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설교 2005-11-13 ♣ \"찢어지지 아니한 그물\"
☜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 요 21:1-14 / 권다니엘 목사 /
(본문)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눅 5;5을 볼까요?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는 놀라왔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그 자리에서 사람을 낚는 제자로 부르십니다. 이제 근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3년 동안이나 제자로서 훈련을 받고 배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을 잡히셔서 심문을 받으실 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사명을 다 포기하고 다시 고기잡는 옛날의 어부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본문 4-6을 볼까요? 순종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매우 비슷한 면이 많이 있지만 다른 면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물이 찢어진 것과 그물이 찢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두 경우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많은 물고기를 잡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먼저 눅 5:6을 봅시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 중에서 6절과 11절을 봅시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정 저런 사정으로 우리에게서 많은 것들이 빠져나가지 않았는지 한 번 자신을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물질도 빠져나가고, 건강도 빠져나가고, 화목도 빠져나가도, 사랑도 빠져나가고, 믿음도 빠져나가고, 소망도 빠져나가고... 마치 찢어진 그물을 통해 물고기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애는 씁니다. 잠도 안자고 노력합니다. 주일날 교회도 나오지 못하고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의 그물에 잡혀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는가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과거의 생활은 어떠했던지 간에 다 과거로 끝내버리고 지금부터의 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물고기가 잡히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그믈이 찢어지지 않은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실패는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153마리의 큰 물고기를 잡고 싶습니까? 그물 한 군데도 찢어지지 아니한 상태로 온전하게 잡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베드로처럼 그렇게 따라하기만 하면 됩니다. 먼저, 베드로 처럼 주님 앞에 우리의 빈 모습을 솔직히 고백합시다.
베드로가 어부임에도 불구하고, 밤새도록 수고했는데도 불구하고 고기가 없다는 것은 아주 창피한 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솔직하게 자신의 빈 모습을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지금의 빈 모습, 상황에 따라 빈 모습이 다르다 할찌라도 그것을 주님께 고백할 때, 주님의 그 사람을 위한 회복을 위한 작업을 시작하십니다. 그러므로 빈 모습의 솔직한 고백은 진정한 회복과 치유를 치유한 첫 계단을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349장을 우리는 참 좋아합니다. 그 가사처럼 나 주의 도움 받고자 내 모습 이대로 주님께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베드로 처럼, 우리의 마지막 아킬레스끈인 자존심 마저도 내러 놓읍시다.
어떤 사람은 죽으면 죽었지 자존심은 못 버린다고 하는데, 과연 그 자존심이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인 궁금합니다. 실은 우리가 고집부리면서 붙들고 있는 자존심이란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이 많습니다. 괜히 그것을 붙들고 있다가 실컷 손해보고, 망가지고,, 후회하는 경우가 참 많지요. 자존심하면, 베드로도 대단하지요.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고, 주님으로부터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장담하기를 좋아하고 어떤 때는 잘난체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는 이제 자존심을 내려 놓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없었다면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회복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배경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있습니다. 당대의 최고의 스승인 가말리엘릐 문하생입니다. 율법에 있어서는 둘 째 가라면 서러울 사람입니다.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의 자존심을 내려 놓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하실 때, 우리는 진정한 권위를 얻게 됩니다. 우리의 자존심하고는 비교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머리 굴리지 말고 무조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6] 이에 던졌더니 6절에서 \'이에\' 라는 말은 예수님의 명령과 순종사이에 시간적인 그리고 심리적인 간격이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순종했습니다. 망설이지도 않았습니다. 주저하지도 않았습니다. 연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갈등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똑똑해서 탈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배웠고, 너무 많은 경험들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너무나 많은 전문적인 식견과 지식을 갖고 있고 든든한 빽(bsck)과 돈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사님이 공 예배에 가능하면 빠지지 말고 열심히 나오세요, 다른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나오십시오. 저는 저를 위해서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간절히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순종하고 안 하고 하는 것은 여러분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나아가서 하나님께 얼굴을 보여 드려야 할 것 아닙니까? 뭐 하나님이 꼭 교회에만 계시냐? 어디에나 계시지, 하면서 공예배가 비즈니스 때문에,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 때문에 우선 순위가 밀려나게 되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다음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베드로는 열심히 배웠고 훈련도 받았고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많은 것을 얻기도 했지만 베드로의 그물 한 구석은 구멍이 뚫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오늘 말씀대로 베드로 따라하기를 합시다. 요즈음 컴퓨터를 배우는 책 제목도 \'OOO 따라하기\'도 있습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