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설교 2007-04-01 ♣ \"차라리 나귀새끼가 됩시다!\"
/ 막 11:1-11 / 권 다니엘 목사 /
(본문) ‘[1]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섰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가로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은 자기 겉옷과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무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이 날을 기념하는 날이 바로 종려주일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환영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성경을 통해서 살 봅시다. 오늘 본문과 마태복음 21:8-11, 그리고 요한복음 12:12-15을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자기의 겉옷을 벗어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깔았습니다. 또한 종려나무 가지도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펴서 깔았습니다. 무리들이 예수님 앞에서 앞장서서 가기도 하고 뒤에서 따라 가기도 합니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닙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여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고 외칩니다. \'호산나\'라는 말은 \'이제 구하옵나니 구해 주옵소서\'라는 말입니다. 조상 다윗의 나라를 회복시킬 이스라엘의 왕이여 우리를 이제 구원해달라는 외침입니다. 예루살렘이 떠들썩합니다. 소동이 일어납니다.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데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동참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붙잡혀서 총독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을 당하게 되면 죄수 한 명을 놓아 줄 수가 있는데, 빌라도는 자기의 부인의 꿈자리가 너무 좋지가 않다는 부인의 말이 생각나서 예수를 놓아주고 싶었지만 무리들은 흉악범인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예수의 피 값을 자기와 자기 자손들에게 돌리라고...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미워한 악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기적과 이적을 눈으로 보고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 실컷 배불리 먹은 사람들입니다. 자기와 자기들의 가족들, 친척들, 자기들의 아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왜 호산나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동참한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습니까?
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압제 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와서 이 로마로부터 구원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치적으로 로마를 전복시키는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구세주 메시야였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자기의 기대와는 달리 로마로부터 자기들을 구원할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닌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자세로 돌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날 예수님을 자기의 목적을 이루어 주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 출석하면 내 사업이 잘 되고, 내 병이 낫게 되고, 내가 건강하고 내 자녀들이 좋은 직장 들어가게 되고, 좋은 배필감을 얻어 결혼하게 되고.. 이런 생각을 갖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만일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등지게 되고 배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군중들만 예수님을 배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르던 제자 중의 한 사람인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팔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알라딘의 램프 속에 들어가 있는 거인 지니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죽음을 죽게 되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구세주이십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대신 죽으신 구원주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오해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이 되어, 자기와 자기 자신의 후손들에게 까지 무서운 징벌과 재앙를 자초한 군중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이 될 바에는 차라리 예수님을 태운 나귀새끼가 되는 것이 낫습니다. 말 못하는 작은 짐승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을 태운 나귀는 나중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죽이는 데 동참한 인간들 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하고 배반한 베드로를 참회시키는 데 공헌한 닭,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려는 선지자 발람을 죽임에서 구원해 준 나귀..
그러므로 종려주일 맞이하여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나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나의 삶의 전부이요, 내 생애의 목적임을 명심합시다.
예수님을 이용하지 맙시다. 선거 때만 되면, 자기가 마치 예수님을 잘 믿고 교회의 열심있는 신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이름으로 헌금을 합니다. 교회에 화환을 보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부활하셨고, 나를 위해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고, 나를 위해서 오늘도 하나님의 우편에서 중보기도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살아도 예수님을 위해서, 죽어도 예수님을 위해서\' 이러한 삶의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을 눌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둘째, 예수님이 나의 구원주이심을 믿고, 예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을 합시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우리는 먼저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먼저 구해야 하겠습니다. \'주님,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5:10에 보면 \'주님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여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삶을 삽시다. 내가 지옥가야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죽으셔서 우리가 영생을 얻고 천국가게 되었는데 이것 이상 중요하고 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어려운 일이 생길 때가 있지요. 그 때에도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감사하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의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즉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 주님께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향한, 한 주간의 힘든 고난의 길을 걸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주님의 고난에 진정으로 동참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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