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자존심


♣ 주일설교 2006-04-23 ♣
\"그리스도인의 자존심\"



/ 삼상 17:31-49 / 권다니엘 목사

  <본문>『[31] 혹이 다윗의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32]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41]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42]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사람마다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자존심이 우리가 나아가는 길에 장애가 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려면,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존심을 내려놓은 것과 비겁한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괜히 자존심을 내 세우다가 손해보고 망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남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 문제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존심이라는 것이 참 예민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존심을 가져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우리 크리스천들은 자존심도 포기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적인 자존심은 이마 없어졌어야 하겠지요?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나의 자존심은 이미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아니 나는 여전히 자존심이 있어\'라고 말하고 싶은 분은 갈라디아서 5장 24절의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모순을 갖고 있게 됩니다. 즉 나는 크리스천이 아니라는 말과도 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나의 자존심도 이미 죽어버렸다고 동의를 당연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마는 심각한 문제 속에 빠지게 됩니다.

  당신은 크리스천입니까? \'예\'라고 대답하시지요? 당신의 육적인 자존심은 다 죽었지요? 뭐라고 대답해야지요? \'예\'라고 대답해야겠지요.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자존심을 버리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심문을 받으시면 침 뱉음과 구타를 당하시면 까지 우리를 위해 자존심을 버리셨습니다. 드디어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으시는 엄청단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지옥의 형벌을 받으실 수가 있습니까? 자존심의 완전한 포기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자존심까지 다 버리는데, 하물며 우리야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요. 실은 우리가 우리의 자존심에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자격도 없지요.

  우리의 육적인 자존심은 버렸어도 우리가 지켜야 할 자존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존심, 크리스천으로서의 자존심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챤의 자존심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내 속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를 높이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바울의 육적인 자존심은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석학인 가말리엘 밑에서 학문을 배운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열심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2장과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은 이 사실을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이 모든 것을 오물처럼 배설물처럼 다 버렸습니다. 그 대단한 자존심 마처 똥이나 오줌처럼 싹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새롭게 가진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 즉 크리스천의 자존심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존심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든지 숨기거나 비겁하게 피하지 않고 담대하고 자랑스럽게 증거했습니다.

  빌립보서 3:7-9절과 갈라디아서 6:14절을 볼까요.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우리도 다른 육적인 자존심은 다 포기해도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자존심은 더욱 더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자존심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당신 예수 믿습니까? 대해서 \'네\'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할 때가 적지가 않은 것 같아요. 우리의 입으로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전하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드러내는 자존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의 그리스도인의 자존심은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자존심\'입니다.

  부부싸움의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인데, 특히 상대방의 부모님을 폄하하는 것이 부부싸움을 가장 크게 일으키고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당신 어머니가 그러니 당신도 그렇지..\' \'당신 아버지가 왜 그러셔.. \' 이렇게 부모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무시된다고 생각할 때 못 참게 된다는 말입니다. 부모님에 이름에 대한 자존심이 얼마나 큰가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간에 상대방의 부모님에 대해서 왈가왈부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우리가 믿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무시를 당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거리가 됨에도 불구하고 내가 귀찮다고, 나하고 상관없다고, 내가 손해를 당할 수 있다고 피하고 지나친다면 참다운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소년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러 갑니다. 거기에 가서 다윗은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합니다. 할레 받지 않은 이방나라 불레셋의 장군 골리앗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조롱하는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데도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누구하나 아무 소리 못하고 쥐 죽은 듯이 숨어 있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소년 다윗이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가 없어 골리앗을 대항하기 위해서 나섭니다. 

  (삼상 17:26)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삼상 17:45-47)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앞으로 영적인 싸움은 더욱 더 치열해 질 것입니다. 이 영적인 싸움은 이기냐 지느냐의 문제입니다. 비기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서 이 싸움을 이기게 하시겠습니까?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자존심을 갖고 있는 자입니다.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뿐만 아니라 죽음까지 당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를 지으리요?\'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자존심을 버리지 않은 요셉을 아시지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더립히지 않겠다고 자존심을 지킨 다니엘을 아십니까? 그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살 길 대신에 사자굴을 선택했습니다.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풀무불에 들어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 중에 순교한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자존심을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은 크리스천으로서 정직하게 사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절대로 세금 안 떼먹고 거짓말 안하면서도 크게 성공한 분입니다.

  그는 며칠전 어느 컨퍼런스에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회계를 정직하게 하고 세금을 제대로 낸 기록 덕분에 신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좀더 빨리 돈을 벌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세상과 타협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된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부정직한 방법을 시도하다가 감옥에 가는 모습을 봤는데 만약 내가 기독교인으로 늘 기도하지 않았다면 나도 지금쯤 그들과 같은 모습이 됐을지 모른다”
  지금도 접대비나 기밀비를 조성하지 않는다는 그는 “1980년 9월 조그마한 옷가게를 창업하면서 정직하게 세금 내고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최고의 기업을 만들겠다고 사람들에게 말했는데 결국 93년 의류업계 1위에 올랐다”면서 “하나님은 화려한 그릇보다 깨끗한 그릇을 쓰신다는 점을 체험을 통해 깨달았다”고 간증했다.

   비롯 우리에게 물질적인 손실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자존심은 지킵시다.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이 따른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존심을 놓치지 맙시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박성수 회장처럼 진정한 부흥의 주역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