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으로 버리자


\"믿음으로 버리자\"
04-10-24 주일설교
히브리서강해(15)



☜ 모세가 자기 동족을 때리는 애굽 사람을 치는 모습

  / 히 11:24-27 / 권다니엘 목사 /

  모세가 부모가 모세를 사내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모세를 석달을 키우다가, 몰래 더 키울 수가 없어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워 보냅니다.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그것을 지켜 보다가, 마침 애굽의 공주가 나와서 목욕을 하다가 모세를 발견하는 것을 보고는 가서, 애기를 위해서 유모를 소개 주겠다고 하고는 모세의 어머니를 유모를 불러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이렇게 해서 모세는 애굽의 궁에서 왕자로서 자기의 어머니의 손에서 자랍니다. 어머니의 손에서 양육받으면서 그는 어머니로 부터 자기가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 하루는 밖에 나가서 자기의 동족인 히브리 사람들이 힘들게 노예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어떤 애굽 사람이 자기의 동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도 화가 나서 아무도 몰래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묻어 버렸습니다.
  그 다음 날 또 밖에 나갔는데, 이번에는 히브리 사람들이 자기 동족들끼리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다가가서 \"동쪽끼리 싸우면 어떡하느냐\"고 싸움을 말렸는데, 그때 그 동족이 이렇게 모세에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참견하느냐?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이더니 오늘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느냐?\"

   이 말을 들은 모세는 자기가 애굽사람을 죽인 것이 탄로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왕이 이 사실을 알고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습니다. 모세는 그 길로 도망을 합니다. 미디안 광야로 말입니다.

   어쩌면 모세가 자기가 애굽의 사람을 쳐죽인 것이 탄로가 나서 애굽의 바로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모세는 피하여 광야로 도망을 했지만 오늘 본문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사람을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를 하지 않고 놀라운 믿음의 행위로 평가를 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버렸고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무엇을 버렸다는 것입니까?

1.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명예를 버렸습니다.

   모세는 당당한 애굽의 왕자였습니다. 물론 히브리인의 애기 였지만 바로의 딸이 키웠고, 궁 안에서도 모세가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왕자로서 애굽의 학문과 무술을 배웠습니다. 그에게는 장래가 보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커 갈수록 모세의 마음 속에 자라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너는 애굽 인이 아니라 히브리 인이다.\"라는 자기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어머니가 유모로서 모세를 키우면서 그 마음에 심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속에는 \'나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나라인 애굽의 백성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민족인 히브리 민족, 즉 이스라엘 민족이다.\'라는 의식이 늘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할례받지 않은 이방민족인 애굽이 어찌하여 하나님의 선민은 내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단 말인가!\'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없었다면 그는 자기 동족인 히브리사람을 때리는 애굽 사람을 쳐죽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으로는 그가 애굽인을 죽인 것이 탄로가 나서 도망을 하는 꼴이 되었지만, 내면적으로 그는 자기가 히브리인로서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의 신분과 명예를 버린 것입니다.

2.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을 버렸습니다.

   시편 90:10에 보면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오래 사는 것 같지만, 눈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지나 가는 것입니다. 과거의 대통령들 보십시오.
그들이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큰 소리 치는 것 같지만 지금와서 그들을 보십시오.  명예는 금새 사라집니다.
   모세가 애굽의 궁궐에서 좋은 것을 먹고, 왕자로서 대접을 받고, 부족한 것이 없이 지낼 수 있지만 그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애굽은 우상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자기의 신들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아무리 모세가 어머니에게 신앙교육을 몰래 받았다 할찌라도, 그가 애굽의 왕궁에 커오면서 어찌 이방의 우상을 섬기거나 애굽의 신들을 섬기지 않고 40년을 살아왔겠습니까?

   애굽의 음란과 더러운 풍습과 문화에 물들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생활이 아무리 좋다고 할찌라도 더 이상 거기서 죄악된 즐거움을 누리고 싶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드디어 애굽의 왕자 직을 포기하고, 고통스러운 노예 생활을 할찌라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 히브리 사람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25절은 모세가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애굽의 부를 버렸습니다.

   사람들 치고 부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돈의 위력이 대단하지요.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무엇보다도 돈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모세가 왕자로 자란 애굽은 금은 보화가 넘치는 나라였습니다. 더군다나 왕자인 모세로서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재물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한평생 부를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모세가 이 엄청난 재물 즉 부를 포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여기서 우리는 모세의 위대한 신앙적인 가치관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받는 멸시와 천대, 고난을 더 큰 재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기를 원했다고 기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우쳐는 주는 귀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쁜 것이 아니지요. 단지 재물에 대한 욕심이 문제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자꾸만 더 벌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아주 가난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해서라도 기필코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그 사람을 부정과 불의를 행하도록 이끕니다. 드디어는 그 사람의 인생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부녀가 1년 안에 10억을 만들자고 계획을 세우고 출발했지만 그 꿈이 무너져 딸은 죽음으로 그 인생을 마감하고 만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10억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 뭐가 잘못되었겠습니까?  돈에 대한 강력한 집념과 욕심이 그 인생을 무너뜨리는 것이지요.
  
   잠언 30:7-9절은 물질에 대한 신앙인의 자세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진정한 믿음은 포기할 것을 바로 포기하는 것이요, 버릴 것을 바로 버리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버리기를 원하시는 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모순이 됩니다.

   기독교는 버림으로 얻는 종교입니다. 바울의 고백은 우리게 버림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믿음이라는 것을 강하게 보여 줍니다.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버림으로 믿음을 나타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으로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