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고 아시는 주님

♣ 주일설교 2007-03-11 ♣
\"보시고 아시는 주님\"


/ 요 5:1-9 / 권 다니엘 목사 /

  
(본문)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요즈음 핸드폰 추적 시스템이 있습니다. 핸드폰을 소유한 사람이 위급 상황 속에 있을 때, 그 사람의 위치를 추적해 주는 것입니다. 만일에 내가 등산 중에 조난을 당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속에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나 있는 곳을 알아내어 나를 구조해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누가 나의 위험을 알아 나를 구해주고, 나의 형편과 필요를 알아 나를 도와 주고, 나를 채워 주기를 모든 사람은 다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알라딘의 램프에서 나오는 소원을 이루어 주는 거인이나, 위급할 때 부르면 오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 맨과 같은 마술적이고 가상적인 존재가 필요가 없습니다. 살아 계신 우리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명절을 맞이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습니다. 못 옆 행각 안에 많은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많은 병자들이 못의 물이 동함을 기다립니다. 물이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가끔 내려와서 그 물을 움직이는 데 그 때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이든지 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많은 병자들이 물이 동함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립니다. 

   베데스다 못에 모여든 수많은 병자들 중에 어떤 사람이 가장 유리하겠습니까? 우선, 다른 데는 병이 들었다 할지라도 두 다리가 멀쩡하고 두 눈도 성한 사람이 가장 유리하겠지요. 못에 가장 먼저 달려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유리한 사람은 눈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두 다리가 성한 사람,  그 다음은 본문에 나오는 대로 절뚝발이, 이 병자는 방향은 잘 잡을 수 있고 달려는 갈 수 있지만 많은 시간이 지체되겠지요. 이렇게 따지면 가장 불리한 사람은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는 병자일 것입니다. 천사가 내려와서 물이 동하는 것을 보고도 그 못을 향해 가기가 힘듭니다. 억지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간다고 칩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어요. 가장 먼저 가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날 새는 것이지요.
  친구 여러 명이 항상 옆에 대기하고 있다가 자기를 들고 뛰어 못에 넣어 주면 되는데.. 그렇게 해 줄사람들도 없었던 것 같아요. 38년 동안이나 병들어 누워있는 병자, 가장 불쌍하고 딱한 사람이지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병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유일한 소망은 천사가 내려와 물이 동할 때, 자기를 들고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사람에게 찾아가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묻지만 이 사람은 낫는 것에 언급하지 않고 자기를 물에 넣어 줄 사람을 원했던 것입니다. 이토록 도움이 절박한 안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문득 그 곳을 방문하신 주님, 안타까운 가운데 있지만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던 삽 십 팔 년된 병자를 만나시고 고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바로 그 주님은 나에게는 어떤 분이신가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당시에 그 병자에게만 다가가셔서 역사하셨던 주님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도 당연히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과연 그 주님, 우리에게 어떤 분이실까요?

