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으로 뼈를 위하여 명하자

♣ 주일설교 2004-10-10 ♣
히브리서 귀납적 강해(13)
\"믿음으로 뼈를 위하여 명하자!\"


/ 히 11:22 / 권다니엘 목사 /

요셉은 참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15살 되었을 때에, 갑자기 형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뻔 하다가, 애굽의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렸습니다. 아버지의 얼굴도 못보고 어린 나이에 자기의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의 노예로 종살이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도 모함을 받아 감옥에 까지 갑니다.

   감옥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편안하게 지낸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시편 105:18-19을 보십시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발이 착고에 상할 정도로 고통을 당했으며 쇠사슬에 그 몸이 묶여져 있어서 움직이가 어려웠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도 이런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들 요셉이 이런 고통을 잘 극복하고 드디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릴 때 꾼 꿈을 바라보며,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그 꿈을 끝까지 붙잡은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드라마틱한 상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즉 비젼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비젼대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요셉의 꿈은 말대로 그에게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이, 자기의 묶은 곡신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곡신단이 둘러서서 요셉의 곡식단에 절을 하는 꿈을 꾸고,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었을 때,
   천사가 나타나서 \'바로 그 꿈은 대단한 꿈인데 형들과 심지어 아버지까지 너에게 경배할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거나, 아니 천사가 아닐 찌라도 주변의 어른들이 \'바로 그 꿈은 하나님이 너를 크게 들어 사용하실 꿈이다.\'라고 해석을 해 주었다면, 요셉이 15살 정도의 어린 나이라고 할찌라고 혹시 그 꿈을 계속 생각하면서 그 꿈을 붙榕珦뼉?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어린 나이에 애굽에 팔려가서 계속적인 밑바닥 생활로 고통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는데 그 꿈을 요셉이 마음에 생각하면서 불잡고 왔다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꿈을 붙잡고 어려움을 참고 견딘 결과, 그 꿈이 이루어져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 아니라면 요셉이 어떻게 애굽의 총리가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냥 되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 105:19-22)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20]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 [21] 저로 그 집의 주관자를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고 [22] 임의로 백관을 제어하며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애굽의 장관들을 통제하고 조정을 합니다. 즉 장관들을 파하기도 하며 선임하기도 합니다. 대단하지요. 그리고 그 당시의 최고의 경륜과 지식을 갖고 있는 장로들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혜와 리더쉽과 능력이 어디서 생겼을까요?   요셉이 날 때부터 이런 능력을 갖고 태어났을까요?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이러한 지혜를 능력을 위로부터 그냥 부어 주셨을까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그는 종살이를 통해서 감옥살이를 통해서 연단을 받으면서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시 105:21-22 절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19절이 나온 것입니다.

   요셉은 흉년이 든 가나안 땅에서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을 애굽으로 부릅니다. 양식 걱정없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모든 배려를 다 해 줍니다.  이제 80년이라는 세월이 흘렸고 요셉의 임종이 다가 왔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형제들과 자손들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두 가지의 유언을 남깁니다. 오늘 본문이 이것을 말합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것을 명합니다.

   애굽에서 국무총리로서 갖은 명예를 다 누렸지만 그의 마음은 가나안에 있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가나안에 대한 축복의 약속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는 아버지와 자기의 조상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창 15:13-14)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앞으로 40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이 하나님의 약속을 그는 기억하고 믿었습니다.

  (창 50:24-26) “[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400년 후에는 너희로 하여금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리라.\'는  약속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킵니다. 
   요셉의 덕분에 흉년이 심하게 들었던 가나안 땅을 떠나서 풍요로운 애굽 땅에 와서 가장 비옥한 땅인 고센 땅에서 머물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 요셉의 덕분에 애굽에서 갖은 혜택을 누리면서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 가나안에 있을 때처럼 이 곳 저 곳을 떠돌아 다니면서 목축을 해야 할 필요도 없이 한 곳에 정착해서 편한하게 살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편한 여건 속에서 정착하여 살면서, 안주하여 가나안으로 들어 가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 버리게 되지 않을까 요셉은 죽는 순간까지 염려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죽는 순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을 사모하라고 명하였던 것입니다.

2.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했습니다.

   즉 자기의 시신을 가나안 땅에 묻으라고 명령을 유언으로 했던 것입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애굽 땅은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땅입니다. 가나안에서 15년 정도를 살았지만 애굽에서는 95년울 살았습니다. 애굽은 그에게 부귀와 영화가 보장된 땅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송을 받아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나안을 그리워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언약을 철저히 신뢰하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유해는 요셉이 죽은 후 곧 바로 가나안 땅에 장사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약 360년 후 출애굽하면서 후손들의 손에 의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드디어 묻히게 된 것입니다.

   가나안에 돌아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요셉의 생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400년 후에 이루어질 것을 알고도 그 약속을 늘 바라보며 살았던 요셉, 그리고 그 약속의 성취에 참여한 자가 되기 위해서, 자기의 해골이 가나안 땅으로 옮겨감으로써 가나안 땅을 소유하기를 바라는 믿음에서, 자기의 해골을 가나안 땅으로 가져가라고 명한 요셉, 그는 정말로 뛰어난 믿음의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가서도 인생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성실하게 종으로써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누명을 뒤업어 쓰고 감옥에 가서도 그는 정직하게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후에도 자기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운 사람에 보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가 팔아버린 형들을 미워하고 보복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용서하고 사랑하고 그들의 자손까지 먹여 살렸습니다. 요셉의 훌륭한 모습을 말한다면  몇 시간을 설교한다 할찌라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히 11장을 쓰신 분은 성령의 감동으로 요셉을 믿음을 표현하면서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온 감동적인 믿음의 삶을 다 뒤로 하고 임종시의 믿음의 유언을 언급한 것을 우리는 이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합정동에 가면 한국기독교선교기념관이 있습니다. 이땅을 \'복음의 땅끝\'으로 알고 찾아왔다가 숨진 10개국 395명의 선교사들이 묻힌 곳입니다. 양화진에 자리한 기념관은 지금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은혜 보답의 차원에서 이곳에 외국인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선교사들의 묘비는 생명력 넘치는 메시지가 되어 방문객들의 영혼을 두드립니다. 묘비명에 담긴 애절한 사랑도 가슴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안락한 삶을 마다하고 한국을 찾아온 벽안의 선교사들. 풍상에 씻겨 흔적을 알아보기 힘든 빛바랜 묘비명들이 예리한 표상처럼 가슴에 파고 듭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 랑이 없느니라\"(A. K. 젠슨).
   \"나에게는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해도 그 모두를 한국을 위해 바치리라\"(R. 캔드릭).
   A. R. 아펜젤러 선교사의 묘비명이 다시금 방문객들의 눈길을 잡아 당깁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복음화를 바라보면서 그들의 한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들은 생전에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제 이들의 뼈는 1,200 만명의 성도와 10만개의 교회를 갖는 한국에 대한 약속의 성취를 마음꼇 맛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고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