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바치자

♣ 주일설교 2004-09-12 ♣
히브리서 귀납적 강해(10)
\"믿음으로 바치자!\"



☜ 그림설명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00세 때 얻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순간, 천사를 통하여 말리시면서 수양을 대신 준비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진정으로 아브라함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한다는 것을 하나님으로 부터 인정받았습니다.



  / 히 11:17-19 / 권다니엘 목사 /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거론하면서 특히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의 믿음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믿음을 정말로 위대한 믿음이었고, 아브라함의 믿음이 결정체이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1. 시험을 받을 때에 바친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 2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100세 때에 아브라함이 얻는 아들을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이삭을 시험합니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시험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사단이 유혹하는 시험입니다. 영어로는 temptation 이라고 합니다. 뱀이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도록 시험한 거나 광야에서 40일 금식하는 예수님께 마귀가 나타나서 세 가지 시험을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유혹이라는 의미의 시험입니다.

   두 번째로 연단하는 의미에서의 시험입니다. 영어로는 trial 이라고 합니다.  벧전 4:12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에서의 시험이 바로 여기에 속하는 시험입니다.

   세 번째로 테스트라는 의미의 시험입니다.  영어로는 test라고 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 다 시험에 속합니다. 테스트라는 시험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성향과 능력 등을 알아보기 보기 위한 시험입니다. 운전면허 시럼이나 자격증 시험등이 바로 이런 시험이지요.

   아브라함이 받은 시험은 바로 세 번 째의 테스트라는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과연 나를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사랑하는지, 나를 진정으로 믿고 신뢰하는 지를 알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 22:1-2의 시험의 과제를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창 22:1-2)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은 100세 때에 기적으로 얻은 아들 이삭을 아브라함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더군다나 100세 때 얻은 아들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한 것입니다.

   오늘 날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질보다 권력보다 명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지, 친구들 보다 자녀들 보다 가족들 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지, 드디어는 내 몸보다 내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지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나도 급하게 쓸 데가 많은데, 하나님은 십일조를 바치라고 물질을 바치라고 시험을 하십니다. 내가 피곤하고 몸이 안 좋아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고 힘들어도, 좋은 날씨라서 야외에 나가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아주 바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공예배에 참석하는 가, 성수주일을 하는 가, 테스트를  하십니다.
    우리가 이 시험에서 합격해야만 믿음의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돈이 필요해서 하나님이 시험하십니까? 그 사람이 예배 때에 안 나오면 예배가 지장이 있어서 시험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험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험에 합격해서 하나님의 주시고자 하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시험을 pass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연단이라는 시험이 따라오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우선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복을 받을 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문제가 해결되고, 형통하기를 바라는 것, 다시 한 번 고려해 봐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멋지게 통과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는지요?
창 22:12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기쁨에 겨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 약속을 받았지만 바친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은 자이지만 독생자 이삭을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삭을 네 씨로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지만 하나님은 약속대로 아브라함이 100세 때에, 그 부인 사라가 90세 때에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기적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대로 기적적으로 100세에 얻은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고 하니, 마른 하늘에 날 벼락을 맞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바에는 아예 이삭을 주시지 말지, 누가 이삭을 달라고 했나? 약주고 병주고, 깊은 상처만 주고.. 이렇게 인간적으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런 생각을 하지를 않았던 것 같습니다. 창 22장 3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 다음 날 아침 일찌기 실천에 옮기는 발걸음을 띄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셨다 할찌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다시 바쳐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3. 살리실 줄 알고 바친 믿음이었습니다.

   즉 복구하실 줄고 바친 믿음이었습니다.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이삭을 죽이도록 내 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라고 아브라함이 생각했다. 왜냐하면 100세 때 하나님의 약속으로, 기적으로 주셨는데, 만일 이삭을 죽게 하신다면 왜 이삭을 태어나게 하셨을까?  단순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 하는 것을 보기 위함이다.
   재물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는 아들 이삭에게 하나님이 준비하셨다고 아브라함이 말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이삭대신 다른 제물을 준비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여유있게 이삭을 데리고 제사를 드리는 모리아 산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참 위험한 생각이요, 아브라함의 믿음을 평가절하하고 왜곡하는 생각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삭을 제물로 바칠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아니 이미 그는 마음으로 벌써 이삭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삭을 묶어놓고 제물로 이삭을 바치기 위해서 칼을 위에서부터 이삭을 향해 내릴 때,
내리면서 어 하나님이 분명히 다른 제물을 준비했을 텐데.. 지금까지 아무 말씀이 없어신가 하면서 주저 주저하며 머뭇거리면 주변을 살피면서 조금씩 조금씩 이삭을 향해서 칼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이미 결단했기 때문에 바치는 것입니다. 힘껏 칼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급하게 칼로 이삭을 찌려고 내렸는가 하면, 하나님이 너무나 급하셔서 아브라함을 두 번씩이나 급하게 부르셨습니다.

   (창 22:10-12)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그 후손을 잇는 약속의 자녀로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명령대로 이삭을 제물로 바친다 할찌라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이 죽으면 다른 자식을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통해서만 그 후손을 이어가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믿음입니다. 부활의 믿음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고 난 뒤의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긴 것처럼,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결과에 대해서 미리 이 것 저 것 따져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단을 밟으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을 때, 법궤를 맨 제사장들은 그냥 넘실거리는 요단 강물을 밟았습니다.  물이 좀 빠져야 밟을 텐데.. 주저하거나 망설이지를 않았습니다.  밟고 난 뒤의 결과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헌신하라는 명령을 받으면 그냥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겠지 하고 은근히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조금씩 헌신해 나간다면 자기가 원하는 결과가 속히 오지 않으면 헌신하다가 포기하게 됩니다.
   이렇게 교회도 나오고 헌금도 하니깐, 이제 하나님의 내 앞 길을 열어주시고 나에게 건강을 주시고 내 생업에 복을 주시겠지 하고 기대하고 나간다면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시험들고 불평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 이후의 일들은,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신앙을 포기하기 않으려고 풀무물에 던져지고, 다니엘도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그들은 그 이후의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다니엘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으면,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의 삶을 살 게 된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다가, 이 세상에서 보상을 못 받거나 손해을 당한다 할찌라도 천국의 상급과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고,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진정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이들은 너 나은 본향, 하늘에 준비된 성을 바라보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는 아브라함처럼 시험받을 때에 그 시험을 멋지게 pass합시다. 그리고 비록 약속을 받았지만 복구사실 줄 믿고 하나님이 바치라고 명하시는 서슴없이 바치시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