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축복하자


♣ 주일설교 2004-09-26 ♣
히브리서 귀납적 강해(11)
\"믿음으로 축복하자!\"



 ☜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모습


 / 히 11:20 / 권다니엘  목사 /

   우리가 \'이삭의 믿음\' 하면 가장 먼저 우리 머리 속에 떠오는 것은,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질 때의 이삭의 모습입니다.
   모리아 산을 향해서 아브라함과 이삭이 걸어 갈 때, \"불과 나무는 있는데,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라고 이삭이 물었을 때 아브라함은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리라\"고 답변을 했는데,
   이제 와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이삭을 묶을 때, 이삭이 얼마나 깜짝 놀라고 당황을 했겠습니까? 
   \'아버지 뭐하는 거예요?\'  \'아버지 정신이 나갔습니까?\' 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삭은 아무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때의 이삭의 나이는 최소한 15세는 되었을 텐데.  115세나 되는 아브라함을 힘으로 밀어 부치고 저항할 수도 있을 텐데.  이삭은 전혀 이런 행동을 보이지 않고 마치 순한 양처럼 아버지의 행동에 순종하여 순순히 응합니다.
   정말로 이삭의 믿음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100세 때 낳은 독자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믿음 못지 않게 이삭이 훌륭한 믿음을 가졌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를 쓴 사람은 히 11장에서 이삭의 믿음을 거론하면서 이 것을 거론하지 않고 전혀 새로운 것을 이삭의 대표적인 믿음으로 거론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도대체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아들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한 것이 뭐가 중요하고 대단하길래, 자기가 제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뿌리치지 않고 순순히 순종한 그 놀라운 믿음을 제끼고, 이삭의 믿음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히브리서 11장에 기록이 되었을까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를 쓴 사람이 잠시 착각을 하고 실수를 해서 이렇게 다른 것을 기록한 것입니까? 그게 아니지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도대체 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까?  이것이 뭐가 대단한 믿음의 사건이 될 수가 있습니까?  여기에 메시지의 핵심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삭의 믿음을 대표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약속이라는 것은 세월이 지날수록 눈에 보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점점 약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손에 대한 축복의 약속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때에 그 약속이 그렇게 확연히 이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죽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또 약속을 하십니다. 그 약속이 무엇이지요?

   (창 26:2-4)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3]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 약속을 정리하면
1.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복을 주겠다.
2. 이 모든 땅(가나안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3.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별과 같이 번성케 하겠다.
4.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인이 복을 받을 것이다.

이 네 가지입니다.  자손에 대한 축복이 대부분입니다.

   아브라함의 때에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들인 자기 때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이 약속을 믿는 것보다, 더 믿기가 힘들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하고 믿었던 것입니다.

2. 약속에 근거해서 자녀들에게 축복을 한 것입니다.

   아들 중에서 동생인 야곱에게 축복한 내용이 창 27:27-29에 나옵니다.

  (창 27:27-29)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야곱을 섬기고 열국이 야곱에게 굴복하고 야곱이 자기의 형제들의 주가 되고 야곱의 어머니의 아들들이 야곱에게 굴복하고 야곱에게 저주하는 하는 저주를 받고 야곱에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이러한 축복의 기도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지금 형인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다시피 사고, 이제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형 에서의 옷을 몰래 입고, 손에는 털을 붙여서 아버지가 만졌을 때, 발각이 나지 않도록 한 야곱이 아니었습니까?
  이런 야곱에게 어떻게 이런 놀라운 축복을 선포해 주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야곱이 속이는 것을 이삭이 몰랐기 때문에 에서인 줄 알고 축복을 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 축복기도는 여호와의 신의 감동으로 한 것이 분명합니다.

  나중에 에서가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자기의 축복을 가로챈 것을 알고 아버지에게 야곱에게 한 축복을 무효화시키고 자기에게 그 축복을 해 달라고 했을 때, 아버지가 울부짖는 에서의 말대로 해 주지 못한 것을 볼 때, 야곱에게 해 준 축복의 기도는 단순히 인간의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고 원통해서 울부짖고 있는 에서를 위해서도 축복기도를 합니다.
  (창 27:39-40) “[39]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이 기도의 내용을 보면 에서에 대한 안 좋은 내용의 기도인 것 같지만, 결국은 내 아우 야곱을 섬길 것이라는 기도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야곱에 대한 축복 기도의 연속인 것입니다. 아까 야곱에게는 어\'떤 축복을 해 주었지요?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야곱에 대한 축복기도나, 에서에 대한 축복기도나 그 내용은 모두 \'장차 올 일에 대하여\' 즉 \'하나님의 약속\'에 의거한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그 아들들을 생각하고 그 아들에게 적합하도록 자기의 생각대로 축복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축복을 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삭의 위대한 믿음의 내용인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바라보면, 자녀들이 부족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대부분 그럴 겁니다.  어떤 때는 자녀들이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답답해 보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의 아버지 이새도 그랬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서 이새의 집에 찾아 와서 아들들을 내게 보이라고 했을 때, 막내 다윗은 사무엘에게 보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놈은 나이가 어리고, 외모와 풍채도 보잘 것 없는데..\'  자기도 모르는 새, 다윗을 아들의 명단에 빼 놓았던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가 이새의 아들들을 다 보고 난 뒤에, 이제 아들이 또 없느냐고 했을 때, 양을 치는 막내 아들이 있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그 놈은 절대로 왕이 될 수 없는 놈입니다.\' \'왕하고는 도저히 맞지가 않는 놈이예요.\' 라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깐 사무엘 선지자가 뭐라고 말씀했나요?
   \'다윗을 데리고 와서 내 앞에 보이기 전까지 나는 음식도 먹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던 것입니다.

   도저히 자녀들 축복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찌라고 자녀를 축복하십시오. 자녀를 행위를 보고 축복하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에 근거해서 축복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감정에 따라, 우리의 판단에 따라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믿음이라면 아마 그 믿음을 갈대처럼 이리 저리 흔들릴 것입니다.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참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