주님은 우리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어린 아이가 바깥에서 아장아장 자기 맘대로 걸어 다닌 것 같아도, 어머니의 눈길을 잠시도 쉬지 않고 아이를 향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위험스럽다고 여겨 질 때는 어머니는 반사적으로 아이를 향해 달려  갑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주님은 항상 우리를 어머니처럼 살펴보시는 분이십니다.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감찰한다는 말은 \'감시하여 살핀다는 말\'입니다. 부정적인 의미로 여겨지는 말이 아닙니다. 위험한 곳에 가지는 않는가, 위험한 일이 닥치지는 않는가, 나쁜 사람이 아이를 데려 가지는 않는가, 어머니가 아이를 살피듯이 우리 주님도 우리를 살피십니다. 우리가 죄악된 길로 가지는 않는지, 위험한 길에 있지는 않는지, 마귀가 공격하고 유혹하지는 않는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욥기 31:4에 보면 \'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멋진 고백의 시가 바로 시편 121편입니다. 우리가 시편 121편은 암송을 하면 좋을 것입니다.
  (시 121:1-10) ‘[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본문에도 보면, 삽 십 팔 년 된 병자를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우리 주님은 이 베데스다 못에 오시자 마자 이 병자를 보십니다. 주님이 보셨다는 것은 그냥 보시는 것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병자의 깊은 것 까지 다 보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그 병자를 보신 것은 그 병자에게는 놀라운 은총이요, 그 삶의 최고 행운입니다. 주님이 보신 다음에는 놀라운 이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주님이 우리를 항상 보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시간에도 말입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비참하고 안타까운 상황 속에 있는 삼 십 팔 년 된 병자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사람의 병은 오래 전에 나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아는 천사가 있어서 베데스다 못에 내려와서, 그 병자를 가리켜 \'당신은 참 형편이 어려운 병자인데, 이 번에는 당신을 낫게 해 주겠오.\' 하고 천사가 보듬어서 못에 넣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내가 어려운 환경에 처해서 아주 난감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가 나를 알아보고 도와주고 그 상황 속에서 나를 꺼집어내 주었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마치 다음에 안 볼 것처럼 그렇게 대하거나 다투거나 하면 나중에 내가 꼭 도움을 받아야 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마치 아기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어머니처럼 말입니다. 저렇게 울면 배가 고파서 우는 거야,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우는 거야, 보채면 왜 보채는지, 우리 아이의 장단점은, 우리 아이가 어떤 때에 가장 힘들어 하는가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필요도 아시고, 우리의 고민도 아시고, 우리의 형편도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도 아시고. 고린도전서 8:3을 볼가요.
  (고전 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오늘 이 불쌍한 병자를 주님이 보시자마자 아셨습니다. 이 병자의 안타까움이 무엇이고, 이 병자의 고통이 무엇이고, 이 병자의 간절한 소망과 바램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말 안 해도 다 아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 우리를 사랑하는 주님을 우리가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어떤 분이시라고 다윗이 체험적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아심에 대한 최고의 찬양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바로 시편 139편입니다. 우리가 이 시편을 묵상해 보면 얼마나 주님이 얼마나 우리에게 고마우신 분이신지 가슴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시 139:1-4만 봅시다.
  (시 139:1-4) ‘[1]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깊이 헤아려 살핌)하시오며 [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나를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는 주님, 심지어 내 자신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러한 주님을 성경은 \'모든 지각(知覺)에 뛰어난 주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각\'이라는 말은 알고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내 형편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고 깨닫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4:6-7을 봅시다.
  (빌 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知覺)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오늘 이 시간 \'내가 누구보다도 너를 더 잘 알고 있단다. 두려워 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삼 십 팔 년된 병자의 최대의 소망은 못의 물이 동할 때 자기를 누구보다도 먼저 물에 넣어 줄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만이 자기의 병을 고칠 유일한 해결책임을 절실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천사가 내려오지 않더라도, 물이 동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상관이 없이, 문제될 것이 없이 말씀으로 그 자리에서 병을 고치시는 진정한 의사이십니다. 진정한 문제의 해결자가 바로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8, 9절을 봅시다. 천사와 상관없이, 물이 동함과 상관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해결하십니다.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천사가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고, 물이 움직이는 어떤 싸인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어떤 과제도, 어떤 짐도, 어떤 어려움도 가볍게 하시고 해결해 주시는 주님이심을 시편 68:19과 마태복음 11:28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 우리가 깊이 있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주님을 \'문제의 진정한 해결자\'로 여기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내 지혜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할 수 없이 선택해 보는 것이 주님이 아니신지요. 이 사람, 저 사람 다 만나보고, 빽있는 사람, 유능한 의사, 나에게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을 다 만나보고 난 뒤에 이제는 할 수 없구나, 밑져야 본전이다 라는 심정으로 선택해 보는 것이 주님이 아니신지요.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삼 십 팔년 된 병자도 진작 주님을 만났다면 문제가 해결되었을 텐데, 삼 십 팔 년이나 세월을 허비해 왔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해 볼 것 다 안 해 보았겠습니까? 고쳐 보려고 안 해 본 것이 있겠습니까? 재산도 탕진하고 부인도 떠나가 버리고, 형제도, 친척도 다 떠나버린 상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파도 속에서 두려워 떠는 제자들 앞에서 풍랑과 바람을 잠잠케 하신 분이 주님이셨습니다. 노를 잘 저어서 파도 속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가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아예 풍랑과 바람 자체를 잔잔케 해 버리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그냥 살리셨습니다. 오 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이시기 위해서 돈을 구하고 먹을 것을 사오도록 하고 이러한 복잡한 일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니 오천 명이 먹고 열 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열 두 해를 혈루증 앓는 여인을 고치시는데 그 병의 근원을 말리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이 주님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신데, 이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시겠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고 나갑시다. 우리의 친구되시는 우리 주님,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우리를 지키시는 이 놀라운 사실을 잠시라고 잊지 말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