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무엇을 기뻐 하시는가?

♣ 주일설교 2007-03-18 ♣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 역대상 13:1-14 / 권 다니엘 목사 /

  (본문) ‘[1]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의논하고 [2]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선히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있는 우리 형제와 또 저희와 함께 들어있는 성읍에 거하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보내어 저희를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4] 뭇 백성이 이 일을 선히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5]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고자 할새 [6]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 이름으로 일컫는 궤라 [7]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니라 [9]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10]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11]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12]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13]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 메어들이지 못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14]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법궤 속에는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은 십계명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들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계명 돌판이겠지요.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곳입니다.
   이 법궤가 엘리 제사장의 말년에 블레셋과의 전투 이후에 기럇여아림이라는 곳에 70년 이상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윗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블레셋을 완전히 쫓아내고 정지적으로 군사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법궤를 수도인 예루살렘 다윗성으로 옮기고자 했습니다. 얼마나 다윗과 백성들이 감격스러웠겠습니까.

  모든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법궤를 옮겨오는 것은 만장일치로 찬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내용의 사무엘하 6장을 보면, 이 벱궤를 옯기기 위해서 이스라엘 전체에서 뽑고 뽑은 3만명의 백성이 동원되었습니다. 주악이 울립니다. 즉 고적대가 퍼레이드를 벌입니다. 삼하 6:5에는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주악하더라\'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모든 백성들은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습니다. 본문 8절을 볼까요.
  [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니라 

   이렇게 좋고 감격스러운 날, 수레를 몰던 \'웃사\'라는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이 웃사를 죽이셨습니다. 경사스러운 날, 그것도 70년 이상 방치되었던 그 법궤를 이제 잘 모시기 위해서 다윗 성으로 가져오는 이 선하고 의미가 있는 이 날에 왜 웃사가 죽어야 했을까요? 수레를 끌던 소들이 뛰면 법궤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웃사가 떨어지지 않도록 손으로 잡은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요?  우리가 이러한 부분에 궁금증을 갖고 오늘의 말씀을 살펴봄으로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교훈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려고 했던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 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행여나 법궤를 갖고 나가면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지 않을까 하여 임시 방편으로 법궤를 가져갔다가 빼앗깁니다. 그 법궤로 인해 블레셋에 재앙이 임하자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이스라엘 변방에 갖다 놓습니다. 그래서 그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죽고, 사무엘 선지자의 시대가 되었고, 사울 왕의 시대가 되었지만 그 누구도 이 법궤를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올 생각을 못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다윗이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드디어 다윗의 때가 되어서 법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오는 놀랍고도 위대한 일을 다윗이 시도하려고 했습니다.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그 일을 말입니다. 다윗과 백성들만 기뻐한 것이 아니겠지요, 하나님도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다윗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수레를 준비합니다. 좋은 재료로 잘 만든 최고의 수레입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최고급, 최첨단 기능을 갖춘 벤즈와 캐딜락 리무진과 같은 차이겠지요. 이러한 다윗의 정성은 높이 평가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무서운 함정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고 선한 동기라도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내 생각이나 내 방법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민수기 4장 15절에 보면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 것이니 죽을까 하노라\'라고 합니다. 특히 법궤는 반드시 고핫자손이 메고 운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법궤를 구별된 자가 메고 가야 함을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수 3: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수 6:12)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대상 15:14)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은 법궤를 구별된 자가 메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해 드려야 하지요. 그런데 왜 다윗이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까요? 도저히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하고 늘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던 다윗이 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다윗의 실수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도피생활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그 때 그는 블레셋에서 거주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율법은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고 블레셋 사람들의 풍습과 습과 규례에 젖어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신상을 옮길 때 수레를 사용해서 옮겼던 것입니다.
  블레렛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궤로 인해서 그들의 우상을 모신 다곤 신당의 신상들이 부서지고 무너지는 재앙이 임하자 그들은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 보낼 때 수레에 실어 보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6:8을 봅시다.
  (삼상 6: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 드릴 금 보물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다윗은 법궤를 옮기는 일 때문에 흥분이 되어있었지 하나님의 법궤를 어떻게 옮겨야 하는 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검토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잘못된 열심은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기는커녕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주님도 주님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을 행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을 때 그것은 불법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22-30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마 7:22-30)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또한 \'웃사\'라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성물(聖物)을 만지는 자는 죽을까 하노라\'는 민수기 4:15 말씀을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법궤를 손으로 만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시키는 것과 같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겁이 나서 법궤를 다윗 성으로 더 이상 가져 가지 못하고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의 집에 석 달 동안 두었습니다. 이 법궤로 인하여 오벧오돔의 집은 큰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시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옯겨 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옯겨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하 6:12-15을 봅시다.
  (삼하 6:12-15) 『[12] 혹이 다윗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하매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14]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법궤를 가져 올 때, 다시 기쁨이 회복됩니다. 백성들이 기뻐합니다. 다윗도 기뻐합니다. 얼마나 기뻐하면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 만 기뻐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얼마나 기뻐하시는 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것이 내 삶의 목적이요, 내가 행하는 일의 목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물론 성도들의 모든 목적은 하나님을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고린도전도 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씀의 깊이 있는 뜻을 깨닫지 못하고 이 목적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목적이 좋은 것은 정말 좋습니다. 의도가 좋아야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정도 좋아야 합니다. 방법도 좋아야 합니다. 이래야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2처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애정과 묵상과 연구와 투자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게을리 했다가는 다윗처럼 엄청난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