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을 갈망 합니까?


♣ 주일설교 2006-02-12 ♣
\"부흥을 갈망합니까?\"



 / 왕하 2:1-14 / 권다니엘 목사 /


   (본문) 『[1]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4]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7]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가에 섰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10]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오늘 많은 사람들과 많은 교회가 부흥을 원합니다. 대한민국이 부흥이 되었으면, 내 회사가 부흥이 되었으면, 내 가게가 부흥이 되었으면, 내 가정이, 내 교회가 부흥이 되었으면..  이렇게 부흥은 모든 사람이 원하고 있는 가장 큰 소원입니다.


  성경에는 한글로 \'부흥\'이라는 말이 꼭 한 번 나오고 있습니다.
  (합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여기서 \'부흥케 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야\'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살리다\', \'소생시키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죽은 것, 혹은 죽어 가는 것을 살리고 소생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사전적(辭典的)인 의미의 부흥도 이와 비슷합니다. \'쇠퇴하던 것이 다시 일어나거나 일어나게 하는 것\'  을 부흥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잃었던 것을 다시 찾고, 깨어지고 상처난 부분이 회복되고, 절망과 죽음이 그림자가 거두워지고 밝은 빛이 드리워지는 부흥의 은총이 우리들에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부흥을 단순히 소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갈망하는 자리까지 나가가야 합니다. 갈망한다는 것은 나의 온 마음과 생각을 다하여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사모하고 추구한다는 말입니다. 부흥은 이렇게 갈망하는 자에게 찾아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부흥을 갈망한다면 우리에게 다음의 행동이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끝까지 좇아가야 합니다.


   부흥을 원한다면 부흥을 위해서 끝까지 좇아가야 합니다. 조금 부흥을 구하다가 안 이루어지는 것 같아 포기하면 부흥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나오미\'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흉년을 피하기 위해 유대 땅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내려가서 삽니다. 그런데 거기서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습니다. 이제 나오미는 참담한 심정으로 유다 땅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리고 두 며느리에게 나에게는 소망이 없으니 너희들도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합니다.
   두 며느리는 가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큰 며느리는 돌아 갑니다. 그러나 둘 째 며느리 \'룻\'은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르기로 결정을 합니다.
 
   이 때의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룻 1: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룻은 시어머니를 \'붙좇았더라\'  여기서 \'붙좇았다\'라는 말은 마치 아교로 붙여서 아무리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는 그러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끝까지 좇아가는 간 룻은 모압이라는 이방 여인에서부터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놀라운 부흥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하늘로 데리고 가려고 하실 때에, 엘리야는 엘리사를 떼어 놓으려고 했습니다. 길갈에서 엘리야를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엘리사는 포기하지를 않았습니다. 벧엘에서도, 여리고 에서도, 요단에서도 엘리사는 자기를 떼어 놓으려는 엘리야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좇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하늘로 취하시기 위해서 엘리야가 혼자있기를 원하셨습니다. 2, 4, 6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그럴 때마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끝까지 좇겠다는 목숨을 내 놓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1-7절의 본문을 다시 한 번 볼까요?


   [1]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4]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7]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가에 섰더니


   이제 더 이상 엘리야는 엘리사를 떼어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좇았기 때문에 엘리사는 놀라운 영적인 부흥을 체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내가 부족합니다. 끈기가 부족합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안되면 기도를 포기합니다. 교회 열심히 나오는 것 같다가 뭐가 좀 안 이루어지니깐 슬며서 후퇴합니다. 봉사를 하다가도 눈에 보이는 열매가 안 나타나면 언제 봉사했느냐 듯이 주저앉고 맙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닙니다. 엘리야의 끈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엘리사처럼, 룻처럼 끝가지 좇아갑시다. 그래서 부흥의 체험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흥을 바라보고 나아갈 때 방해하는 무리들을 참 많이 만나게 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서 유다 땅으로 돌아왔을 때, 산발랏과 도비야를 비롯한 원수들이 사방에서 일어나 그 일을 방해했습니다.
   성벽을 재건하고 이스라엘의 회복과 부흥을 추구하려고 할 때 원수들의 방해가 심했던 것입니다.


   원수들은 우리들의 부흥을 싫어합니다. 우리가 재건되고 회복되고 치유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해합니다. 그냥 망한 상태로 있기를 원합니다. 상처난 상태로 죽어가기를 원합니다. 황폐해진 상태로 버려지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원수들의 방해에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엘리사에게도 마찬가지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선지생도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3, 5절에 그 내용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스승인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실 거니 더 이상 헛된 수고를 하지말고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괜히 쓸데없이 좇아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중 가서 닭 좇는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진정한 부흥을 위해서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이 사람 저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상심시킬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때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주변을 바라 보십시오. 도중에 이러한 방해로 인해 흔들려서 포기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엘리사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나도 안다. 너희는 잠잠하라.\'
  이러한 담대함과 베짱이 없이는 부흥을 맛 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3. 나에게 일어나야 할 부흥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날 나에게 일어날, 그리고 이 초대교회에 일어날 하나님의 부흥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우선적으로 일어나야 할 부흥은 \'심령의 부흥\'입니다. \'영적 부흥\'입니다. \'성령의 부흥\'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그토록 끝까지 좇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리야가 갖고 있는 영감의 갑절을 입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영적 부흥\'이었습니다.  9-10절을 봅시다.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10]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엘리야가 볼 때에도 엘리사가 구하는 부흥의 내용은 이루어지기가 어려운 것이었지만, 엘리사는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이 내 부흥은 당신이 받은 성령의 갑절입니다. 자기가 갈망하는 부흥의 내용을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부흥이 주어지기를 갈망합니까? 어떤 부흥을 하나님께 구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일어날 부흥을 분명히 알고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지들에게 성령의 권능을 받기 전까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20명의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권능을 간절히 구했던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초대교회 부흥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재건을 통한 이스라엘 부흥을 위해서 바사 제국의 영광을 뒤로하고 황폐해진 조국 이스라엘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부흥의 비젼은 그것이 아무리 이루어지기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우리가 분명히 알고 갈망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4.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구할 때에 엘리야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10]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야를 좇아왔습니다.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드디어 놀라운 응답의 징조가 엘리사에게 나타납니다.
  \'이제 하나님이 엘리야를 엘리사에게서 취하시는 것을 볼 때에 엘리야에게 영감의 갑절 즉 영적인 부흥이 있을 것이라는 이 엘리야의 말씀이 바로 응답이었습니다.


   엘리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좇아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드디어 하나님이 엘리야를 엘리사에게 취하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11-14절을 봅시다.


   [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야를 엘리사에게서 하늘로 취하는 것을 드디어 엘리사는 보았습니다. 자 이제는 약속대로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이 엘리사에게 임한 것입니다. 영적인 부흥이 엘리사에게 온 것입니다.
  엘리사는 이것을 믿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요단 앞에 섭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엘리야는 자기의 옷을 찢어 버리고 엘리사의 겉옷을 가지고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물을 칩니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물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요단 언덕에서 넘실거리는 요단 강물을 보고 두려워하면서 과연 나에게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이 임한 것인가 하고 의심하고 앉아만 있었다면, 그는 요단을 결코 걸어서 건널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약속대로 영감의 갑절이 임했음을 믿고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엘리사도 요단 강물을 치고 건넜기 때문에 영감의 갑절이 나타났고, 영적인 부흥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의 전진이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전진할 때, 부흥이 불길처럼 일어나고 파도처럼 몰려오게 됨을 체험할 것입니다.


  금년은 풍성한 회복과 치유를 체험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부흥이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그리고 초대교회 위에 충만하게 드러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