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화해와 실천

사사기강해(61) \"진정한 화해의 실천\"
 

  2004. 3. 24 / 수요설교 / 삿 21:16-24 / 권다니엘 목사 / 

   야베스 길르앗 처녀를 베냐민 지파의 남은 자들에게 주었지만 베냐민 지파의 200명은 여전히 아내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짜낸 해결책은 베냐민의 남은 200명으로 매년 실로에서 열리는 축제 때에 여자를 납치하도록 허락하는 것이었습니다 납득하기 힘든 이같은 해결책을 통해 결국 베냐민 지파의 600명은 모두 아내를 얻게 되었고 자손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먼저 베냐민의 회복을 위해 애를 쓴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모습을 살펴 보십시다.

1. 걱정하고 있습니다.

   [16] 회중 장로들이 가로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꼬 [17] 또 가로되 베냐민의 도망하여 면한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

   이스라엘 연합군이 베냐민을 쳐서 600명만 남고 다 죽였기 때문에, 남은 600명의 씨가 끊겨진다면, 이제 베냐민의 지파는 전멸하게 되기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600명에게 아내가 있어야 하는데, 이문 제를 놓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400명에게는 야베스 길르앗 거민의 처녀들을 빼앗아 와서 해결해 주었는데, 나머지 200명의 아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를 못해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2. 자기들의 딸을 베냐민 사람들의 아내로 줄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18]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그들이 베냐민 지파에 대해서 분노를 가졌기 때문에 베냐민 지파에게 딸을 주지 않겠다고 이스라엘 지파들이 맹세를 했기 때문에 자기의 딸들은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3. 그래서 그들은 또다른 해결책을 찾습니다.

   [19] 또 가로되 보라 벧엘 북편, 르보나 남편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편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도다 하고 [20] 베냐민 자손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그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 만일 그 아비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쟁론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첫 번째 해결책인 야베스 길르앗 거민을 쳐서 그 딸을 잡아와서 남은 베냐민 자손의 아내로 주었지만 200명이 가정을 이루지 못한 결과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또다은 해결책을 모색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방중에서 아니, 이스라엘 지파내에서 베냐민 지파에게 아내를 구해 주는 것인에, 바로 여인들을 납치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19절의 \'보라\'라는 말은 막다른 상황에서 기발한 생각이 떠 올았음을 나태내는 표현입니다.
   그 기발한 생각이란 베냐민 지파로 하여금 절기에 춤추러 나온 여자들을 납치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절기는 유월절, 무교절, 초삼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그리고 장막절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춤을 추며 지내는 절기는 나팔절과 장막절입니다. 나팔절은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도록 백성들을 일께우며, 구속, 즉 회개의 기쁨을 선포하는 축제로서 7월 1일에 지켰습니다. 그리고 장막절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고 수확에 감사하면서 7월 15일부터 7일간 지켰습니다. 이로 보건데 회중의 장로들이 제시한 여호와의 절기란 장막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일 납치당한 처녀들의 가족이 항의하러 오면 장로들인 자기들이 알아서 할테니 너희들은 걱정하지 말고 처녀들을 납치하라고 베냐민 지파에게 지시를 합니다. 즉 장로들이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처녀들을 납치당한 가족들이 우리가 베냐민 지파에게 \'딸들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맹세를 우리가 어기게 되지 않았느냐\'고 아주 강하게 장로들에게 항의를 할 경우, 장로들은 그들에게 할 말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입니까?
   처녀들을 납치당한 가족들에게, \"너희들이 자의대로 처녀를 베냐민 지파에게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맹세의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니, 너희들이 잘못한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22절을 다시 한 번 봅시다.
   [22] 만일 그 아비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쟁론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어때요? 이스라엘 장로들의 머리가 비상하지요.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까?

1. 아무리 목적이 좋다고 할찌라도 방법이 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1) 납치는 죄입니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는 폭력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들이 이것을 조장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하나님앞에서 죄를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2) 맹세를 파기했다는 것도 잘못한 것입니다.
     맹세는 약속이기 때문에 맹세를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은 맹세를 거스리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이는 엄밀하게 보면 맹세를 거스린 것입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어쨌든 이것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베냐민 지파에게 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꾀를 내어도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이 방식은 결코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는 자는 인간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에서 옳다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행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정만이 우리의 기준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베냐민의 지파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 주겠다는 생각은 좋지만 이들이 취한 방법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온전한 해결책이 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2.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묻지를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들이 베냐민을 치러갈 때에도 진정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지를 않았기 때문에 두 번이냐 패배하는 뼈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로서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드디어 베냐민 지파가 회복이 됩니다. 오늘 본문의 23, 24절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장로들이 내 놓은 방법에 따라, 베냐민의 남은 자들은 아내를 얻게 됩니다.
   [23]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 중에서 자기들의 수효대로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니라 [24]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곳을 떠나 각각 그 지파,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되 곧 각각 그곳에서 나와서 자기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아내를 얻지 못한 200명이 춤을 추러 나온 실로의 처녀들을 납치하여 아내를 삼음으로써 모두 아내를 얻게 된 베냐민 지파는 자기들의 성읍으로 돌아 갔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과의 싸움으로 황폐된 성읍을 다시 세우고 거함으로써 베냐민 지파는 안정을 찾게 되었고 이로써 이스라엘의 온 지파도 각기 처소로 돌아 갔습니다.

  어떻든지간에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의 진정한 화해의 실천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화해도, 화목도 하나님의 방법을 좇아서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