비우는 단계를 거쳐야만 채워지게 됩니다.  

세 번 째 단계는 나누어 주는 단계입니다. 

  채워진 것이 고여만 있다면 썩는 냄새가 나게 됩니다. 부패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채우십니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채워진 것은 흘러 넘쳐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누어 주시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자신의 영성과 능력과 은혜를 나누어 주셨고, 자신의 삶과 육체까지 송두리째 나누어 주셨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것을 말고 있지 않습니까?
  자꾸만 가지려고 하는데서 문제는 생기게 됩니다. 문제의 해결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누어 주게 되면 마치 얽혔던 실타래가 풀어지는 것처럼 해결이 오게 됩니다. 나누어주지 않는 사람은 욕심쟁이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지금 제자훈련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받게 되면 나누어주는 삶이 드러나게 됩니다. 내게 있는 것을 주고 싶어집니다. 섬기고 싶어 집니다. 사랑과 관심을 줍니다. 격려와 위로를 줍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제자훈련이기 때문에 주님처럼 나누어 주는 삶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비우고 채워지는 단계를 거친 자들은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22절에,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라는 말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입니다. 24절에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라\'는 말도 남에게 온유함을 주고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라는 말입니다. 25절에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하라는 말\'도 거역하는 자를 무관심하고 대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랑과 관심을 주고 부드럽게 바른 길로 가도록 권유하고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더 중요하게 시급하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비우는 것입니다. 6월은 우리 자신을 비우는 데 집중합시다.
  비우는 일을 지체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우는 것이 빠를수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좋은 것으로 채워주질 것입니다.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것들이 주변으로 흘러 넘쳐 나갈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충만하게 주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