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 잘하는 지혜


♣ 주일설교 2006-10-22 ♣
\"평상시 잘 하는 지혜\"



 / 왕하 20;1-11 / 권다니엘 목사 /

   (본문)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7]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9] 이사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서 왕에게 한 징조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 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 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 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 도가 물러갈 것이니이다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

  남쪽에서 북한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식량, 약품, 의류뿐만 아니라 공장을 지어 주기도 하고 많은 돈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 돈의 액수도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얼마 전에 야당의 한 국회의원은 정부 차원에 10조원, 민간차원에서 10원 도합 20조원이 북한에 지원이 되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것이 확실한 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북한에 많은 물자와 돈이 지원된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렇게 남한의 지원을 받고 있으면서도, 북한은 서해안에서 도발을 일으키고, 남쪽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협박을 했고, 이번에도 핵실험을 하고 나서도 미국이 압박을 계속하면,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위협을 했습니다. 즉 남한을 공격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도리어 북한은 남쪽에 은근히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같은 동포애의 차원에서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평상시에 잘하지 않고, 도리어 남쪽에 피해를 주기까지 하면서도 달라고 하면, 주고 싶지가 않지요. 얄밉지요.

  평상시에 잘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늑대와 양치는 소년 이야기 생각나시죠? 항상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해서 사람들을 골려먹던 양치기 소년이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는 아무리 소리질러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평상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평상시에 마을 사람들을 골탕먹이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은 늑대에게서 양치기 소년을 구해 주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평상시 잘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기뻐하되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고, 기도하되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항상\', \'범사에\', \'쉬지 말고\'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평상시\'라는 말씀입니다.
  평상시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평상시에 기도하는 생활을 하고, 평상시에 기뻐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위기 때에, 어려움에 처할 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평상시에 좋은 일을 하고, 평상시에 남에게 유익을 끼친 분이 아닐까요? 평상시에 성실하고, 평상시에 약속을 잘 지키고, 평상시에 신용을 지키고, 평상시에 남을 배려하고, 평상시에 남에게 신뢰를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도 그런 같아요. 평상시에 늘 하나님 앞에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은 기도의 응답도 쉽게 받는 것 같아요. 급하고 어려울 때만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지 말고 평상시에 기도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이 참 기뻐하실 것입니다.

  평상시에 늘 하나님과 함께 했던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녹 아시지요? 에녹은 평상시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예 에녹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에녹은 죽지 않은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노아도 그렇습니다. 노아도 평상시에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창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오늘 본문에 \'히스기야\'라는 유다왕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 이사야 선지가 히스기야 왕에게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합니다. 1절을 봅시다.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얼마나 충격적인 말입니까? 병원에 찾아온 사람에게 의사가 검사와 진단을 하고 난 뒤에 \'당신은 말기암입니다. 앞으로 6개월 밖에 살지 못합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는 인간이기 때문에 오진할 수가 있습니다. 현재 지구촌에서 암으로 죽는 사람만 매년 6백 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매년 6만 명이 죽고있는데, 암 정복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해온 미국의 암 진단 오진률이 44%에 이른다고 합니다.

  의사가 \'당신은 죽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너는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살 확률이 0.01%도 없는 것입니다. 100% 죽게 됩니다. 정말로 눈앞이 캄캄해 졌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듣고 난 히스기야 왕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냥 살려 달라고 기도합니가? 한 번 봐 달라고 기도합니까?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때를 쓰고 있습니까?
  히스기야는 평상시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한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2-3절을 봅시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만일 평상시에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성실하게 행하지 않았다면, 평상시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도를 드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을 보이셨는가 살펴보면, 정말로 우리가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죽게 될 것이다.\'라고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순식간에 접어 넣으십니다. 4-6절을 봅시다.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이사야 선지자가 그 말을 하고 난 뒤 성읍 가운데 가기도 전에 하나님이 이사야의 기도에 응답을 하십니다.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를 낫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평상시에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울며 기도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나 하면, 이사야가 죽지 않고 살게 된 것만 아니라, 앗수르의 손에서 예루살렘 성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겠다는 \'플러스 알파\'의 응답까지 받습니다.

  평상시에 선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 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다비다\'라는 여성도가 나옵니다. \'도르가\'라고 하기도 하지요. 이 사람은 평상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참 잘 했습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비다는 부자가 아니며, 혼자 사는 사람이었던 같습니다. 아마 과부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과부과 고아는 이 당시의 어려운 계층의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다비다는 재봉일을 하면서 먹고 살았던 같습니다.
  그런 그녀가 평상시에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심히 많이 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하여튼 다비다가 죽었습니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웠습니다 장례 절차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때 그 곳 근처에 베드로 사도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다비다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기는 사람들이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급히 오라고 간청을 합니다.
  드디어 베드로가 와서 다비다의 시체 앞에 섰습니다. 이 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평상시에 다비다로부터 도움을 입은 과부들이 다비다가 자기들을 위해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베드로에게 내 보이면서 웁니다. 베드로의 마음이 감동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이 됩니다.
  베드로가 기도할 때 죽은 다비다가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평상시에 선을 행하면, 도움을 입은 사람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 사람을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합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감동을 하셨으면, 죽은 다비다를 살리셨을까요? 사도행전 9:36-42을 다 함께 봅시다.

   (행 9:36-42)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내가 바쁘고, 내가 힘들고, 내가 어려워도, 평상시 신앙생활도 잘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잘 합시다.
주면 하나님은 어떻게 갚으십니까?  10배?, 20배?, 50배? 아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히스기야나 다비다는 죽음에서 살아나는 보상을 받았으니 그들이 행한 것과 어떻게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빌 2: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평상시에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고, 평상시에 하나님께 잘 해드리고, 평상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해드립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