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잔

♣ 주일설교 2006-09-24 ♣
\"두 개의 잔\"


/ 마 20:20-28 / 권 다니엘 목사 /

   (본문)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삼페인이라고 하면 뚜껑이 펑 튀어 나가면서 하얀 거품이 쏟아져 나오는 술이지요. 프랑스 샴파뉴지방에서 만들어지는 천연 발포성 포도주인데 샴페인은 상류사회를 상징하고 서양에서는 벼락부자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약혼 결혼 세례 기념일등 축하하는 행사에는 없어서는 안될 기쁨과 행복의 술이라고 합니다.
  일이 잘되었을 때, 성공하거나 승리했을 때, 이 샴페인을 터뜨립니다. 그 샴페인을 잔에 담아 \'브라보\'하고 건배를 합니다. 얼마나 기분 좋고 멋지겠습니까?
  사람들마다 샴페인을 터뜨리고 삼페인의 잔을 들기를 바랍니다. 즉 성공하고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샴페인 잔과도 같은 성공의 잔을 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의 어머니를 들 수가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자녀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은 동일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찾아 갔습니다. 왜 예수님을 찾아 갔겠습니까? 아들의 출세를 부탁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정치적인 메시야 왕국을 세웠을 때, 자기 아들들을 예수님의 최 측근으로 발탁해 달라는 것입니다. 옛날로 말하면, 영의정, 좌의정이고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 비서실장 정도가 되겠지요. 자기 아들들이 성공의 잔을 마시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십니다. 22절을 보면,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잘 되기를 바랍니다. 내 자녀들이 잘 되고, 내 가정이 잘 되고, 사업이 잘 되고, 모든 삶의 영역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물론 잘 되어야 하지요. 그리고 당연한 우리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공의 잔, 형통의 잔, 승리의 잔을 마시도록 기도하고 소원하기 전 주님이 말씀하시는 잔을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잔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 \'십자가의 잔\'을 말합니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 물음가운데 주님이 마시려는 잔은 바로 십자가를 말합니다. \'너희가 나처럼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느냐?\'의 질문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성공의 결과만을 바라고 그 잔을 마시려고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어하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고, 천국에서 주와 함께 영생복락(永生福樂)을 누리는 영광을 받았을 진대,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잘 되기를 바라고, 형통하기를 바라고 복 받기를 바라고,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은혜 받기를 바라면서 주님과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필연적인 삶을 무시하거나 그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면 오늘 우리의 신앙은 건강하고 건전한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바울은 로마서 8:17에 분명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우리가 예수 믿은 지 오래 되었고, 장로이고 권사이고 집사이라고 할찌라도 여러 모양의 제자훈련을 받았다 할 찌라도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지 않는다면, 죄송하지만 주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받는 것이요, 주님이 걸으신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신 삶, 희생의 삶, 섬김의 삶, 이러한 주님의 삶을 본받아 사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남에게 영광과 추앙을 받는 화려한 길이 아니라 도리어 썩어지는 밀알이 되는 길이요, 녹아지는 소금이 되는 그 길을 주님이 걸어셨는 데 우리도 주님을 따라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29과 14:27을 봅시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둘째, \'하나님의 잔\'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의 마시려는 잔은 \'하나님의 잔\'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뚯일까요?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의지와 내 비젼과 나의 소망과 나의 계획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4:34과 마태복음 26:39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믿음의 조상도 다윗도 주님처럼 \'하나님의 잔\'을 마시기를 원했습니다. 시편 16:5을 봅시다.
   (시 16: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다윗은 자기의 잔 속에 성공과 승리가 들어있는 샴페인 잔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영토가 확장되고, 부귀영화가 자기에게 몰려오고, 영광과 영예를 얻는 그러한 잔을 원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자기의 산업이 되고 잔의 소득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만 계시면 나는 OK, 나는 대만족이라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하나님의 잔\'을 원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박국 3:17-18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합 3:17-18)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가을의 날씨는 묵상하기가 참 종은 날씨입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특히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특히 오늘의 본문을 좀 더 깊이 있게 묵상하셔서 이 결실의 계절 가을에 주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