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젼을 가진자

♣ 주일설교 2007-02-25 ♣
\"비젼을 가진 자\"


단 3:13-18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 오라 명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지식을 얻게 하셨고,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는 특별히 이상과 몽조 즉 환상과 꿈의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도 주셨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것들은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셨던 것입니다.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아는 것 역시 다니엘의 의지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서 1:17을 봅시다.


   (단 1: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이렇게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놀라운 것들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비젼을 주셨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나님께 비젼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살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비젼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설교를 통해서, 혹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말씀을 보고 묵상하는 중에, 또는 서적과 주변 믿음 사람들을 통해 비젼을 받았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비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우리도 비젼을 받은 자로서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살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다니엘은 뜻을 정했습니다.

   사람들은 상황 상황에 따라 자기의 소신이 바꾸기도 합니다. 자기가 불리할 때는 자기가 했던 말에 대해서 뒤집기도 합니다. 그 때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순간순간 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일이 잘 될 때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서 더 열심히 헌신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가도 또 사정이 바뀌어 일이 어려워지면 신앙생활이 게을러지고, 교회를 안나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희미해져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갈 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원수들을 물리치고, 마실 것 먹을 것을 주시면,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좋아했다가, 또 어려움이 닥쳐오면 언제 할렐루야 했느냐 듯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사정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합니다. 결국 그들은 그렇게 바라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자들을 성경에는 \'마음에 정(定)함이 없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 응답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엄히 책망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6-8을 봅시다.
   (약 1:6-8)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왕궁에서 일할 똑똑한 젊은이들, 즉 엘리트 중의 엘리트를 뽑는 기회에 다니엘이 뽑히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포로이었지만 출세할 절호이 기회가 다니엘에게 찾아 온 것이지요.
   그러나 다니엘은 신앙의 소신이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 왕, 즉 이방 왕이 먹고 마시는 진수성찬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 왕이 먹는 음식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었기에 그것을 먹는다는 것은 곧 우상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포로로서 왕이 지정한 것을 거부하는 것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 전개될 지도 모르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다니엘서 1:8을 볼까요.
   (단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정말로 멋진 다니엘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비젼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니엘처럼 뜻을 정합시다. 우리의 상황이 어떻게 변해도 나의 믿음과 신앙의 자세는 변하지 않겠다는 \'초지일관\'의 뜻을 정합시다.
   이렇게 뜻을 정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그 비젼을 기필코 이루어 주십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고 위험을 무릎쓰고 믿음으로 전진했더니, 다니엘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기적이 일어 납니다.
   왕의 명령에 대해서 환관장은 집행해야 합니다. 왕의 명령을 거부해도 되는 것처럼 봐 주다가는 환관장의 목도 달아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관장에게 역사를 하십니다. 놀랍습니다. 다니엘서 1:9을 볼까요.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드디어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신 청년들 보다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1:15절을 봅시다.
   [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다니엘을 들어 바벨론을 다스리게 하시고, 당시의 강대국인 이방 나라 바벨론에게,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며 하나님만이 경배와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참 신(神)이심을 다니엘을 통해 보여 주시기 위한 비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손길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내가 행하겠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않겠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겠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면 나는 기필코 거부하겠다\'는 뚯을 정하고 우리가 나간다면 우리의 비젼을 하나님께서 멋지게 이루실 것입니다.

   비젼을 받은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의 자세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비젼을 받은 성도들을 마귀는 공격합니다. 그 비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벨론의 신상, 즉 우상에게 절하는 문제를 가지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간교하고 무서운 전략입니다.
   이방신에게 절하지 않는 것은 바벨론 왕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다니엘처럼, 포로로서 바벨론의 왕궁에서 일하는 엘리트로 뽑힌 기회를 얻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던져지게 되었지만, 그들의 고백을 보면 우리가 도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본문 17절을 봅시다.
   [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풀부물에서 건지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 건지시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당연히 왕의 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얼마나 멋진 신앙의 고백입니까!
   이러한 자세를 갖고 있었기에 하나님은 다니엘의 세 친구를 높이 드셨고 드디어 그들의 비젼을 이루어 주셨던 것입니다. 풀무불 속에서도 건져 주셨고, 바벨론 왕이 다니엘의 세 친구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드디어 왕이 자기의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얼마나 멋지게 세 친구의 비젼을 이루어 주십니까. 3:28-30을 보겠습니다.
   (단 3:28-30) ‘[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우리도 다니엘의 세 친구와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내 소원대로 안 이루어지고, 내 앞길이 내 뚯대로 형통하지 않더라고 나는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고 믿고 사랑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나에게 어려움이 있고, 나에게 고통이 있고, 나에게 환란이 있다고 할찌라도 나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믿습니다.\' 고백합시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합 3:17-18)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비젼을 가진 다니엘은 \'알고도\'의 자세를 가졌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신앙생활하는데 방해를 주는 일이 일어나거나, 신앙생활 때문에 손해를 당할 것 같은 일이 예견되면 어떻게 합니까?
   성수주일하는 것, 십일조하는 것, 교회 출석하는 것,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 실은 이것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지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내가 이것을 주님을 위해서 해드리지 못한다면 안되지요.

   누가 나를, 내 자녀를, 내 부모님을 화재와 교통사고의 위험에서 구츨해 주어도 너무나 고마워서 그 사람의 부탁이라면 다 들어줄 판인데, 나를 위해서 피흘려 돌아가신 주님을 위해서 우리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당연히 해 드려야지요.

  직장 생활하는 일에는 어지럽고 아프더라도 약 사먹고 나가지 않습니까? 심지어는 아르바이트하는 일에도 빠지지를 않지 않습니까? 웬만히 아파도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학교에 결석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좀 아프면, 콘디션이 안 좋으면,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예배드리려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를 위해서 돌아가신 주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직장에 출근할 때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서 나갑니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뜁니다. 택시도 탑니다. 그러나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는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지를 않습니다. 늦으면 늦는 것이고.... 출근할 때의 자세하고는 영 딴판입니다.
  우리가 급해서 위독해서 하나님께 빨리 응답해 달라고 방방 뛰면서 기도하고 있는데, \'응답이 늦으면 늦는 것이지..\' 이렇게 하나님이 게으름이나 피우고 딴청을 부리고 기도의 응답을 마냥 늦추신다면 우리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친구 만난다고 친구하고 놀러간다고, 오래간만에 어디 좀 가야한다고, 그것 때문에 직장에 빠져야 되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를 않으면서 교회에 나가는 것은 당연히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주님이 얼마나 서운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런 자세를 가지면서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고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내 앞길이 열리기를 바라고 내가 건강하기를 바라고 내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좀 이상한 것 아닐까요?

  다니엘은 원수들이 자기를 함정을 파서 빠뜨리려는 계략을 알았지만, 자기에게 엄청난 손해와 환란이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것을 계속했다는 사실에 우리가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다니엘서 6:10을 봅시다.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이제 자기를 죽일 일을 만들어 왕의 도장을 찍은 것을 알고 타혐하거나, \'하나님이 나 좀 봐 주십시오. 내가 지금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이해해 주시겠지요. 내가 우상한테 잠깐만 절할께요. 나 하나님을 믿는 것 조금만 쉴께요.\' 다니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주신 그 비젼이 우리에게 이루어 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나에게 손해가 오고 나에게 위험이 닥쳐오고 나에게 어려움이 있더라고 우리가 그것을 알고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니엘과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비젼을 주셨습니다. 비젼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메시지를 마음에 새깁시다. 그대로 순종하고 지키며 나아갑시다. 우리를 통해서 비젼이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