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위한 구유가 되자


♣ 주일설교 2005-12-25 ♣
\"예수님을 위한 구유가 되자\"


 / 눅 2:1-14 / 권다니엘 목사 /

  (본문) 『[1]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정혼한 마리아아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이 구유에서 탄생하셨는데, 구유가 무엇일까요? 구유는 말이나 소에게 먹이를 주는 여물통을 말합니다. 즉 소나 말의 밥그릇입니다. 지구 역사상 아무리 가난하고 어렵다고 해서, 애기를 낳아서 짐승의 밥그릇에 눕힌 경우가 과연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짐승 밥그릇에 애기 예수님을 눕힐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관은 지금의 여관을 말합니다. 여관마다 사람이 꽉 차서 방을 구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이 본문의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는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좀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침대가 된 구유는 얼마나 좋을까?\' \'아기 예수님을 가장 먼저 가슴에 품은 짐승 밥그룻은 얼마나 좋아했을까?\'

   금년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아기 예測纛?누우신 구유처럼, 예수님을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 가장 친근히 모셔들이는 그런 축복의 은총을 입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런 축복의 주인공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 당시에는 로마황제 가이사는 자기들이 통치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 호적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호적을 하라는 말은 인구조사를 하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호적을 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자기 고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가문별로 인구조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셉의 고향 베들레헴도 호적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메시야가 올 것을 믿고 있었으며 또한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그들은 먹고사는 일에 바빠서 이러한 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막연히 메시야가 와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메시야가 어떤 모습으로, 어디로 오실 것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사야 53;1-3과 미가서 5:2을 보겠습니다.

   (사 53:1-3)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이렇게 메시야 그리스도는 아주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한다고 구약에 선지자들을 통헤서 예언이 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제적으로는 메시야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를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입으로는 나는 예수님을 안다.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놓쳐 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그 어디에서라도 주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찾고 영접하면 주님은 우리 속에 임재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렘 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둘째, 예수님을 위해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100m을 달리기 위해서 스타트 라인에서 출발신호가 나자마자 달려나갈 것을 준비합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출발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베들레헴 지역에 사는 사람들, 그들은 전혀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가 않았습니다. 호적을 하러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숙박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거, 대목이구나\' 생각하고 돈 버는 일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모처럼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맞이 한 것이지요.
  그 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적하러 고향에 온 사람들끼리 만나서 웃고, 이야기하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메시야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주이요, 메시야 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예수님의 탄생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으며,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 또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란 말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인격적인 주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보혜사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열고 영접하실 때에 우리 속에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동행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거하십니다. 이것을 어려운 신학적인 말로 내주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만을 알고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늘 성령님을 영접하고 모셔들어야 그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은 불신자들을 향해서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이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차지도 않고 덥지고 않고 미지근한 신앙행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신앙의 자세를 책망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성령님에 대해서 항상 문을 열고 모셔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열심있는 신앙생활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주님, 내 마음 속에 오시옵소서 나는 주님.을 모셔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 환영하고 영접합니다. 내 속에 오시옵소서.\'

셋째, 예수님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모셔들이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있는 것들을, 즉 내 마음의 보좌에 있는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자아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면 내려 와야 합니다. 내 명예와 내 소유가, 내 지식이 내 마음의 보좌에 자리잡고 있다면 과감이 그것을 보좌 밑으로 끌어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님이 앉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그 자리에 임재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희생입니다. 이런 희생이 없이 되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입으로만 \'주님 오시옵소서, 성령님을 오소서.\' 하면서 내가 내 뜻대로 모든 것을 다하고 내 고집대로 내 생각대로 모든 것을 다한다면 우리 주님이 거하실 자리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다른 것들이 자리 잡고 있다면 우리 주님은 결코 오실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을 결코 모셔 들일 수가 없습니다.

  금년 성탄절을 기해서 우리 모두가 주님이 거하시는 침대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누우시는 구유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고 동행하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