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르 살리는 섬김


♣ 주일설교 2006-08-20 ♣
\"죽은 자를 살리는 섬김\"



/ 행 9:36-43 / 권다니엘 목사 /

  
(본문)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하니라』

  1992년 4월, LA 흑인 폭동 때의 일입니다. 대부분의 한인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불에 타 버렸고, 그 피해는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오히려 흑인들의 도움을 받은 상점도 있었습니다.
  매일 저녁, 가게의 물건을 정리할 때면, 거의 팔지 못할 정도의 식품이 생기면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그때 주인이 그 중에서 먹을 만한 것을 골라 깨끗이 포장해서 상점 주변의 굶주린 흑인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상점 한 모퉁이에 베니어판 몇 장으로 그들의 휴식처도 만들어 주었고, 그들은 대신 밤에 상점을 잘 돌보아 주었다고 합니다.
  흑인 폭동이 나던 날, 그 흑인 거지들이 그들의 패거리들을 몰고 와서 그 상점을 지켜주었다고 합니다. 모든 상점이 불 타, 생활필수품이 귀할 때 그 가게는 큰 호황을 누렸다고 합니다.

  평상시 어려운 사람을 돌봐준 선행이 결국 자기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평상시 다른 사람들에게 잘 해야 할 것을 말해 주는 교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이익이 되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막상 자기가 어려움이 처했을 때는 그제서야 도움을 달라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사정하고 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도움을 받기가 쉽지가 않지요.
  그러나 평상시에 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던 사람은, 막상 본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변의 사람들이 앞장서서 일어나 그 사람을 돕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오늘 본문을 보면, \'욥바\'라는 도시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식 이름이 \'다비다\'요, 헬라식으로는 \'도르가\'라고 부르는 예수님을 잘 믿는 신실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참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였습니다. 장례식 절차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거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룻다\'라는 도시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욥바에 있는 성도들이 두 사람을 베드로한테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급히 욥바로 오라고 베드로에게 간청을 합니다.
  베드로가 와서 죽은 다비다를 살립니다.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1.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은 성도로서의 당연한 삶의 자세입니다.

  다비다라는 여인은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많이 베풀었고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특별히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억지로 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기쁨으로 여기고 행했던 것입니다.
  과부들은 보통 가난한 사람들이요, 사회적으로 천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과부에게 선행을 베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 14: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
  (신 24: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에 처한 고아와 과부와 같은 사람들, 우리 주변의 형제, 자매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섬기는 것은 성도들의 당연한 자세인 것입니다. 약 1:27에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이 성도의 의무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우리는 \'경건\'이라고 하면,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실은 고와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서 돌아보는 것이 경건의 중요한 내용으로 앞에 기록이 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처지와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변의 형제 자매들의 어려움을 돌아보고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이 하나님의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큰 책망이 따라 오게 됩니다. 마태복음 25:41-45을 봅시다.

  (마 25:41-45)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지체들을 섬기는, 당연한 성도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2.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베드로가 다비다가 죽은 곳에 왔을 때, 모든 과부들이 울면서 다비다가 생전에 자기들을 위해서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일 때,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을 받습니다.
  다비다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했다는 사실을 베드로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비다의 살아남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이 때, 죽은 다비다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다비다를 기뻐하셨으며, 다비다가 생전에 선행과 구제에 힘쓴 일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고 감동을 받으셨는가를 한 순간에 입증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무엇으로 입증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개념적인 것이 아닙니다. 옆에 있는 지체를 섬기는 것입니다.
  (마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으로부터 기도 응답을 받고 싶습니까? 형통의 복을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다비다처럼 하나님을 감격시키십시오. 다른 연약하고 어려운 지체를 사랑으로 돕고 섬길 때 하나님은 감격하십니다.

3.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은 나에게 30배, 60배, 100배의 복으로 돌아옵니다.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과 구제를 베푼 다비다에게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은 돈으로 계산 할 수 없는 은혜요, 복입니다. 다비다는 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섬기게 되면, 이 땅에서도 30배, 60배, 100배로 복이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에게 그렇게 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눅 6:38의 말씀을 통해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늠할 수가 있습니다.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만일 이 땅에서 못 받는다 하더라도 천국에 놀라운 상급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목사님 중에 모 신학대학장을 지낸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마산 결핵 요양소에서 결핵과 싸울 때의 상황을 기록한 투병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목사님이 마산 요양소에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앞으로 석 달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망선고와 같은 엄청난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다고 합니다.
  \"의사가 석 달 만 산다고 하였지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렇게 마음을 먹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또 석 달을 살더라도 죽을 때까지 목사로서, 신앙인으로서 할 일을 다해야지 하고, 어린 소녀 환자의 대소변을 받아주고, 다른 환자를 위로하고, 죽은 환자의 장례도 치르고, 설교도 하고 찬송도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나중에 의사가 찬송을 부르면 환자가 빨리 죽는다고 엄히 금하자 시를 쓰거나 감상문을 써서 환자에게 쪽지를 돌려 용기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의사와 간호사가 오지 않는 새벽에 숨어서 환자들을 위해 예배를 보면서 눈물겹게 다른 사람을 섬겼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 목사님을 하나님이 언제 데려 갔을까요? 석 달 후?, 삼 년 후?,  아니. 삼 십 년을 더 살게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으로 만족하고 안주해 버리는 신앙의 자세를 벗어나서 우리를 섬기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주변의 연약하고 어려운 지체들을 돕고 섬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