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술을 새부대에


♣ 주일설교 2006-02-05 ♣
권 다니엘 목사

 \"새 술은 새 부대에\"  마 9:14-17



   (본문)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래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세례의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 당신의 제자들은 왜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세례 요한은 세상의 부패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세속을 등지고 사막의 동굴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마음과 정결한 삶을 위해서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금욕적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세례요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 3:4)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욕심을 제어하고 정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 금식을 하는 것은 당연한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세레 요한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엣센파 혹은 에세네파라고 불리워졌습니다.


  그 당시의 유대의 대표적인 종교 종파인 바리새인들, 율법과 유대 전통에 철저처했던 이들 역시 금식을 항상 해 왔던 터라, 세레 요한의 제자들이 볼 때, 유독 예수님의 제자들만 금식을 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 이상하게 보였고 금식을 하지 않는 자들이 과연 하나님을 믿는 자들인가 하는 의구심마저도 들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하십니다.


  [1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신랑인 나와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의 혼인 잔치의 풍습을 볼 때,  잔치가 일주일간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 마지막 날, 신랑을 신부 방에 데려다 줌으로서 혼인예식은 끝이 납니다. 그런데 혼인 잔치 동안에는 금식일이 되어도 금식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금식으로 인하여 흥이 나야 할 혼인잔치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금식에는 보통 애곡이 동반되었기 때문에 혼인 예식이 끝난 다음에 비로소 금식을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슬픔의 금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결코 금식의 불필요성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가를 강조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것은 슬픔의 삶이 아니라 기쁨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땅은 양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물과 포도주를 넣었다고 합니다. 양가죽은 아주 부드럽습니다. 거기에 포도주를 담으면 발효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부피가 팽창하게 됩니다. 새 양가죽 부대의 포도주는 발효하는 만큼 얼마든지 거기에 맞춰서 늘어납니다. 그래서 좋은 술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헌 가죽부대는 안에 당분이 묻어 있어서 가죽이 딱딱해집니다. 그런 가죽 부대에 새 술을 담으면 팽창하지 못하고 터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술도 버리게 되고 가죽 부대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오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 포도주\' 즉 \'새 술\'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입니다.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렇다면 이 복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요 3:16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약의 율법을 지키므로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관습과 전통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 유대인들의 잘못된 자세를 예수님은 지적하시고 바로 깨우쳐 주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새 포도주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행 2:1-4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행 2:1-4) 『[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이 임하니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성도들이 방언을 말하는데, 각 나라로부터 온 사람들이 120명의 성도들이 방언을 말하는 것을 자기 나라의 말로 알아듣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자기들의 말로 방언이 들려지게 되니 각 나라로 부터 온 사람들이 감짝 놀라게 됩니다. 도저히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는데 일어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는 120명의 성도들을 가리켜 술에 취했다고 놀립니다.  행 2:13의 말씀입니다.


   (행 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그런데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는 조롱하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인간적으로 마시고 취하는 새 술을 마시고 취한 것이 아니라, 말세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구약에 약속한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설교를 합니다. 행 2:14-21을 봅시다.


   (행 2:14-21)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렇다면 새 술을 담아야 할 새 부대는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믿음과 순종의 새 부대입니다.

  믿음의 새 부대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 자체입니다.
  내 자신을 의지하던 과거의 삶을 과감히 벗어 버려야 합니다. 내 소유, 내 지식, 내 능력, 내 경험, 내 배경을 의지하던 과거의 헌 부대를 싹 정리해 버립시다.


   순종의 새 부대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르고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 하나님과 상관없는 내가 지키고 내가 따르던 나의 법이 있었습니까? 바로 그것을 성경은 육신의 법 즉 죄의 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거짓, 위선, 고집, 교만, 음란, 분노, 불성실, 혈기, 다툼, 비판, 속이는 것..  과거에 나를 이끌어 왔던 이러한 육신과 죄의 법을 과감히 집어 던져야 합니다.


   정직, 진실, 사랑, 온유, 관용, 정결, 겸손하라는 성령의 법, 하나님의 법에 순종합시다. 이러한 것들이 나의 새로운 가족 부대로 갖추어 질 때, 나에게 새 술은 부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면서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새 포도주, 새 술을 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행하실, 새로운 부흥과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옛 생활, 불신앙과 불순종이라는 헌 부대로는 새 부흥과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자신을 터뜨려 버리는 비참한 결과만을 가져 올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새 부대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그 안에 하나님의 새 일들이 담겨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을 기해서 우리의 부대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고 버릴 것은 오물을 버리듯이 과감히 속히 미련없이 아낌없이 버리고 믿음과 순종의 멋진 새 부대를 준비하여 새 시대 새 부흥과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