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의도적인 지연

♣ 주일설교 2006-07-16 ♣
\"주님의 의도적인 지연\"


 / 요 11:1-16 / 권다니엘 목사 /

    (본문) 『[1]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16]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전심으로 간절하게 부르짖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 답답함 때문에 내 믿음이 정말 사실인가 하고 의심해 본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꼭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던 일이 성취될 전망이 점점 없어지는 것처럼 보일 때의 안타까움과 고통스러움을 겪어 본적이 있습니까?
   이러한 때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이 야속해 보이고 원망스러우며 견디기 힘든 영적 곤고(困苦)함에 빠지게 됩니다.
   \'잉글랜드의 칼빈\'이라고 불리워지는 목사요, 신학자인 \'토마스 굳원\'은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고 순종하는 사람이라도 어두운 상황에 빠져 들어가 한줄기 빛도 찾지 못 할 때가 있으며, 그런 상태로 여러 날 여러 해를 지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챤들도 간혹,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을 것과 같은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상스러울 정도로 응답을 고의적으로 지연하셨던 일들이 있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후에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향해 떠난 후 광풍이 휘몰아쳐 거의 죽게 된 새벽4시, 제자들은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렇게도 마음이 다급했건만 주님은 여섯 시간 뒤에야 비로소 물위를 걸어 오셔서 제자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이 큰 바람과 파도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아신 것이 분명한 데, 왜 서둘러 급히 오셔서 제자들을 구해 주시지 않으시고 그렇게 지체 하셨을까요?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자기의 어린 딸이 죽어가고 있으니 오셔서 살려 달라고 긴급하게 요청을 합니다. 이러한 긴급한 상황이었지만 예수님은 도중에 혈루증 앓는 여인을 고치신다고 시간을 많이 지체하십니다. 혈루증 앓고 있는 여인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급한 환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시간을 지연하셨고, 결국 주님은 야이로의 어린 딸의 장례 중에야 오셔서 그의 딸을 살려 주셨던 것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었 때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요단강 저편 베뢰아 지방에 계셨습니다. 주님은 나사로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나사로가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이틀이나 더 지체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래서 결국 예수님이 나사로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요 1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가 주님의 의도적인 지연에 섭섭함을 드러냈으나 사망 시간이나 부패 상태에 상관없이 주님은 나사로를 살려 주셨습니다.

   흉악한 귀신이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이 딸을 살려 달라고 애타게 부르짖으며 애원했는데도 주님은 \'침묵\'으로, 그 다음은‘편견’과 ‘인격모독으로 시험하시며 그 응답을 지연하신 후에야 그녀의 딸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마 15:22-28)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다급한 상황인데 기도해도 기도해도 주님의 응답이 오지 않고 지연될 때, 도대체 주님은 우리의 다급한 사정을 알고 계신 것일까? 주님은 우리가 조급해하고 애타는 것이 가련하지도 않으신 것인가? 왜 그렇게 우리의 시급한 사정을 몰라주시는 것일까? 과연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일까? 왜 주님은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할 때 그 얼굴을 숨기시는 것일까? 주님의 의도적인 지연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 생각들입니다.

   주님의 의도적인 지연 속에는 주님의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주님이 의도적으로 지연하신 것은 우리를 소홀히 여기시거나, 버리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때로 응답이 지연되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거절당했음을 의미하는 것도 결코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진  믿음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은 채 결코 버려지는 일이 없으며, 지연되는 것은 항상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 크고 나은 응답을 주시기 위함이며 우리를 영적으로 단련시키고, 훈련시키고 성숙시키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응답을 기필코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 한 때 우리가 어떤 자세로 기다려야 할까요? 

