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들과 사생자의 차이

♣ 주일설교 2005-11-06 ♣
\"참아들과 사생자의 차이\"


☜ 탕자도 아들이기에 아버지는 한없는 사랑을 나타 내십니다.
 
 
 / 히 12:1-13 / 권다니엘 목사 /
 
 
   (본문)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8절에 보면 \'사생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생자\'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정상적인 결혼에 의하지 않고 낳은 아이를 말합니다. 불법적인, 불의한 관계 속에서 태어난 아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 당시에는 사생자 본인은 물론 그 10대 자손까지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23: 2을 보십시다.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십대까지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해도 사생자는 정상적인 부부관계 속에서 태어난 아이처럼 부모의 사랑과 훈륙을 받고 성장하기가 힘이 듭니다. 대부분의 사생자들은 부모의 관심 밖에 밀려나 있기가 쉽고,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방치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적인 문제의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참 아들의 반대개념으로 사생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요한복음 1: 12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사생자입니까?
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하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연 내가 하나님의 참 아들인가 사생자인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사정과 형편과 처지가 어려울 때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참 아들과 사생자의 차이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참 아들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참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 자녀일진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 사실에 대해서는 우리는 의심을 해서는 안됩니다. 내 환경과 처지와 여건에 상관없이 자녀들은 여전히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많이 짓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 하지 못했다 할찌라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이 신분에는 변화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녀들인 우리들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도 하나님은 그 자녀을 사랑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가 않다\'는 말이 있지요? 이것은 자녀들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말해 주는 것이지요?  자녀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 보다 훨씬 더 크답니다. 다음의 말씀이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상에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에 그보다 더한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자녀들이 생각하고 있다면 부모님은 얼마나 서운하게 생각하실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참 자녀요,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확신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흔들리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이 서운해 하시지를 않습니다.

 
참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징계와 꾸지람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이 잘못할 때 꾸짖기도 합니다. 분문 6절을 보면,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해서 징계도 하시고 채찍질로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사생자라면,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하나님을 우리를 징계하시거나 채찍질하실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징계가 없으면 하나님의 참 자녀가 아니라 사생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징계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참 아들이라는 증거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잠언 3;12과 요한계시록 3:19을 봅시다.
  (잠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完毬遊?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책망하시고 징계를 하시,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잠 자녀임이 입증되었음을 감사하고, 내 잘못을 바로 잡아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식에는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지만, 남의 자식이 대해서는 공부를 하든, 무엇을 하든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는 없습니다.
 
 
참 아들에게는 의의 평강의 열매가 맺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징계하고 꾸짖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라고 1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의 평강한 열매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의로움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평강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성품을 닮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녀들을 징계하시기도 한다는 말씀입니다.
   10절을 보면, 징계의 목적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 즉, 우리의 말과 생각, 행동이 거록해 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다듬어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징계하시고 우리를 다음으실 때, 우리에게는 고통스럽습니다. 모난 부분이 정으로 깍여저 나갈 때 아픔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기쁘게 이 과정을 감당해야 합니다.
 
   제가 왼쪽 팔이 아파서 요즈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는 데, 거기서 과제로 내 주는 팔 운동이
네 가지가 있는데, 하루에 한 가지에 100번씩 네 가지 합쳐서 400번을 해야 하는데, 한 번 하려고 하는데도 어떤 때는 아파서 눈물이 나올 정도입니다. 물리치료실에서 치료를 받다보면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 옵니다. 너무나 아파서 지르는 비명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감당해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깨와 팔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다고 그 운동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면 그 사람은 한 평생 동안 어깨와 팔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징계는 바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미워서 징계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11절의 말씀을 반드시 기억합시다.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리므로 우리에게 징계가 왔을 때, 우리는
 
  1. 가볍게 여기지 말고
 
     (잠 3: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2. 낙심하지 말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3.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고
 
 4. 감사하고
 
 5. 순종함으로 
 
    [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6. 인내로 잘 감당해 냅시다.
 
    (히 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그리하여 놀라운 은총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