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동

♣ 주일설교 2007-04-15 ♣
\"믿음과 행동\"


수 1:1-6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의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란 말 속에는 예수님을 믿는 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인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행함은 따로 분리 된 것이 아닙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믿음의 행함이 있습니다. 만일 나는 믿음을 가졌노라 하면서도 믿음의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진실된 믿음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26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죽었습니다. 모세는 어린아이와 여자를 합해서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시 세계 최대 강대국 중의 하나인 애굽의 왕 바로와 담판을 해서 노예생활을 하던 애굽에서 구해낸 지도자입니다. 
  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이지를 못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제 자기가 모세를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여호수아에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여호수아가 따르기에는 매우 힘든 疵潔享윱求? 어떤 명령입니까?

첫째, 백성들과 더불어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 심리적인 장애물의 극복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말고 주저앉아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모세의 죽음에 상심해 있고 절망과 염려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격려해서 함께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은 여호수아가 순종하기에는 힘든 명령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기는 모세에 비하여 너무나 어리고 리더십도 부족하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집이 세지요, 불순종적이지요. 하나님께 불평하고, 모세를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금까지 보아왔던 여호수아였습니다. 과연 내가 이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여호수아는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심리적인 어려움과 장애물이 앞에 있습니다. 두려움, 근심, 의구심, 중압감, 부담감 등을 극복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과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이러한 심리적인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이길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극복해야만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계속적으로 격려하신 말씀이 바로 여호수아로 하여금 이러한 부분을 극복하도록 하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5-9의 말씀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의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둘째, 요단강을 건너라는 것입니다. - 현실적인 장애물의 극복

   이 명령은 정말로 따르기 힘든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이 당시 요단강은 보리와 밀을 거두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우기(雨期) 때입니다. 비가 많이 와서 요단강 물이 넘치는 상황입니다. 여호수아 3:13에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라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요단강을 수많은 백성들과 함께 어떻게 건널 수 있겠습니까? 큰 다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배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영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앞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넘실거리는 요단강물과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건너도록 갈라지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건너라고 명령하실 때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도저히 대안이 없을 수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대안을 다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건널 때 갈라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 현실적인 어려움만을 바라보고 주저앉아 있으면, 일어날 수 없게 됩니다. 일어나서 건너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의 일들이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이 진행될 수가 있습니다.

셋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 원수의 공격과 방해를 극복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환영하는 족속들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철병거, 오늘날 말하면 장갑차나 탱크가 되겠지요, 이런 무기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산지에 살고 있는 족속들도 있습니다. 최첨단 무기를 소유한 미군이 산지가 많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데 아주 애를 먹었듯이 산지는 그 만큼 공격하기가 어려운 곳입니다. 더군다나 가나안 땅의 관문인 여리고성은 성이 얼마나 든든하고 놓은 지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여호수아 17:16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내용중의 하나입니다.
  \'요셉 자손이 가로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스안과 그 향리에 거하는 자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는 자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셨고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강퍅한 바로의 마음을 꺾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 내셨습니다. 홍해를 육지같이 가르셨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지요, 반석에 샘물을 내셨지요. 이런 하나님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3절의 말씀대로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라고 그 약속이 이미 다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가서 밟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여호수아가 하나님을 확실히 믿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호수아가 그렇게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을진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름으로 그의 믿음을 확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어나서 건너서 가라는 명령은 결코 쉬운 명령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명령을 순종하는 행함이 없다면 여호수아의 믿음은 거짓된 것이 되는 것이지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젼이지요. 1859년, 프랑스의 곡예사 챨스 블론딘(Charles Blondin)이 <뉴욕 타임즈>에 조그만 광고를 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밧줄을 설치하고, 그 밧줄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블론딘의 광고가 얼마나 무모한지 정확히 인식하려면, 그 폭포의 폭이 335미터 정도, 밧줄에서 폭포까지의 높이는 50미터 정도, 약 20층 높이 가까이 되지요. 매 분당 16만톤 정도 엄청난 물이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 폭포 가까이의 난간을 잡고 서면, 아래로 떨어지는 엄청난 물의 위력에 압도당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블론딘이 폭포를 건너겠다는 그 날 거의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은 아마도 추락사하는 광경을 보게 되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밧줄 위에 올라서기 전에 군중에게 소리쳐 말했습니다.
 “제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박수를 쳐주십시오!”

  사람들은 마지못해 박수를 치며 환성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밧줄에 올라섰고, 모두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며 거뜬히 밧줄을 타고 폭포를 건넜습니다. 군중은 열광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군중에게 외쳤습니다..
  “이제 제가 외바퀴 자전거를 타고 밧줄 위를 지나 폭포를 건널 수 있다고 믿는 분은 박수를 쳐주십시오!”

   그것은 지나친 모험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군중은 예의 바른 박수와 환호성으로 응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외바퀴 자전거를 타고 밧줄 위를 지나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가는 데 무사히 성공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제가 죽마를 타고 건널 수 있다고 믿는 분도 계십니까?”

   다시 한 번 군중은 마지못해 반응을 보였고, 그는 죽마를 타고 335미터나 되는 밧줄 위를 지나 나이아가라 폭포를 횡단해 모든 군중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군중들은 미친 듯이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제가 이 폭포를 눈을 가리고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이것은 군중들로서는 거의 믿을 수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도 해냈고, 이제 군중들은 걷잡을 수 없는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 박수와 환호성이 잦아들자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제가 어깨 위에 사람을 올려놓고 건너는 것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계십니까?”

   군중은 이번에는 더욱더 엄청난 환호성과 박수로 응답했습니다. 물론 모두들 그것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그가 지금 얘기한 것보다 훨씬 스릴 넘치는 묘기를 부리며 폭포를 네 번이나 횡단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계속 소리를 질러대며 박수를 치자 챨스 블론딘은 군중을 조용히 시킨 다음 이렇게 물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누가 지원하시겠습니까?”

    순간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소리를 질러대며 환호성을 터뜨리던 5천 명의 군중 다수는 그가 어깨에 사람을 올려놓고 안전하게 폭포를 건널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실제로 보여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그의 능력만큼은 믿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믿음에 관한 문제가 자신들 앞에 제기되자, 그 순간 그들의 믿음은 공기처럼 날아가 버렸습니다. 믿음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용감해 보이는 청년에게 다가가 말합니다. \"제 등에 업히시겠습니까?\" 그러자 청년은 하얗게 질려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때 블론딘은 사람들을 향해 말합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하는 것이 진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 살 난 자기의 딸을 업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 기네스북에 그의 이름을 올립니다. 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감정이 충만하다고 믿음이 충만한 것도 아닙니다. 믿음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를 가졌다고 믿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바른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라고 수없이 생각해왔으며, 수없이 고백했으며, 수없이 선포해 왔는데, 막상 우리가 그 믿음대로 행동하는 행함에 있어서 우리가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의심한다면 도대체 우리는 뭐가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믿은 하나님은 뭐가 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믿음은 뭐가 되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그 만큼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미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일어나 건너서 들어가라\'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초대교회도, 저도, 이제 하나님 앞에서 이 명령에 순종하려고 합니다. 우리 다 함께 순종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이 멋지게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놀라운 은총의 체험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