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사는것


♣ 주일설교 2007-03-04 ♣
\"기왕 사는 것\"



고전 10:23-33   권 다니엘 목사

   (본문)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 예수님을 믿는은 사람들을 신자(信者), 크리스챤, 기독교인, 성도(聖徒)라고 하지요. 여기 모인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요, 에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아니요\'라고 하실 분을 없을 것입니다.
  기왕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되었으니 하나님을 믿는 자답게 살자는 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이미 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된 이상,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어요?  \'기왕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사람답게 살다가 죽자\'는 말을 많이 하기고 듣기도 합니다. 일리가 있고 참 좋은 교훈의 말입니다.

  죽음에 임박한 분들을 많이 만나 보셨습니까?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지요. 나이가 어린 학생들도 있고,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도 계십니다. 이들이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자기의 삶을 후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내가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식들에게, 부모님께 좀 더 잘했어야 하는데.. 좀더 신앙생활을 잘 했어야 했는데..  좀 더 남에게 유익을 주면서 살았어야 했는데.. 이제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로 사는 길에 이미 들어선 사람들입니다. 기왕 예수님 믿는 사람이 되었으니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 후회 없는 멋진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어떻게 사는 것이 멋진 삶일까요?  본문을 통해서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삶입니다.

   이 당시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믿음의 열심은 있었으나 성도들간의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많았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합니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남에게 피해를 주든 간에 자기의 소견대로 합니다.
   특히 고린도 교회 안에서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어 붙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믿음이 약한 자들의 마음에 서운함이 생기게 되었고,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물론 믿음이 좋다고 하는 자들이 잘못된 일은 행했거나 죄악된 일을 밀어붙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든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할 수가 있지요. 그러나 바울은 오늘 본문 23-24절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이,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행동이,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말이 \'남에게 유익이 되고 덕을 세우는 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도 그 어떤 교회보다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에 대해서 고린도 교회에게 교훈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그 유명한 \'사랑장\'이 아닙니까? 특히 고전 13:5에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것\'이라고 교린도 교인들에게 가르쳐 깨닫도록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왕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데, 남을 배려하면서 남의 유익을 구하면서 삽시다. 내가 어렵고, 내 코가 석잔데 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우리도 남을 섬기는 자들이 되도록 합시다.

