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설교 2004-09-26 ♣ 히브리서 귀납적 강해(11) \"믿음으로 축복하자!\"
☜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를 쓴 사람은 히 11장에서 이삭의 믿음을 거론하면서 이 것을 거론하지 않고 전혀 새로운 것을 이삭의 대표적인 믿음으로 거론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도대체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아들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한 것이 뭐가 중요하고 대단하길래, 자기가 제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뿌리치지 않고 순순히 순종한 그 놀라운 믿음을 제끼고, 이삭의 믿음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히브리서 11장에 기록이 되었을까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를 쓴 사람이 잠시 착각을 하고 실수를 해서 이렇게 다른 것을 기록한 것입니까? 그게 아니지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도대체 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까? 이것이 뭐가 대단한 믿음의 사건이 될 수가 있습니까? 여기에 메시지의 핵심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이 약속을 정리하면 이 네 가지입니다. 자손에 대한 축복이 대부분입니다. 아브라함의 때에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들인 자기 때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이 약속을 믿는 것보다, 더 믿기가 힘들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하고 믿었던 것입니다. 2. 약속에 근거해서 자녀들에게 축복을 한 것입니다. (창 27:27-29)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야곱을 섬기고 열국이 야곱에게 굴복하고 야곱이 자기의 형제들의 주가 되고 야곱의 어머니의 아들들이 야곱에게 굴복하고 야곱에게 저주하는 하는 저주를 받고 야곱에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이러한 축복의 기도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지금 형인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다시피 사고, 이제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형 에서의 옷을 몰래 입고, 손에는 털을 붙여서 아버지가 만졌을 때, 발각이 나지 않도록 한 야곱이 아니었습니까? 나중에 에서가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자기의 축복을 가로챈 것을 알고 아버지에게 야곱에게 한 축복을 무효화시키고 자기에게 그 축복을 해 달라고 했을 때, 아버지가 울부짖는 에서의 말대로 해 주지 못한 것을 볼 때, 야곱에게 해 준 축복의 기도는 단순히 인간의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고 원통해서 울부짖고 있는 에서를 위해서도 축복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의 내용을 보면 에서에 대한 안 좋은 내용의 기도인 것 같지만, 결국은 내 아우 야곱을 섬길 것이라는 기도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야곱에 대한 축복 기도의 연속인 것입니다. 아까 야곱에게는 어\'떤 축복을 해 주었지요? 야곱에 대한 축복기도나, 에서에 대한 축복기도나 그 내용은 모두 \'장차 올 일에 대하여\' 즉 \'하나님의 약속\'에 의거한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그 아들들을 생각하고 그 아들에게 적합하도록 자기의 생각대로 축복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축복을 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삭의 위대한 믿음의 내용인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바라보면, 자녀들이 부족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대부분 그럴 겁니다. 어떤 때는 자녀들이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답답해 보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의 아버지 이새도 그랬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서 이새의 집에 찾아 와서 아들들을 내게 보이라고 했을 때, 막내 다윗은 사무엘에게 보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자녀들 축복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찌라고 자녀를 축복하십시오. 자녀를 행위를 보고 축복하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에 근거해서 축복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감정에 따라, 우리의 판단에 따라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믿음이라면 아마 그 믿음을 갈대처럼 이리 저리 흔들릴 것입니다. 이러한 참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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