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 주일설교 2006-10-15 ♣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 갈 6:11-18 / 권 다니엘 목사 /

   (본문)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보통 만세는 삼창을 합니다. 만세 삼창을 하게 되면 너도 나도 애국자가 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요즈음은 결혼식에서도 만세삼창을 하던데,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통성기도를 시킬 때, 인도하시는 목사님이 보통, \'할렐루야\' 세 번 크게 외치고 통성기도하자고 합니다. 할렐루야 삼창입니다. 할렐루야 한 번 외치고 기도하는 것 보다 세 번 큰 소리로 외치고 기도하면 기도의 시동이 잘 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세 번 외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모으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저희 어머님이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사내대장부는 하루에 세 번 마음에 참을 인(忍) 자를 새기고 살아라. 그리하면 하루가 편한 할 것이다.\'
   하루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참을 인자를 마음에 새기라는 말은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라도 잊지 말고 살아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십자가를 마음에 되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도대체가 십자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길래 우리의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할까요?

첫째, 십자가는 구원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할례를 받는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례를 강요하는 율법주의자들에게 속셈이 있었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음으로 유대주의자들로부터 받게 되는 박해와 죽음의 위협을 염려하여 단순히 이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할례의 시행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라디아 지방에서 할례를 확산시켜서 자기들의 업적을 자랑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11-13절을 봅시다.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할례를 받는 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도, 가문도, 학문도, 족보도, 재물도, 신앙경력도 그 무엇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왜 십자가만이 유일한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시 구원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 십자가는 회개를 말합니다.

  오늘 날 교회에서 회개에 대한 설교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회개에 대한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좋아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 안에서 십자가의 모습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강단 앞에 십자가가 당연히 자리 잡고 있었는데, 점점 다른 것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십자가의 조형물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이 곳이 교회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종 탑 위의 십자가만 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십자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회개해야 합니다.

  14절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란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내가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난 이후에, 복음을 거스리는 모든 정욕, 나의 잘못된 생각, 습관, 말, 행동 등을 끊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그렇게 살지 못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는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는 것을 회개하고 다시 한 번 그렇게 살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매일 십자가를 생각해야 할 이유입니다.

   찬송가 147장 1, 2절 함께 불러 볼까요?
   1.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2.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힘입어 교만한 맘을 버리네

셋째, 십자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삽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전 1:18에서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마귀의 세력을 멸하셨습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십자가의 능력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신 부활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이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겨야 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은 능력이 얼마 큰 지 아십니까?  십자가의 보혈을 덮으면, 마귀의 궤계가 드러납니다. 마귀가 놀라서 도망갑니다. 질병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기도가 응답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완악한 사람도 그 마음이 변화됩니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은 마치 함포사격과도 같습니다. 6. 25전쟁 때에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상륙할 지점에 함포로 사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게 될 때, 가장 큰 방해는 바로 인천에서 공격하는 적군들입니다.
  함포 사격을 하게 되면, 인천에 주둔하고 있는 적군이 타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유엔군이 상륙하게 될 때, 큰 저항을 받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먼저 십자가의 보혈로 덮고 기도하면 응답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믿음의 진수도 십자가입니다. 누가 뭐래도, 세월이 흘러고 모든 것이 변한다 해도 십자가만은 변함이 없어야 하고, 또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이 십자가를 붙들고 나아가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