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보다 중요 한것

♣ 주일설교 2006-06-04 ♣
\"예배보다 중요한 것\"


 / 마 5:21-26 / 권다니엘 목사 /

  (본문)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우리는 이제 회복과 부흥을 추구하고 사모하고 있습니다. 개인과 가정과 생업과 교회가 진정한 부흥을 맞이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부흥을 기대하는 자, 부흥의 물결이 몰려오기를 열망하는 자는 두 가지 면에서의 장벽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는 위로 막혀 있는 장벽이 있다면 제거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혀 있는 장벽을 제거해야만 위로부터 하나님의 부흥의 소나기가 쏟아지게 됩니다.
  또 하나의 장벽은 사방으로 막혀 있는 장벽입니다. 즉 우리와 앞 뒤 좌 우의 주변 사람들과 막혀 있는 장벽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흥의 파도가 넘쳐흘러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막혀 있는 담이 있다면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느냐 하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장벽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결단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거짓말하는 자\'라는 요한일서 4:20의 말씀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의 앞에 있는 장벽을 무너 뜨리려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형제에게 노(怒하)는 것입니다.

  노하는 것은 화를 내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22절을 봅시다.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노하는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기필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6:4에는 부모들이 자녀들 노엽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자녀들에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심지어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녀들이 잘못했다 할지라도 화를 내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화를 내서 자녀를 노엽게 하는 대신에 주의 말씀으로 양욕하는 것이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바른 자세입니다.

   사람이 화를 내게 되면 평정심을 잃게 되고 흥분하게 됩니다. 흥분하게 되면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과 행동과 태도가 뒤따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회복과 부흥을 체험하기를 원하신다면 온유함과 관용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기를 바랍니다. 성경도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딛 3:2)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시 37: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마 6: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또한 우리의 뒤에 있는 장벽 즉 형제를 욕하는 것을 무너뜨립시다.

22절을 볼까요.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여기서 \'라가\'라는 말은 \'무가치한 놈\', \'골빈 놈\', \'미련한 놈\'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형제를 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안 그렇겠지만, 어른이고 청소년이건 입에서 욕이 붙어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오면, 형제를 욕하는 자는 감옥에 들어가게 되며,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말입니까?

  상대방이 어떻든지 간에 상대방을 비하하고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는 욕을 하게 되면, 그것이 습관적이든 고의든지 간에 욕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나에게 진정한 회복과 부흥이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까?  입을 조심합시다. 입을 깨끗이 씻읍시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서 절대로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자세로 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회복과 부흥을 방해하는 오른 쪽의 장벽, 즉 형제와의 미움의 관계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23-24절의 말씀이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여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이라는 말은 \'나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언행이 형제로 하여금 우리를 원망하도록 만들어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냥 그냥 있다면 우리에게 회복과 부흥이 오는 것이 멀어질 수가 있습니다.   

  예배보다도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형제와의 화목입니다. 형제와 화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서운해하시고 예배를 받으시지를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서 12:28의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는 말씀대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도모함으로 인간관계의 있어서 왼쪽의 장벽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25-26절을 봅시다.

  [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여기서 \'송사하는 자\'란 \"피해를 입은 자\"를 말하며 \'사화(私和)하라\'는 말은 \'이해관계를 정리하라\', \'급히 친구를 삼아라\' 즉 \'화해하라\'는 의미입니다.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라는 말씀은 \'누가 너를 고소하여 그와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서 얼른 화해하여라.\'라는 말씀입니다.
  나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이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지 간에 반드시 빨리, 적극적으로 용서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용서를 구하지 않고 버티거나 모른 채 하고 있다가는 더 크고 심각한 어려움에 처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25절에는 재판관이 \'관예\' 즉 \'옥을 지키는 자\'에게 내어 주어 그 사람을 구금시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즈음에도 피해를 당한 사람이 고발을 하게 되면, 감옥살이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비록 육신적으로 감옥에 가지 않는다 할찌라도 남에게 손해를 끼지고도 용서를 빌거나, 이 손실을 보상하지 않고 뻔뻔하게 버틴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에게 회복과 부흥의 은혜가 부어지겠습니까? 옛 말에, \'남에 눈에 눈물나게 만들었으면 자기 눈에는 피눈물이 나게 된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아무쪼록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갈망하는 자는 하나님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의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나의 앞 뒤 좌 우 주변 사람들과 해결하지 못한, 아니 해결하지 않은 장벽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반드시 무너뜨리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풍요로운 회복과 부흥이 여러분을 향하여 밀려오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