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심

♣ 주일설교 2005-06-19 ♣
\"긍휼히 여기심\"


  / 롬 9:10-18 / 권다니엘 목사 /

(본문) “[10]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오늘 본문에 긍휼이란 말이 여러번 나오고 있습니다. 긍휼이라는 말은 \'가엽게 여기는 마음\'을 말하는데 \'라함\'이라는 말에서 나온 말로서 \'\'자궁\'이라는 뜻입니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온 자식을 가슴에 안고 젖을 먹일 때의 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긍휼\'입니다.
이 \'긍휼\'이란 어머니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잘 표현한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렘 31: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부모님의 긍휼의 마음이 자식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듯이 하나님의 긍훌도,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이 물고기에게 필요하듯이, 자연 만물에게 공기와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듯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에게 엄청나고 놀라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영역에 작용을 할까요?
 
  \'선택\'에 하나님의 긍휼이 작용을 합니다.
 
   이삭의 부인 리브가가 아들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에서와 야곱을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을 선택했습니다.  도대체 야곱이 뭐가 예뻤길래 태어나기도 전에 선택을 했을까요?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인간적으로 보면 이해가 안가지요?  인간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할 아무 근거가 없습니다. 나기도 전인데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하고\' 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로 야곱의 선택의 그 근거를 11절에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한 마디로 줄이면 \'하나님의 마음대로\' 야곱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그 누구도 하나님은 불의하다고 시비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그 분이 자기의 뜻대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대로 했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긍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긴 것입니다. 어떤 이유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은 것의 어떤 근거와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보셨고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큰 소리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하면서 단지 겸손해질 뿐입니다. 오로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단지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할 따름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긍휼이 \'응답\'에 작용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더군다나 성경은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 달라고 하는 간구의 기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구하면 하나님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구하면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우리가 계속해서 달라고 구하는 정성을 보시고 주시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지요?
 
   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녀들이 구하는 것을 당연히 주셔야 합니까?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7:11을 잘못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기에서는 아버지와 자녀라는 관계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녀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인 것입니다.  자녀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사랑입니다.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구하는 것이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에 어긋날 때에는 주시지를 않습니다. 주시지 않는 것이 자녀를 위해서 더 좋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이 단순한 생각 때문에 \'당신은 나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단정을 짓습니다.\'
   기도하는 자세가 아주 무례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방질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고집대로 달라고 기도합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땡강을 부리듯이 말입니다.
 
   그러다가 기도의 응답이 오지 않으면, 실망합니다. 자기의 기도의 자세는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서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삐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면서 구하는 것을 주지도 않고..\'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세로 겸손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자기가 왕이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름부어 선택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다윗의 기도를 살펴 보십시오,
   시편을 보시면 다윗은 기도할 때 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몇 구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시 27:7)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시 30: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시 31:9)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시 41: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시 41:10)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일으키사 나로 저희에게 보복하게 하소서\"
 
   하나님은 긍휼이 여길 자를 긍훌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15절),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기(18절) 때문에, 기도할 때,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이 여기실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자세입니까?
회개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이루심\'에도 작용을 합니다. 
 
   우리가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때 우리가 잘 달려 간다고 해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꼭 목표에 도달해야지 하는 의지만 갖고 있으면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까?
   내가 어떤 일을 이루어야 겠다는 소원과 열망이 있다고 해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어야 성취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야,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야 이루어지고 성취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목회자가인 제가 원한다고 해서 ,  열심히 일한다고만 해서 교회가 잘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행하는 모든 일도 내가 원하고 의지를 갖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다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있어야 잘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셔서 사람을 세우시고,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셔서 그 일을 행하시면 안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형통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의 생애를 신약성경을 통해서 살펴보면,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실 때, 즉 긍휼이 여기실 때, 반드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병을 고치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기적과 이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긍휼을 간절히 구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