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제사를 드려라


♣주일설교 2004.7.18♣
히브리서 귀납적 강해(3)
\"믿음으로 제사를 드리자\"

 

/ 히11:4 / 권다니엘 목사 /


아벨처럼 짧게 살다가 어처구니 없이, 안타깝게 죽은 사람은 아마 성경에 찾기가 힘들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린 일 때문에 형 가인에게 미움을 사서 죽임을 당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창 4장의 본문을 아무리 살펴도 아벨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그는 아담의 둘째 아들로 양을 쳤으며, 하나님께 양의 첫 세끼로 제사를 드렸다가 가인에 살해를 당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큰 일을 했다거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역사를 이룬 믿음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아담의 아들이니 하나님의 큰 사명을 받을 만한 때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사람들이 퍼지기 시작하는 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여튼 이름도 없이 빛도 보지도 못하고 그것도 제사드린 일 때문에 죽은 아벨에  대해서 히브리서를 쓴 분은 믿음의 사람으로 가장 먼저 언급을 하고 있음에 우리는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성경에서 먼저 나온 인물이기 때문에 먼저 쓰여지기도 했지만 믿음의 장을 여는 히브리서 11장에 기라성같은 믿음의 인물중에 아벨의 이름이 거론이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핏 보면 뚜렷하게 믿음으로 핸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믿음으로 라고 언급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어떤 큰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이 아니라 제사드리는 일에, 즉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우리에게 제사에 대해서 예배에 대해서 가장 대표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아벨은 어떻게 제사를 드렸는가를 알기 위해서 아주 적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창세기 4장을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 가인과 아벨의 제물의 차이가 있는 것인가?

   가인 -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드림(창 4:3)
   아벨 -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림(창 4:4)
가인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땅의 소산을 드린 것이며, 아벨은 양을 쳤기 때문에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린 것입니다.(창 4:2)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짐승의 새끼를 잡아 바친 제물을 원하셨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근거로
  창 3:21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범죄한 뒤 자기들의 벗은 것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몸을 가리고 있는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가죽 옷을 만들어 입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죽 옷을 만들어 입하시기 위해서는 분명히 동물을 잡으셨고 그 동물은 피를 흘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흘리신 그 보혈로 인하여 죄인들의 죄가 가리워지고 용서함을 받았다는 복음을 예표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견해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너무나 비약적인 것입니다. 이 당시에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무화과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말라 비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튼튼하게 만들어 입히실 것은 짐승의 가죽이 가장 적합하셨을 것입니다.
  과거의 석기시대의 사람들의 옷이 무엇이었을까요? 직물이 나오기 전에는 다 짐승의 가죽을 입었을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그 곡식을 제물로 해서 제사를 드리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레 2:14)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여기서 소제는 바로 곡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물 대문에 가인의 제사를 받으시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2. 그렇다면 가인과 아벨의 제사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제물의 차이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가인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을까요?
  오늘 본문은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믿음으로 드렸기 때문에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의 아벨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어떤 믿음으로 드렸기에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1) 우선이 아벨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드리는 사람의 마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가인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창 4:4-5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벨과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고, 가인과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아벨은 자기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심히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받지 않으실 수도 있고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이요,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벨이 하나님에 대해서 화를 내었다는 사실은 그이 마음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마음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간적으로 보아 좋은 제물 즉 많은 헌금, 고가의 부동산, 아니 자기 재산의 전부를 바칠지라도 그 마음이 어떠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그것을 받으시냐 안 받으시냐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 속에 교만이 있으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기시 때문에 그 어떤 것을 바쳐도 받으시지를 않습니다.
  그 마음 속에 불순종이 있으면 하나님은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보다 좋아 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 사람이 바치시는 것은 받으시지를 않으십니다. 
  그 마음 속에 그 어떤 계략을 갖고 바치면 하나님이 받으시지를 않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채로, 분노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이 받으시지를 않습니다.
  형제와 화해하고 난 뒤에 하나님 앞에 가서 예물을 드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정결한 마음으로, 남하고의 막힌 담을 헌 마음으로, 순종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링컨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있을 때 한 할머니가 대통령집무실로 찾아와 대통령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당시 링컨은 남북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정적들의 비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비서가 보기에 특별한 용건이 없어 보여 설득해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마침 링컨이 나오다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대통령에게 잠깐이면 되니 잠시만 만나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할머니를 집무실로 모시고 가서 ‘할머니,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뜻밖에도 ‘저를 도와주실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대통령님께 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각하가 좋아하시는 과자를 만들어 가지고 왔습니다.’ 하면서 나라를 위해 너무 많이 수고하시는데 수고하시는 대통령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링컨은 모든 스트레스가 달아나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수고를 감당하는 링컨이 너무 고마워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과자로라도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과자 자체는 링컨에게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워온 할머니의 사랑과 정성은 링컨이 받고 있던 무거운 스트레스보다 컸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관심은 낳고, 관심은 이렇게 어떤 방법으로든지 표현됩니다. 그 할머니의 과자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 그 자체는 보잘 것이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사랑의 마음과 정성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기쁨으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2) 아벨의 삶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 하였다는 것입니다

   삶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 내용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하나님의 나의 예배를 받으시냐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네가 악을 행했기 때문에 너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 구체적인 가인의 삶을 알 수는 없지만, 가인이 악을 행하면 살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악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을 행하면 바로 그것이 악입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삶으로 생기는 소득으로 바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거짓말을 하고, 사기치고, 불의한 방법으로, 뇌물을 받고, 고리대금으로, 이렇게 해서 생긴 소득으로 바치는 것을 싫어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게 번 돈 자체가 더러워서기 보다는 그 사람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신 23:18)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롬 12:1)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제는 우리가 바치는 재물과 헌금이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제물입니다. 즉 우리의 삶이 바로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새벽기도 고추’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과 삶이 일치되지 않는 것을 빗대서 하는 말입니다. 어느 시골교회의 권사님이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갈 때 자주 남의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갔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상식도 인격도 너무 결여된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교회 예배에는 열심히 참석하고, 교회에서 하는 봉사에도 열심히 참석합니다. 교회 헌금도 잘 합니다. 그래서 집사, 권사, 장로의 직분도 받기도 어떤 분은 목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삶이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습니다. 어쩌면 그 믿음은 행함이 없기 때문에 죽은 믿음과 마찬가지 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말과 행함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은 바로 아벨 자신과 그 제물을 열납하셨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까? 물론 믿음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내 마음이 내 삶이 하나님이 받으시게 합당하다면 그것은 바로 나에게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벨은 바로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물질적인 제물뿐만 아니라 마음과 삶자체도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제물이 되dj 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