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발 무엇을 먼저 내밀 것인가?
요 13:1-20 / 권다니엘 목사 /[손과발 무엇을 먼저 내밀 것인가?]
(본문)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즉 최후의 만찬입니다. 저녁 잡수시던 중에 갑자기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다음 대야에 물을 담아 친히 두 손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를 시작하십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는 매우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라\'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시기 위해서 두 손을 내미신 주님, 바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15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그리고 17절에,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손을 내미신 것은 섬김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발을 내밀어 섬김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은 손을 내밀고, 제자들은 발을 내 밀고..
주님은 이렇게 자기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중요한 시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중요한 일을 행하셨는데, 그 일을 행하신 목적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서로 섬기도록 하기 위함인데, 주님이 섬김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우리도 그대로 순종했으면 합니다.
주님의 섬김은, 신분을 초월한 섬김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구원주, 메시야입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죄인인 인간과는 그 신분을 비교할 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신 분이 손수 손을 내미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쉽게 생각하지만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똥통에 손을 넣어 구더기를 씻는 것보다 더 어렵고 충격적인 일인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자신이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초월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초월하지 않으셨다면 제자들의 발을 씻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진정한 스승이셨습니다.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이라는 신분을 초월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13절과 16절을 봅시다.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주님께서 제자가 스승을, 종이 상전을 당연히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섬기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인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면, 우리의 영원한 그리고 진정한 스승이신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섬기지 않을 이유가 없고 섬기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젊은 사람을 못 섬깁니까?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다른 사람을 못 섬깁니까? 권력을 가졌다고, 재물을 많이 가졌다고, 많이 배웠다고 다른 사람을 못 섬깁니까?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를 섬기셨고,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명령을 하십니까?
\'\'너희도 서로 섬기라,\'
우리는 주님의 이 명령 앞에서, 섬기기 위해서 손을 내미시겠습니까? 아니면 섬김을 받기 위해서 발을 내미시겠습니까? 주님 앞에서 우리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섬김은, 환경과 처지를 초월한 섬김이었습니다.
주님은 이제 내일이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만일 내가 내일 죽게 되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엄청난 고통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남을 위해서 섬기는 것은 고사하고 분노와 원망이 터져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절망 속에서 울부짖을 수가 있습니다. 아니면 모든 것을 다 단념하고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의욕도 생각도 없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 본인의 이런 환경과 처지를 초월하셔서 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과 처지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면, 남을 위해서 섬기고 봉사하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남이 나를 도와 주고 섬겨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런 상황과 처지를 초월해서 섬겼으니 너희도 환경과 처지를 초월해서 섬기라고 말입니다.
얼마 전에 TV에서 어떤 사람에 대한 소개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공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사고로 인해서 척추를 다쳤습니다. 그는 거의 움직일 수가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동안 절망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그의 손가락울 조금 움직일 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의 손가락에 막대기를 묶어서 컴퓨터의 자판은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서 컴퓨터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계속해서 공부를 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 사람에게 소망을 주었습니까? 남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도리어 적극적으로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원리요, 주님의 명령입니다.
(빌 2: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섬기고 봉사하면 내 속에 기쁨이 충만해 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섬김은, 상대를 초월한 섬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상대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도와 주었으니 나도 저 사람을 도와 준다.\'
\'내가 도와 주었는데도 은혜도 모르니 다시는 안 도와 주겠다.\'
\'저 사람은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이야.\' \'저 사람은 지난번에 나에게 도움을 주지 않은 사람인데 저 사람을 내가 왜 섬겨.\'
상대에 따라 섬기기도 하고 섬기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상대를 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주님은 제자들의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할 것을,
제자들이 자기의 사명을 다 버리고 어부로 돌아갈 것을,
심지어는 가룟 유다 예수님을 팔 것을. 11절을 봅시다.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우리 같으면 \'저런 놈들을 섬겨.\' 할 수 있지만 주님은 저들을 위해 섬기십니다.
베드로의 발도 씻기셨고, 가룟 유다의 발까지 씻기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상대를 초월해서 섬겨야 합니다. 주님은 계산적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조건적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냥 사랑의 마음으로 섬기고 봉사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처럼 섬겨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섬김을 보면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섬김과 봉사의 손을 내밀 것인지, 아니면 나를 도와주고 나를 섬겨달라고 발을 내밀 것인지..
우리가 주님처럼 모든 것을 초월하여 섬기지를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도움과 섬김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 주님으로부터 자비와 긍휼을 받기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음의 주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