   인도의 성자 선다싱의 전기를 읽어보면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 눈보라가 사정없이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선다싱은 다른 한 길손과 함께 산을 넘어 가고 있었습니다. 깊은 산 속에서는 밤이 속히 오기 때문에 어두워지면 산 속에서 길을 잃게 될 우려가 있어 둘이서 발걸음을 재촉해서 빨리 산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가는데 가는 길에 어떤 남자가 길바닥에 쓰러진 채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다.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기진 맥진해서 쓰러진 채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아직은 숨이 남아있었습니다. 주위는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습니다. 선다싱은 함께 가던 사람에게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아직은 죽지 않았으니까 우리 빨리 이 사람을 업고 갑시다. 그러면 살릴 수 있을 거요\"
  그러나 그 사람의 대답을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이제 곧 밤이 들이닥칠텐데 여기서 꾸물거릴 시간이 어디 있소? 그러다가 나까지 같이 죽겠소\"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마을 쪽을 향해서 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선다싱은 죽어 가는 사람을 내버려두고 혼자만 살겠다고 지나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쓰러져 있는 사람을 들쳐업었습니다. 그러나 선다싱은 힘이 부쳐 조금 가다가는 쓰러지고 또 조금 가다가는 쓰러지고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업고 갑니다. 그 바람에 추위가 다 가셨습니다. 몸이 뻣뻣하게 얼어붙어서 죽은 듯이 업혀 가던 사람도 그 열기에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거의 다 산을 넘어서 저 아래 인가(人家)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죽어가던 사람도 정신을 차리고 제 발로 걸어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을 입구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또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은 채 완전히 숨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그 사람은 남을 돌볼 틈이 없다고 자기 혼자 만이라도 살아 남겠다고 먼저 간 사람이었습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나는 살아야겠다고 하던 그 사람은 자신의 생명조차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애를 썼던 선다싱은 남도 살렸을 뿐만 아니라 그 덕분에 자신의 생명도 구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감사하는 하는 삶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참 인색하다고들 합니다. 감사는 그 사람의 인격을 표현합니다. 감사는 습관입니다. 그러므로 안되면 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 힘들 때 감사하지 못하면 편안해지면, 좋아지면 감사할 것 같지요. 더더욱 못합니다.
  그래서 감사는 환경과 여건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과 여건을 초월해서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전 5:18을 봅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믿음이 있는 성숙한 성도들은 제사지낸 음식을 모르고 먹을 수 있습니다. 알고도 먹을 수 있습니다.
또 안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음식물이 해를 끼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변에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 그것이 제사 드린 음식물인 것을 알고 보고 있다면 달라져야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믿음이 좋은 성도들이 제사지낸 음식을 먹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어머, 저 분이 제사지낸 음식을 먹네. 먹으서는 안되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실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땐 믿음이 좋은 사람이 믿음이 약한 사람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말라는 것이 28-29절의 내용입니다..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믿음이 좋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데, 믿음이 없는 저 사람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  믿음이 약한 사람에 대해서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먹어도 감사하고, 먹지 못하게 되어도 감사하고.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불평은 더 깊은 불평을 낳고, 원망은 더 심한 원망을 낳습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성도들을 정기적으로 소록도로 보냈다고 합니다. 거기는 나환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입니다. 코와 귀가 따 떨어져 나가고, 입술이 떨어져 나가고, 손가락이 다 떨어져 나가도 손가락이 없는 손으로 박수를 치며 기쁘게 찬양하고 감사하고 있는 그들을 보고 와서는 성도들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합니다.
  내가 어렵다고, 내가 고통스럽다고, 내가 가장 힘들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했던 성도들이, 그래도 나에게는 성한 코와 눈과 입이 있어, 나에게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있어. 감사하게 됩니다. 불평하고 원망의 생각과 말이 싹 들어가 버리고 감사하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기왕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아야 가야 하지 않겠어요? 하나님께서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시는데,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 감사, 또 감사하면서 전진합시다.

셋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집니다. 시계는 시간을 알기 위해서, 자동차는 사람과 물건을 빠르게 옮기기 위해서, 기차도, 비행기도, 시계도, 집도, 음식도 다 만들어진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도 그냥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31절도 이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가 불평이 나오려고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거짓말을 해야 합니까? 거짓말을 하고 싶습니까? 남을 깜쪽 같이 속여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라면 내가 망신을 당하고 나에게 손해가 있어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옵니까? 폭발일보 직전입니까? 이 분노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면 분노를 폭발시킵시오. 화를 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참으십시요.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과 삶의 기준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가 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도, 다니엘도,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기 위해서 억울하지만 감옥살이를 했고, 죽음을 각오하고 사자굴과 풀부물 속에 던지진 것입니다.

  우리는 냉수 한그릇 마시면서도, 집을 나서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근무를 하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물건을 팔면서도, 공부를 하면서도, 사람을 만나면서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목회를 왜 합니까? 신학은 왜 공부합니까? 기도는 왜 합니까? 성경공부는 왜 합니까? 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합니까? 왜 돈을 벌려고 합니까? 나의 야망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 이름을 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여야 합니다. 

   독일의 마틴루터, 프랑스의 칼빈, 스위스 쯔빙글리 같은 15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의 표어는 \"솔라 데오 글로리, 솔라 스크립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자기의 이름을 위해서, 자기의 야망을 위해서,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분의 종교개혁운동은 오늘날까지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기왕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 기왕 성도로 사는 것 말씀대로 바로 사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