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사람을 살리는가?

♣ 주일설교 2005-07-03 ♣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가!\"


☜ 다비다는 평소에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심히 많이 했습니다.
 
 
 / 행 9:36-43 / 권다니엘 목사 /
 
<본문>“[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하니라”
   흔히들 돈이 사람을 살린다고 말을 합니다. 돈이 없어서 수술도 못하고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권력이 사람을 살린다고 말을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면 배후에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도 있고, 죽을 죄를 지었어도 권력으로 인해 살아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의술이 발달이 되지를 못해서 질병에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의술의 발달로 인해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진정으로 사람을 살린 놀라운 사건이 있습니다.   
   \'욥바\'라는 지역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50여 Km 떨어진 항구 도시입니다. 이 지역에 \'다비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비다\'는 히브리식 이름이고, 헬라식으로는 \'도르가\'라고 합니다. 이 여자가 병이 들어서 죽고 말았습니다. 아예 생명이 끊어진 것입니다. 그 시체를 깨끗이 씻어서 다락에 두었습니다. 조용한 다락에 시체를 씻어 두었다는 것은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는 것을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여인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정말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도대체 무엇이 이 여인을 살렸는가? 본문을 살펴 보면서, 우리도 우리를 진정으로 살릴 수 있는 것을 붙잡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행복한 것입니다. 모든 일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바른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큰 복입니다.
   주변에 참모들을 잘 못 두어서 일을 그르치는 지도자가 있는 반면에, 정말로 좋은 참모를 두어서 그 사람의 업적이 아름답게 빛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분야와 경제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교회 담임 목사님이, 밑에 사람을 잘못 두어서 회복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비다가 죽은 욥바에서 가까운 \'룻다\'에 베드로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38절을 보십시다.
  [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베드로는 사도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베드로가 외칠 때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 성전 문에 않아 있는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킵니다. 성령을 속이고 재산의 일부를 속여 받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베드로의 책망 속에 죽는 무서운 일이 벌어집니다.
   욥바 옆에 있는 룻다에서는 베드로가 8년된 중풍병자를 베드로가 고칩니다. 
 
   이러한 베드로에 대해서, 베드로의 놀라운 사역과 움직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죽은 \'다비다\' 주위에 있었다는 것이 다비다에게는 놀라운 축복이요, 행운이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베드로에게 꼭 와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내 주변에 이러한 영적인 민감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의학적으로 지식이 있거나 병원에 관련된 사람이 있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주변에 법조계, 정치계, 경찰 계통이 사람이 생기도록 노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기 주변에 있을 때, 큰 어려움을 모면할 수 있고,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세상적인 도움을 줄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것 보다 우선 내 주변에 나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줄 영적으로 민감한 신앙의 사람이 붙도록 기도하고 노력하고 해야 합니다.
 
 둘째, 중보기도자가 꼭 필요합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줄 중보기도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기에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 나타나고, 성공하고 출세하는 데 도움을 줄 사람이 있으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갑니다. 어떠한 댓가를 치르러서라도 그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최선과 최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중보기도자의 필요성에 대해서 그리 크게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본문을 보니깐, 베드로가 다비다의 시체 옆에 섰을 때, 모든 과부들이 울며서, 다비다가 자기들에게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내 보입니다. 이것은 다비다를 살려 달라는 간절한 요청입니다. 사도인 베드로 선생님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다비다를 살려 내라는 간곡한 부탁입니다. 이것이 중보기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비다에게 이런 중보기도자 과부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비다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초대교회를 개척하면서부터, 강력한 중보기도자를 붙여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 기도대로 하나님은 강력한 중보기도자를 붙이셨고, 지금도 불이고 계십니다. 그들은 울며, 금식하면서, 초대교회를 위해, 여러분을 위해,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중보기도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중보기도자들의 기도는 위험을 미리 막는 역할을 합니다., 큰 손해와 실패를 미리 차단하고 대비하게 합니다. 중보기도는 죽음을 미리 피하게 하기도 합니다. 중보기도는 죽음에 이르는 질병에서도 살아나게도 합니다. 중보기도는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살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중보기도는 우리들의 가정과 자녀들에게 미칠 위험을 사전에 봉쇄하는 역할도 합니다. 중보기도자의 기도는 마귀의 유혹과 사단의 공격을 깨뜨립니다.
 
   우리는 나를 위한 중보기도자를 붙여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뿐만 아니라 서로을 위한 중보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째, 중보기도자를 얻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중보기도자를 아무에게나 하나님이 붙이지를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붙이십니다.
오늘 분문에 보면 다비다는 \'여제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비다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자를 위해서 하나님은 중보기도자를 붙이십니다.
 
   또한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다비다로부터 도움을 받은 과부들이 다비다를 위해서 중보기도자의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우리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선행을 행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들이 나를 위한 중보기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욕심만 챙기고, 나에게 도움이 안되는 일은 관심도 안가지고, 이기적인 자세만을 취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사람이 붙지를 않습니다. 그 사람이 위기 때에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를 않을 것입니다. 중보기도자가 생기기가 힘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형편과 사정을 초월해서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선행을 행해야 합니다. 관심을 기울이고 도와야 합니다.
  (빌 2: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내가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돌아보아 줄 때 그들은 나의 진정한 중보기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중보기도자들을 많이 붙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해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