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진리

♣ 주일설교 2006-12-24 ♣
\"역설(逆說, paradox)의 진리\"


/ 전도서 11:1-2 / 권 다니엘 목사 /

    (본문) 『[1]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특히 주님의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한 해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한 해 동안 살아온 삶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삶의 설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역시 주님의 교훈이요, 주님의 삶입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이 어떻게 사셨으며, 무슨 말씀을 하시고 교훈하셨는가를 묵상하면서 그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새해에는 그대로 살 것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교훈과 삶을 살펴보면,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역설(逆說, paradox)적 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주면 얻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식물을 \'빵\'으로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음식을 말합니다. 먹을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물 위에 던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물 위에 던지는 것은 아무 필요 없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음식을 그냥 버리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여러 날 후에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기의 귀중한 것을 선을 위해 포기하고 잊어 버리게 되면, 시간 흐른 후 도로 찾게 되는 일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2절에,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라는 말씀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나누어주게 되면,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일들을 피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진정으로 소유하기를 원합니까? 많이 갖기를 원합니까? 얻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6:38절도 주님은 이것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甄?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주님은 이 역설적인 삶은 친히 사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주셨고, 목숨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할진대 주님처럼 살아야 하겠지요?
  하나님을 위해서 드리고, 주님을 위해 바치고, 이웃을 위해 줍시다. 그것이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섬기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높은 자는 섬김을 받고, 자가 높은 자를 섬깁 것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은 내가 출세하고, 내가 최고가 되려면,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다른 사람을 밟고 나가야 합니다. 약육강식의 원리가 보편화되어 있는 곳이 이 사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역설적으로 교훈하십니다.
   (마 20:26-27)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큰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도리어 다른 사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종으로 살아라는 것입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주님도 섬기러 오셨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하나님은 섬기는 자를 들어 쓰시고, 사용하시려고 섬기는 과정을 겪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이 시위대장 보디발과 그 집안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는 간수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잘 섬기는 훈련의 과정을 거치게 하신 후에 하나님을 요셉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는 이해타산적으로 섬기지 말고 무조건 섬기는 삶을 삽시다. 이것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죽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는 것이지, 살기 위해서는 발버둥을 쳐야지 어떻게 죽어야 살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주님의 진리는 이렇습니다. 죽으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죽으심으로 살아나셨습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 믿는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예수님 믿을 때에 이미 죽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아가 살아 있다면, 우리는 심각한 모순 속에 빠지게 됩니다. 빨리 우리 자아를 죽여야 진정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다니엘도 죽는 길을 걸어갔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죽는 길로 걸어갔습니다. 죽음을 선택했을 때 그들은 사자굴에서도 살아났고, 풀무불에서도 살아난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날마다 죽였습니다. 살기위해서 말입니다. 그는 \'날마다 나는 죽노라\'라고 말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내오는 방법을 알지요? 뒤에서 머리를 낚아채서 끌고 나오든지, 아니면 실신을 시킨 다음 데리고 나와서 합니다. 자기 자신이 살아 있으면, 자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구하려 들어오는 사람까지 죽게 만듭니다.

   주님이 오신 성탄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요? 나를 위해 이 땅 오신 주님처럼 사는 것이 아닐까요? 이 세상의 보편적인 진리와는 반대로 살아갑시다. 주님처럼 역설적으로 살아갑시다. 주고, 섬기고, 죽는 삶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