1. 주님의 권세에 우리의 문제를 맡기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앞에 주님께서 문제 해결을 지연시킨 네 가지 사건을 통해, 주님은 자연, 질병, 죽음, 귀신에 대하여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가장 절망적 최후상황을 언제든지 축복으로 바꾸실 수 있으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의 여건들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영점(Zero-Point)에 도달했을 때 주님께서는 재난을 기적으로, 비극을 승리로, 한숨을 노래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답이 나타나지 않아 우리가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 때는 주님의 권세를 철저하게 의지하고 결코 서두르거나 꾀를 내거나 우회로를 찾지 말아야 합니다.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다리기를 싫어합니다. 조용하게 기다리기보다 조급해 합니다. 하나님을 앞질러 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대해 완벽한 계획과 시간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시계는 우리에게 있어 결코 빠르거나 느리지 않으며 언제나 완벽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에 순응합시다.. 하나님의 때는 항상 우리를 위해 가장 적절하고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때에 굴복하고 그 분이 나에 대하여 이루어 가시는 범사를 바라봐야 합니다.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것은 ‘믿음과 오래 참음’을 통해서라고 히 6:12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6: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 그 것 즉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한다는 말은 \'믿는 자들은 급히 서두르지 아니한다\', \'믿는 자들은 꾀를 내지 않고 산다\'는 말입니다.
   급하다고 힘들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중단하고 꾀를 내어 그릇된 방향으로 서두르기 시작하면 더 큰 어려움과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을 도리어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인도의 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은 “살다보면 어려운 일을 당할 수가 있다. 때로 원수는 홍수처럼 밀려온다. 그러나 그야말로 우리의 믿음을 입증하고 찬송을 생활로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라고 했습니다.
   휘튼 대학교 학장이었던 \'레이몬드 어드만\'은 ‘포기하는 것은 항상 너무 빠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권세를 확신하고 주님께 우리의 모든 문제를 맡기고 기다립니다. 반드시 응답은 올 것입니다., 

2. 믿음과 영성의 성숙에 집중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이 고의적으로 지연하셨던 네 가지 사건 속에서 주님의 마음 중심에 담고 계셨던 중요한 의도는 모두 우리의 \'믿음\'에 있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고 난 후에 도착한 주님이 그 딸을 살리시는 것을 통해서 과연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사람들로 믿게 하셨습니다. 나사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났지만, 그런 나사로를 살리면서 전능하신 주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풍랑 떄문에 고통을 당하는 제자들을 6시간 이후에 찾아 오셔서 구원해 주신 것은, 6시간 동안 제자들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자연의 문제를 주님이 해결하시므로 자연까지도 주관하시는 주님이심을 믿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응답이 더디고 문제의 해결이 내 생각보다 늦어 질 때, 바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시기 위한 주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고. 우리의 믿음과 영성의 성숙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영성은 가장 쓰라린 시련을 통해서 성숙하게 됩니다
   (욥 23:10-12) 『[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골짜기와 산을 허락하시어 우리의 영성을 성숙시켜 나가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긴 영성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엘리야가 그랬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먹구름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없으면 찬란한 무지개를 볼 수가 없고, 강한 바람만이 연을 높이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훈련되지 않는 인격을 쓰신 적이 없습니다. 또한 응답의 지연를 통해 우리 속에 있는 자아를 쳐부수어 겸손케 만드시고 우리 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성을 세워 가십니다. 우리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 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의도적 지연은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작업에 있어서 주님이 즐겨 쓰시는 가장 훌륭한 도구 중 하나입니다. 도구와 작업으로 인한 아픔만을 바라보지 말고 도구를 사용하고 계시는 분과 나에 대해 그분이 구상하고 계시는 아름다운 작품을 바라보고 기대합시다..

3. 응답을 살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문제를 보고 하나님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상황과 문제를 관찰해야 합니다. 문제를 먼저 보면 해결자 되시는 권능의 주님이 보이지 않게 되고, 오히려 믿음이 약해져 의심과 두려움이 결국은 견딜 수 없는 절망감과 허탈감에 빠지게 만듭니다. 이것이 사탄의 전술임은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더디지만 반드시 이루어지는 응답을 우리는 살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응답에 대한 믿음의 자세요, 응답을 소망하는 자세입니다. 더디 이루어진다고 낙심해서 응답이 어떻게 올까 살피지 않는다면 응답이 와도 놓칠 수 있습니다. 응답이 되었는데도 모를 수가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비오기를 기도하면서 사환에게 비가 오는 응답이 있는지 일곱 번씩이나 살펴보라고 명령했습니다.
   왕상 18:42-46)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 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살펴보니깐 손바닥 만한 만한 구름을 발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즉 비의 응답을 발견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응답이 오고 있는가 살펴 보면서 기다리십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무엇인들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으시겠냐고 주님께서도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아멘

  ‘비록 더딜 찌라도 기다려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