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태웁시다

♣ 주일설교 2006-04-09 ♣
\"예수님을 태웁시다.\"


 / 마 21:1-11 / 권다니엘 목사 /



   (본문)『[1]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11]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한국계 풋볼 영웅 하인스 워드가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왔을 때, 하인스 워드를 태우기 위해서 오피많은 자동차 회사가 경쟁을 한 끝에 기아자동차의 오피러스라는 차가 낙점이 되었습니다. 미국 GM 등 상당수 수입차 업체들이 차량 지원을 제의했지만 워드의 특별한 \'한국 사랑\'을 고려, 대리인 측이 오피러스를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메리칸 풋볼 죽 미식축구의 선수가 뭐가 그리 대단하냐? 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미식 축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적지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국하면 농구가 최고가 아닌가? 아니야, 미국 그러면 야구지? 아니야 골프가 최고지? 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물론 미국에서 농구와 야구 그리고 골프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그러나 아메리칸 풋볼, 죽 미식축구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슈퍼볼의 초당 광고료가 8000만 원이란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단연 미식 축구입니다. 미국 프로 미식축구에서, 아메리칸 풋볼 경기연맹의 우승 팀과 내셔널 풋볼 경기연맹의 우승 팀이 해마다 1월에 벌이는 내셔널 풋볼 리그(National Football League/NFL)의 챔피언 결정전이 바로 슈퍼볼입니다.
  다시 말하면 명실공히 미국 최고의 미식 축구의 최강팀을 뽑는 것입니다. 슈퍼볼이 진행될 때는 미국은 열광의 도가니로 빠집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미국의 남성들이 슈퍼볼 경기를 보는 것을 애인과 부인이 반대를 하면 헤어지거나 이혼을 하는 일이 있더라고 슈퍼볼 경기를 볼 정도라고 합니다.

  이 슈퍼볼의 MVP, 슈퍼볼의 영웅 하인스를 태우기 위해서 세계 최고의 자동차들이 경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런데 하인스는 한국의 차 기아의 \'오피러스\'를 결정한 것입니다.
  자 오피러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이렇게 누구를 태우느냐에 따라서 그 차는 명성이 달라지고, 인기와 품격이 높아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기 위해서 무엇을 탈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야 인데 백마를 탈까? 아니면 멋진 마차를 탈까? 이렇게 고민할 만도 한데, 예수님은 즉시 나귀를 타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1-3절을 봅시다.

  [1]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왜 하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려고 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데, 특히 예수님을 미워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코를 좀 납작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멋지고 좋은 것을 타고 입성하시면 좋을텐데, 왜 하필 \'나귀\'란 말입니까? 

  나귀는 당나귀입니다. 조그마하고 보잘 것 없는 동물입니다. 몸이 좀 작고 귀가 크며 머리에 는 말처럼 멋진 긴 털이 없습니다. 부리기가 좋아 주로 짐을 싣고 다니는 동물이지요.
  하여튼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아도 예수님이 타시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나귀를 낙점하셨으니 나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영광이지요. 보통 영광이 아니지요. 이런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태우고 가는데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나도 나귀처럼 주님에게 쓰임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도 나귀처럼 예수님을 반드시 태워야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나귀처럼 예수님을 태우는 일에 낙점을 받울 수 있을까요?


첫째, 겸손해야 합니다.

   4절을 봅시다.
   [4]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살면서도 겸손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은 여전히 겸손하십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겸손한 척 하기 위해서 나귀를 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품과 인격과 삶 자체가 겸손이었습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이 보잘 것 없는 나귀를 타신 것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겸손하셨는가 하는 것은 다음의 성경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빌 2:6-8)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잘 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할 뿐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겸손해야 하겠지만, 우리의 행동, 말, 자세, 태도, 모습, 말투까지도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하지 않으면 주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겸손할 때 주님을 우리를 사용하시고 우리를 높이 실 것입니다.

  (벧전 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둘째, 섬김입니다.

  나귀는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단련되어져 왔습니다.
  나귀는 영광을 받는다든지, 명성이 있다든지, 다른 어떤 짐승들 위에 군림하는 그런 동물이 아닙니다. 희생하고 섬기는 짐승에 불과합니다. 5절에 이 내용이 나옵니다.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멍에를 메는 짐승의 새끼입니다. \'나귀가 멍에를 멘다.\'는 말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하고 섬기는 짐승이라는 말입니다.

  주님도 섬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섬기는 삶을 사셨고, 섬기는 삶의 절정이 십자가를 지심이었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도 주님처럼 섬기는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우리가 똑똑하다고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경력이 많다고 쓰임 받는 것도 아닙니다. 희생과 헌신과 섬김의 자세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쓰임에 합당한 그릇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종려주일을 맞이하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는 찬양을 받으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동시에 주님을 태우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나귀도 관심 깊게 생각해 봅시다.
  찬송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메시야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를 태운 나귀도 얼마나 영광스러울까요? 부럽지요? 그러나 이러한 영광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스도를 태웁시다. 그리스도를 태우는 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맙시다. 그리스도를 태우는 영광을 받기 위해서 고난도 받읍시다.
  겸손과 섬김은 고난을 기쁘게 감당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