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망치 않는 기도

♣ 주일설교 2006-06-18 ♣
\"낙망치 않는 기도\"


 / 눅 18:1-8 / 권다니엘 목사 /

   (본문)[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어느 날 마귀들이 성도를 무찌르고 넘어지게 하는 무기 전시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무기 밑에 가격표가  붙어 있었는데 어떤 무기 앞에, 전시된 것 중에 제일 비싼 가격표가 붙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귀의 대장인 사단이 마귀들한테 \"왜 이 무기는 다른 것에 비해 크지도 않은데 이렇게 비싼 가격이 매겨져 있느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마귀들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 무기는 백발백중이고, 상대가 잘 의식하지 채 서서히 넘어지게 하는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무기입니다.\"
  여러분 그 무기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아세요? 쉽게 구할 수 있고 도처에 널려 있는 \'낙망\'이라는 무기였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성도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지어낸 우화에 지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신앙 생활 잘하다가 이 마귀들이 가진 \'낙망\'이라는 무기 앞에 처참히 쓰러진 자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실로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만큼 \'낙망\'이라는 마귀들의 무기는 치명적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이 \'무기\'를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다 보면 빨리 응답이 오면 참 좋겠는데 빨리 응답이 오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우리로서는 매우 답답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다 응답을 하십니다. 우리가 정욕으?쓰려고 구한다든지((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불의한 것을 위해서 구하지 않고서야 하나님께서 다 응답을 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8의 말씀처럼 구하는 이마다 얻게 됩니다. 구하기만 하면 응답 받는 다는 것입니다.
  (마 7: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나님의 응답은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첫째가 \'Yes\'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 곧 응답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잘 살펴보지 않아서 그렇지, \'Yes\'라는 응답이 우리에게 가장 많습니다.

  둘째는 \'No\'입니다.     

 
이것도 응답의 하나입니다. 어린 아이가 칼을 달라고 엄마한테 조른다고 칼을 선 듯 줄 엄마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칼이 아이한테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칼말고 더 필요하고 좋은 것으로 대신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구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손해가 되고, 하나님의 뜻에도 위배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 자체를 주시지를 않습니다. 그 때 우리는 서운하게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면 하나님은 그것 대신에 우리에게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No\'도 기도의 응답에 속합니다.

  셋째는 \'Wait\'입니다.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왜 선뜻 주시고 않고 기다리라고 하실까요? 하나님의 때가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응답 받는 것보다 시간이 지난 후 응답 받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더 좋고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지금이 응답되기에 가장 좋은 때인 것 같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앞만을 바라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바라보십니다. 사 55:8-9의 말씀을 봅시다.

  (사 55:8-9)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오늘 본문은 우리의 기도가 바로 응답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계속적으로 기도해야 할 것에 대해서 주님께서 비유를 들어서 우리에게 강조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강조하시냐 하면, 불의한 재판관에다 하나님을 비유하시면서 까지 강조하고 게십니다. 선하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인자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어찌 불의한 재판관에 비유를 하신단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만큼 주님은 기도의 응답이 더디다고 해서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력하게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1-4절을 다시 볼까요?
  [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을 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사람을 무시합니다. 아주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과부가 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탄원을 하지만 듣지 않습니다. 과부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아마 부자가 뇌물을 주면서 탄원을 했다든지, 권력에 있는 사람이 부탁을 했다면 재판관이 속히 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부가 돈이 있습니까? 권력이 있습니까? 당시에 고아와 과부는 무시와 천대를 받는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대표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제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과부의 탄원을 이 불의한 재판관이 잘 들어주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했는지도 모르지요. 과부가 한 번 두 번 세 번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탄원을 해도 들어줄 생각을 안합니다. 이것처럼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낙망하거나 포기하고 맙니다.
  \'이 재판관한테는 도저히 안돼...\'라고 말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낙망하거나 포기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불의한 재판관도 계속적인 과부에 탄원에 대해서 두 손을 들고 들어 주는데 하나님께서 왜 안 들어 주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5-7절을 봅시다.
  [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오랫동안 우리를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속히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해서 기도에 대해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끈기를 갖고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이 바로 오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포기한다면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로 응답을 주시지 않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감질나게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기도의 응답을 받은 그릇이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조금 있다가 응답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고 유익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인내를 배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내하면서 우리가 성숙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밤낮 부르짖읍시다. 계속해서 기도합시다. 응답받을 때 까지

둘째,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을 신뢰하자는 것입니다.

  기도가 빨리 응답되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포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불신앙의 행위입니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됩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반드시 주시는 신실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셋째, 말세에는 이렇게 낙망하지 않고 끈기를 갖고 기도하는 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론적으로 8절을 말씀하시면서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는 말씀입니다.  8절을 봅시다.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낙망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믿음인데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를 말세에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말세에 사람은 더욱 더 조급해집니다. 기다릴 줄 모릅니다. 인내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낙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자들이 아주 적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을 보면 말세에 나타날 사람들의 특성이 나타나고 있는데 4절에서는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조금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조급해지면 끈기가 부족해집니다. 인내하지를 못합니다.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응답을 받기가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사막은 불덩어리같이 뜨거웠고 갈 길은 멀었습니다. 뜨거운 햇빛과 목마름을 견디지 못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목이 마르고 지쳐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을 격려했습니다.
   \"얘야, 우리가 여기서 포기할 수 있겠니? 참고 끝까지 가보자? 얼마 안 가서 사람이 사는 마을을 발견할 수 있을거야.\"

  아버지와 아들은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다독였지만 이미 아들은 낙망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무덤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덤을 본 아들은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저거 보세요! 아버지, 저 사람도 우리처럼 지쳐서 죽고 말았어요!\" 아들은 너무나 낙심해 고개를 푹  떨구었습니다..

  이제 그는 아무런 힘도, 의욕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니란다 아들아, 무덤이 여기 있다는 것은 곧 희망이 있다는 거란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분명히 있을 것이야. 사람이 없는 곳에는 무덤도 없는 거니까.\" 
  과연 두 사람은 가까운 곳에서 마을을 발견하였고, 계속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  예수님을 신뢰하십니까?  오늘 이 본문을 갖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기도의 응답이 더디다고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