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계시의 정신

♣ 주일설교 2005-08-07 ♣
\"지혜와 계시의 정신\"


 / 엡 1:15-23 / 권다니엘 목사 /
 
   <본문>“[15]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어떤 사람은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헤안을 가졌다고 합니다. \'혜안\'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본질 즉 그 속을 꿰뚫어 보는 눈을 말합니다.
  
  과거에 어떤 재벌은 사람을 뽑을 때, 관상을 보는 사람을 동석을 시켰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성격과 미래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진 사람을 동원해서라도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요즈음에 정치가와 경제가에 인기를 끌고 있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바로 \'송하비결\'이라는 책입니다.  조선 말기 평안남도 대동군에 살았던 도인(道人)인‘송하노인이 쓴 것으로 알려 진 예언서로 조선말부터 2015년 한반도의 미래를 2800자 사자성어 형태로 암시해 놓은 것인데, 2003년도 통일연구원 황병덕 선임연구원이 번역을 해서 출판을 했습니다.
   박정희 시해사건을 비롯해서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암살을 모면하고 등등의 사건을 이미 200년에 송하노인이 다 내다보고 알고 있었다는 痼都求?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송하노인은 대단한 혜안을 갖고 있었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한문으로 된 사자성어를 번역한 사람이 실질적으로 일어난 일을 염두에 두고 해석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는 견해가 참 많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해석자가 해석을 해 놓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얼마나 정확하게 이루어지는가를 보면 알 수 있겠지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앞일을 알기를 원합니다. 성공하고 잘 되는 비결을 찾기를 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혜안\'을 갖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혜안을 갖고 있다는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그러한 책들을 가까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분명한 사실은 인간은 능력과 지식에 있어서 한계를 갖고 있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본문 17절을 보면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지혜\'와 \'계시\'의 사전적(辭典的)의미를 살펴보면, 지혜\'는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하며, \'계시(啓示)\'라는 말은 \'감추어져 있고 덮여 있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어느 길이 성공하는 길이고 실패하는 길인지.. 이런 것들을 정확하게 분간해 내는 \'분별력\', 그 누구도 모르는 사람과 사물 속에 깊이 존재해 있는 비밀과 비결을 꿰뚫어 보고 알아내는 \'통찰력\'이 사전적 의미의 지혜와 계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바로 그 \'혜안\'이지요.
 
  \'지혜와 계시\'를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기를 원한다고 바울은 소원하고 있습니다. 17절을 한 번 읽어 볼까요?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런데 여기의 \'지혜와 계시\'는 한계가 있는 인간의 혜안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이 \'지혜와 계시\'는 인간 스스로가 소유하거나 발생시킬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소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냥 \'지혜와 계시\'라고 하지를 않고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신이라는 말은 단순한 마음이나 정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가리키는 \'프뉴마\'라는 헬라어가 사용되었다는 시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만이 온전한 분별력과 통찰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주시기를 원하다\'다고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그 어떤 것도 분별하시며, 그 어떤 것도 꿰뚫어 보시며, 드러내십니다.  고전 2:10에서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받기를 원했을까요?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살펴 봅시다.
 
첫째,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다시 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피상적으로만,  관념적으로만 알아서는 안되지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은 왕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왜 우리의 믿음이 약해집니까?  왜 신앙이 흔들립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왕의 의무는 백성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왕되심을 바로 안다면 그 무엇도 우리를 두렵게 만들 수가 없게 됩니다.
   목자는 양들을 인도하고 보호하고 먹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심을 안다면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성도들을 부르신 부름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18절에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지혜와 게시의 정신\'을 주시기를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하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수롭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 정말로 대단한 존재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12절과 14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으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목적이 그냥 먹고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닙니다. 돈벌고 성공하고 좋은 일하다가 가는 그 정도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환경과 형편을 초월해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깨를 펴야 합니다. 허리를 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신 기업이 얼마나 풍성한 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18절은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받는 기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받는 상속은 무엇입니까?
천국입니다. 영생입니다. 이것 밖에 우리의 기업이 없습니까? 이 땅에서는 우리의 기업이 없습니까? 이 땅에서도 우리의 기업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만큼 놀라운 기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약속의 땅 \'가나안\'은 기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 길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것 자체가 바로 그들의 기업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죽은 후에 얻는 천국과 영생만이 기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이 풍성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얻도록 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더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요 10:10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기업은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생각도 할 수 없는 기업인 것입니다.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이미 약속되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히 11장을 보면, 기라성 같은 믿음의 조상들이 다 기업의 풍요함을 바라고 믿음을 지키며 세상이 능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업의 풍요함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기만 한다면 어떠한 환란과 시련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믿음 위에 견고히 설 수가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베푸신 능력이 얼마나 튼 것인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19절을 봅시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능력은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부활의 능력입니다. 어두움의 세력을 깨드리는 능력입니다. 20-21절에서 이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안에서 너무 과소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십자가의 보혈과 말씀의 검과 성령의 능력이라는 네 가지의 엄청난 능력의 무기들을 우리에게 이미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이 능력의 무기들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승리하는 삶
을 지속적으로 살 수가 있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구해야 합니다.  진정한 분별력과 영적인 통찰력의 근원이 되는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 우리에게 있어야만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를 바로 알게 됩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업과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죄악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나 자신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어두움의 세력들을 이기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지혜외 계시의 성령을 받으셔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비젼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