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설교 2007-04-08 ♣ \"예수님의 부활과 나\"
고전 15:12-19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 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죽었다가 살아 날 수 있는가? 나는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이스라엘 나라 사람 예수가 죽었다가 삼 일 만에 살아 났다고 하자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었다가 실제 살아났느냐 살아나지 못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고귀한 교훈이 더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 즉 부활하신 것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말씀들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부활은 믿음의 핵심입니다. 고기에게 있어서 물이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느냐를 따지고, 인간에게 공기가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느냐를 따지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며 기독교의 핵심이요, 가장 중요한 진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으로 끝나버렸다면 어떤 일이 생기게 되었을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확실성에 관하여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볼까요?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바울이 전파한 복음, 바로 오늘날 우리가 받은 복음이지요. 이 복음이 모두 헛것이 되며, 우리의 믿음까지고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했다면 이 복음을 전한 자는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죄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어 있는 사망 권세를 부활하심으로 깨뜨리셨는데, 만일 예수님이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영원히 죽을 죄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의 부활이 있음을 확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성도들의 부활은 당연히 없게 되는 것인데, 부활을 믿고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고 죽은 순교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요? 먼저 죽은 성도들은 어떻게 되지요? 완전히 망하게 되는 것이지요. 18절을 보면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믿는 것도 헛됩니다. 기독교가 무너집니다. 천국도 없고 영생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정말로 불쌍한 자가 됩니다. 지금까지 완전히 거짓 것에 매달려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19절에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우리의 모든 것이 그냥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그 누구보다도 불쌍한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하신 것처럼 우리도 나중에 주님 오실 때에 부활하게 되고,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만일에 부활이 없고 이 땅에서 사는 것으로 끝나 버린다면, 도대체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주일날 예배드리려 왜 나옵니까? 놀러도 못 가고, 벚꽃놀이도 못 가고, 정말로 불쌍한 인간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승천하실 수가 있으며, 승천하심으로 우리가 거할 처소를 천국에 예비해 놓으셨고, 승천하심으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으며, 승천하셨기에 오늘로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들에게, 아니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놀라운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나를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나에게 부활이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믿는 자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도 15:20을 봅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부활이 있음을 보증하시고 확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부활을 의심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적진에 투입되는 군인들이 지뢰밭을 헤치고 진격해야 하지만 모두들 쭛빗쭛빗합니다. 지뢰를 밟을까봐 두려워서입니다 이 때 상관이 먼저 지뢰가 있나 없나를 탐지하면서 전진합니다. 그리고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그때서야 주루룩 뒤따라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상관이 먼저 그 길을 아무 사고 없이 지나갔으니 이제는 안심하고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이 부활했으니 이제 나도 부활한다는 이 사실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나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확신을 갖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나로 하여금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죄인인 인간들을 마귀는 죽음이라는 올무를 뒤집어 씌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죽음 앞에서는 꼼짝을 못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합니다. 마귀의 최대의 무기가 \'죽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이 죽음의 권세, 마귀의 권세를 완전히 박살을 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도 15:55에 자신있게 죽음에 대해서, 죽음을 갖고 공격하는 마귀에 대해서 이렇게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그리고 이어서 57절에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사망으로부터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화학당 제 7대 총장을 역임한 고 김활란 박사가 1970년 세상을 떠나나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요청을 합니다. \'내가 죽거든 장송곡을 부르지 마시오, 나는 죽는 것이 아니요, 나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다 마치고 나의 본향, 천국으로 입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례식 대신에 더욱 화려한 승리의 길로 환송하는 음악회를 열어 주십시오.\'
왜 그녀가 이런 주문을 했습니까? 그녀는 부활의 소망이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부활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죽었지만 사망이 그녀를 정복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도리어 그녀는 사망을 이겼던 것입니다. \"나는 내가 영생한다는 것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께서 힘주시는 대로 더 좋은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해 살아왔소, 육체와 환경에 얽매인 것을 극복하면서 내 나름대로 승리의 길을 걸어오느라 힘썼습니다..\" 이 말은 부활의 확신에 찬 믿음의 교육자 김활란 박사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세째,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어린 아이들이 땅따먹기를 합니다. 서로 땅을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씁니다. 또 서로 싸우기까지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땅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 날이 저뭅다. 여기 저기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철수야 밥 먹자\', \'영철아 저녁 먹어야지.\' 아이들은 자기가 그렇게 애써서 딴 땅을, 마치 그것이 자기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며 다투기까지 하던 그 애들이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던져 버리고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갑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집으로 가서 밥 먹는 일에 비하면 땅따먹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잠시 논 놀이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부활의 큰 능력을 소유한 자들은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를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죽을 듯이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힘들다고 해서 마치 인생이 끝나는 사람처럼 막 살거나 자포자기 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자들이 뭐 사소한 것에 내 인생이 마지막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겠습니까?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니깐, 아빠 어디 가자고 부르니깐, 지금까지 악착같이 딴 땅을 친구보고 너 가지라고 하고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뛰어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 마지막 절에 전체적인 결론으로,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 때문에 흔들리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58절을 보면,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면 흔들리지 말라\' 흔들릴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활절은 달걀을 돌려 나누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은 곧 부활을 의미합니다. 암탉이 오랜 시간 알을 품으면, 달걀 껍질이 깨어지고 새로운 생명체인 병아리가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옛 부터 돈이 많고 권력이 높으면 무덤을 크게 만드는 습관이 있습니다, 경주의 왕릉이 그렀습니다. 이집트 황제의 무덤은 높이 160m, 밑변이230m, 건축하는데 돌이 330만개나 들어갔습니다. 무덤을 지키는 스핑크스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십 만 명의 노예가 수십 년 걸려 만들었습니다. 죽음을 가두는 무덤을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을까요? 중국 산동성에는 공자의 무덤이, 인도에는 석가모니,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마호메트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이기지 못했기에 무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무덤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께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부활절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오늘 이 부활이 여러분의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활의 능력과 권세도 여러분 것임을 믿으십시오. 내 것이라고 선포하십시오.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모든 것을 이기신 우리 예수님의 승리를 내 것으로 삼아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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