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설교 2006-02-19 ♣ \"그리스도의 법\"
/ 갈 6:1-5 / 권다니엘 목사 / (본문)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오늘 본문의 앞 장인 갈 5:22-23에는 성령의 열매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갈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는 \'금지할 법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금지할 법이 없다\'는 말은 성령의 열매는 율법의 관점에서 맺어서는 안된다고 제제하거나 아니면 맺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장하는 그러한 수준의 사항이 아니라 법을 초월하여,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 즉 하나님의 자녀들, 성도들은 반드시 맺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법, 나아가서 율법에 매이지 아니하는 법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령이 열매가 우리의 인격 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서 맺어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법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 성취되어야 하는 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 내 주변 사람들에게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바로 잡아 주어라는 것입니다. 남에 일에 간섭하기를 싫어하고 또 남으로부터 간섭받기를 싫어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특성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기의 죄가 드러나더라도 아니라고 부인(否?부터 하고 봅니다.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잘못이 밝혀지게 되면 그때는 변명합니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남이 범죄한 것이 드러나면 바로 잡아 주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러한 자들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성령이 열매요. 예수그리스도의 법대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잡아주지 아니하면, 급류 속에서 휩쓸려 가는 사람을 그대로 두는 거와 마찬가지요, 불 속에서 갇혀 있는 사람을 구조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란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의도적으로, 습관적으로, 그 죄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죄를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으면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일단 드러났을 때는 바로 잡아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에스겔 33:8-9은 강력하게 말씀합니다. 『[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9]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이 말씀은 얼마나 엄중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두려운 말씀입니다. 형제 자매가 죄와 악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냥 두면 그것은 직무유기요 그 책임을 하나님께서 묻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바로 잡아 주는 일은 참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정말로 기도 많이 하고 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겸손히 해야 합니다.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는 \'온유한 심령\'으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뭔데 그 사람을 바로 잡아\'하고 그냥 지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못 본 체 지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접근해서 바로 잡아 주는 것을 힘들지만 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그렇게 순종하면 그 당시에는 피차 힘들지만 지나고 보면 참 잘했다고 생각이 됩니다. 좋은 열매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그리스도의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성도들을 섬긴 지가 초대교회 4년을 포함해서 벌써 20년 가까이가 되었습니다. 가장 힘든 사역 중에 하나가 바로 성도들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성도들로부터 미움을 살 수 있고, 인기를 잃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원수도 될 수도 있는데, 뭐 이런 일을 해 편하고 쉽게 살지\' 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친 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권면도 하고, 교훈도 합니다, 한 번 해서 안되면 두 번, 두 번 해서 안되면 세 번 합니다. 당시는 참 힘들었지만 그것이 나중에는 그 분에게 큰 유익이 된 것을 생각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목사인 저에게도 하나님께서 저를 바로 잡아주는 분들을 종종 붙이셨습니다. 목사인 저도 인간이라 제가 모르고 있는 제 잘못과 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목사인 저에게 용기를 내서 권면과 교훈을 해 준 분들이 종종 계셨습니다. 저는 그 분들께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오기에는 그 분들의 기도와 눈물어린 충고와 권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남에게 권면하고 충고하고 교훈해 주었을 때, 자칫 잘못하면 자기는 의롭고 상대방은 악하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상대방은 죄인이고 나는 재판관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사단은 그런 마음을 우리에게 주려고 합니다. 3절을 보십시다.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항상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도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나도 항상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조심하고 그러한 죄를 짓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1절에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보면, 교만해질 수가 없습니다. 겸손해 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4절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 것입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다\'는 말은 \'남에게 자랑할 것이 뭐가 있느냐\'하는 말입니다. 자랑할 것이 있으면 주님 자랑이요, 십자가와 복음을 자랑하면 됩니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셋째, 짐을 서로 지는 것입니다. \'나도 힘든데 남의 짐까지 져주는 것은 불가능해\'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루어야 할 그리스도의 법이 남의 짐을 서로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지켜드려야 합니다 불교의 나라 인도의 전도자, 인도의 성인 선다싱이 네팔 지방의 한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날 따라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여행자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방향이 같음을 확인한 그들은 동행자가 됐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와 거친 눈보라를 맞으며 인가를 찾기 위해 계속 발길을 움직였지만 인가(人家)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쯤 걷다가 보니 웬 노인이 눈 위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선다싱은 동행자에게 \"우리 이 사람을 데리고 갑시다. 그냥 두면 죽고 말 겁니다.\"라고 말하자 동행자는 버럭 화를 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도 죽을지 모르는 판국에 저런 노인네까지 끌고 가다가는 우리 모두 다 죽게 될 거요.\" 사실 그렇기는 했지만 선다싱은 불쌍한 노인을 그냥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는 노인을 업고 눈보라 속을 한 걸음 한 걸음씩 걷기 시작했습니다. 앞서서 가던 동행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인을 등에 업은 선다싱은 갈수록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喚?목적지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선다싱의 몸은 땀으로 젖었습니다. 선다싱의 몸에서 더운 기운이 확확 발산되어서인지 차츰 등에 업힌 노인이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으로 조금도 춥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선다싱의 눈에 마을 입구에 한 사내가 꽁꽁 언 채로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시체를 살펴본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바로 자기 혼자 살겠다고 앞서가던 그 동행자였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4에도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내 짐부터 져야합니다. 5절을 봅시다.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은 짐을 안 지려고 합니다. 남에게 짐을 지웁니다. 자기가 잘못을 해 놓고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어려운 일은 하기 싫어합니다. 남에게 시킵니다. 섬김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종교지도자들 중에 이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눅 11:46)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율법을 지키는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끝났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법\', \'그리스도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생각과 마음으로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새시대의 부흥은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서 새시대의 부흥의 주역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