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것과 죽는것


♣ 주일설교 2005-09-25 ♣
\"자는 것과 죽은 것\"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 눅 8:49-56 / 권다니엘 목사 /
 
(본문) “[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하거늘 [50]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51]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및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하지 아니하시니라 [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53] 저희가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대 [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계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세상에는 죽은 듯이 자는 사람도 있고, 자는 둣이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전자는 너무나 곤하게 달콤하게 그리고 꼼짝하지 않고 잠을 자기 때문에 마치 그 모습이 죽은 거와 같다는 말이고, 후자는 죽은 사람이 너무나 편안하게 죽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하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죽은 듯이 잠을 자는 사람이라 할찌라도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잠자는 듯이 죽은 사람이라 할찌라도 그 사람은 깨어나지를 못합니다. 전자는 살아있는 사람이고 후자는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에서 가끔 돌아가신 분들의 시신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참 편안하게 주무시듯이 누워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죽은 사람이 아이들이거나 청소년들일 경우에, 아니 지금 돌아가시면 안될 사람들인 경우에는 정말로 잠에서 깨어나듯이 살아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간절한 바램이 마음에 솟구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미 죽은 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무리 잠자듯이 누痔獵囑捉? 꼭 깨어날 듯이 편안하게 누워있더라도 이미 죽었기 때문에 일어날 것을 기대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잠자 듯이 죽은 사람, 꼭 깨어날 것 같이 편안하게 죽어 누워있는 사람을 가리켜 잠잔다고 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혹시 이 분은 비정상적인 분일까요? 
  장례식장에서 가족을 시신을 부둥켜 앉고 지금 깨어날 것이니 절대로 이 시신을 관에 넣지 말라고 울부짖는 분이 간혹 있습니다. 보는 분들은 모두다 안타까워합니다. 너무나 충격을 받아 잠시동안 정신이 나갔구나 이렇게 생각들을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회당을 책임지고 있는 회당장이 예수님께 자기의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당신의 딸이 이제 죽었으니 예수님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말합니다. 죽었는데 이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회장당의 딸이 죽어 있는 집에 오신 예수님이 그 딸의 죽은 모습을 보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정상적이라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비웃는 사람들을 비웃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그 딸이 죽은 것이지만 예수님께 있어서 그 딸은 잠자는 거와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분시길래 죽은 자를 가리켜 잠잔다고 말씀을 하셨을끼요?
 
예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자연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과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우리는 이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연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것으로 끝나신 것이 아니라 오늘도 자연 만믈과 인간을 주관하십니다. drive하시고 control하십니다. 에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신 분이십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 천 명을 먹이시고도 열 두 광주리를 남기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온갖 질병을 고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고, 친히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창조자,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권한이 있으시기 때문에 당연히 살리실 수 있으십니다. 죽은 자는 예수님 앞에서 잠자는 자와 같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이 잠자는 자를 깨우는 것과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기적에 대해서 매우 신기해하고 관심을 갖기도 하지만 어떤 분은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범위 안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들만 믿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기적이라고 하는 일들이 예수님에게는 너무나 쉽고 당연한 일입니다.
  오래 전에는 기적이라고 생각하던 일들이 오늘날에는 쉽게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를 한 시간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간다면 그것은 초자연적인 기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한 시간이면 부산에 도착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인간은 낙심과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이제는 모든 게 끝나는구나.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일하시는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움과 환란과 고통 속에 있는 우리들을 항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나만을 믿기만 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회당장의 마음에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사람이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을 당하게 되면, 슬픔보다도 우선 공포가 몰려오게 됩니다.
  두려움은, 공포는 사단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무기로부터 손상을 당하게 되면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당장과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50]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죽음은 두려운 것이지만 잠자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회장당에 딸이 죽은 것이 잠자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영어로 이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When we work, we work but when we pray, God works. 

  위 말씀의 내용은 다음의 성경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시 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것을 예수님께 기도로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께 도와 달라고 요청합시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으십니다. 라고 고백합시다.
  그리할 때, 두려워 말고 나는 믿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그것을 해결해 주십니다.
 
  또한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에수님께서 문제를 너무나 쉽게 해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잠자는 아이를 깨우듯이 예수님은 회당장의 죽을 딸을 일으킵니다.
[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불가능한 일이 예수님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아이야 일어나라\'는 한 마디에 죽은 아이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이가 잔다고 했을 때, 비웃은 사람들이 얼마나 무안했겠습니까? 아마 쥐구멍이라도 찾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어려운 문제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니야, 이 문제만은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어\' 하면서 몸부림만 계속 치고 있다면, 그 보다 더 어리석고 안타까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진정으로 믿고 있는지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할 때 예수님에 대한 자세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너무 개념적으로만, 피상적으로만 믿고 있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2000년 전에 너무나 쉽게 문제를 해결해 주신 우리 주님, 오늘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동일하게 예수님께 화답해야 합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가 있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내 문제를 예수님께 올려드립니다.\"
   
    이 결실의 계절에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기적과 응답의 역사들이 열매로 충만하게 드러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