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나아가자


♣ 주일설교 2004-08-08 ♣
히브리서 귀납적 강해(6)
\"믿음으로 나아가자!\"



 / 히 11:8 / 권다니엘 목사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우리는 흔히들 아브라함을 생각할 때, 주눅이 듭니다. 그는 100세 때 낳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리아 산에서 바친 믿음의 조상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나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러질 못할 텐데...\'   \'아브라함은 나하고는 다른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합니다. 특히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교훈을 듣는 것을 회피합니다.
   그러나 그렇지를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나아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과연 믿음으로 고향이 메소보다미아 갈대아 우르를 떠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우리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창 12:1-4절을 제시합니다. 그 중에서도 1, 4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창 12: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그러나 창 12장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를 설명하는 부분이 아니라 하란을 떠날 때의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장 4절의 끝 부분을 보면 분명이 하란을 떠날 때라고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과연 믿음으로 떠났을까요?
우리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당시의 아브라함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데라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형제는 나홀과 하란입니다. 하란은 롯을 낫고 그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티그리스와 유브라데 강 사이의 남쪽에 위치한 비옥한 지역으로서 아브라함과 그 조상들의 고향입니다. 여기는 상업과 천문학, 점성술이 발달하였습니다.
따라서 갈대아 우르는 뛰어난 고대 문명과 아울러 우상 숭배가 성행하였습니다.
  이 당시에는 족장 사회였습니다. 족장은 곧 법이었습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우상을 만들어 팔았다면 자녀들도 우상을 섬겨온 것은 당연합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하는 일을 거역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브라함이 우상을 섬겼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가운데 있는 아브라함을 갈데아 우르에서 불러낸 것입니다.
   (행 7:2-4) “[2]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어느 날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전혀 알지 못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하십니다.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도 아니요,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꿈에 나타나셔서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분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권위와 권세가 있었습니다. 영광스러웠습니다. 아브라함로서는 그분의 명령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 데라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아버지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듣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듣고 아들 아브라함과 자부사라, 그리고 손자 롯을 데리고 고향을 마지 못해 떠납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다가 하란이라는 곳에 정착을 합니다. 여기서 데라는 죽습니다.

   전혀 믿음이 있거나 하나님을 알았거나 하나님을 믿지 않은 우상가운데 살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아브라함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 대해서 하나님은 믿음으로 고향을 떠났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엡 2:8-9)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붙드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고향에서 불러내셔 놓고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고향을 떠났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예수믿고 싶어서 믿은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믿고 싶지 않았는데도 할 수 없이 믿은 사람도 많습니다.

   교통사고 가운에서 목숨만 살려 주시면 나 예수님 믿겠습니다. 해서 마지 못해서 믿은 사람도 있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예수 믿은 사람도 있지요. 과거에 깡패 짓하고, 과거에 나쁜 짓하고, 하나님 욕하고 예수님 욕하다가 할 수 없지, 억지로 예수 믿은 사람도 있습니다.   속된 말로 막나니 짓은 골라 다 하다가 교회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하여튼 상관이 없습니다. 어떻게 교회 나오고 예수 믿게 되었든지 간에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을 향해 너는 믿음으로 나를 따랐다고 평가를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을 바라보기 전에 먼저 갈대아 우르에서 꺼집에 내신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 자리에 왔던지 간에 우리는 믿음으로 왔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선물로 주신 믿음, 은혜를 본질을 갖고 있는 믿음으로 온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기만 하는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