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의 처절한 패배

사사기강해(58) \"베냐민의 처절한 패배\"


  2004. 2. 25 / 수요설교 / 삿 20:36-48 / 권다니엘 목사 /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 연합군과 베냐민 지파사이에서 일어난 세 번째 전투에서 베냐민이 패배한 29-35절의 전투 상황을 다시한 번 상세하게 보충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세 번째 전투에서도 베냐민 지파는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병사들이 기브아 성읍을 치러 갑니다. 이 광경을 본 베냐민 병사들이 기브아 성에서 나와 이스라엘 병사들과 싸웁니다. 이스라엘 병사들은 도망을 칩니다. 베냐민 병사들은 신이 나서 뒤쫓아 가서 이스라엘 병사 30명 가량을 쳐 죽입니다. 이 때 성주변에 매복해 있던 이스라엘 병사들이 기브아 성읍에 들어가서 그 성을 칩니다. 그리고 연기를 피웁니다. 성읍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본 베냐민 병사들이 당황을 하지요. 이때 일부러 도망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뒤돌아서서 베냐민 병사들을 칩니다. 25,000명의 베냐민의 병사들이 죽음을 당합니다.
   이렇게 베냐민 지파가 패배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유의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것들을 살펴 보면서 우리의 영적인 싸움에 승리를 가져오는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1.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베냐민 군사들은 첫 번째. 두 번째의 이스라엘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했기 때문에, 세 번째 전투에서도 승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앞선 두 번의 전투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숨겨진 죄를 징계하는 차원에서 이스라엘로 패배케 하셨음데도 불구하고 베냐민은 자기들이 전쟁을 잘하고 뛰어나서 승리한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착각이요, 더 나아가서는 자만이었던 것입니다.

   이 자만이 상대를 우습게 여기게 만들었고, 드디어는 처절한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단과 싸움인 영적인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만은 패배를 가져오는 원인이 됩니다. 과거에도 이겼가 때문에 이번에는 이길 수 있다는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상대를 우습게 여기고 내 자신을 과대하게 평가하는 자만심으로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패배를 가져오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성을 함락시킨 후에, 작은 아이성에서 패배하게 된 것은 순전히 자만심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만심은 무섭습니다.

2. 내 마음을 먼저 지켜야 합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이 기브아 성을 향해서 싸우려고 오자, 성중에 있는 베냐민 군사들이 나와서 이스라엘 연합군을 칩니다. 30명이 가량을 죽입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도망을 치자, 도망치는 이스라엘 군사들을 우르르 쫓아 갑니다.  기브아 성에 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쫓아갑니다.
     성을 빼앗기면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성은 본부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전쟁터에 나가서 열심을 싸움을 한다고 하더라도 본부가 적의 손에 함락을 당하게 되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냥 패배해 버린 것입니다.   베냐민은 무엇보다도 본부인 기브아 성을 지켰어야 합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우리의 본부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그러므로 먼저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마음의 연약한 부분, 금간 부분을 타고 들어옵니다.
   (잠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의 영적인 싸움의 본부인 우리의 마음을 무엇보다도 먼저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왜 마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적에게 빼앗기면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 따르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자기의 마음을 지키고 다스리는 자는, 용사가 되어서 남의 성을 빼앗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교훈입니다.

   이미 우리의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질 때는 우리가 갖고 있는 영적인 무기는 필요가 없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부가 함락되었는데, 갖고 있는 무기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1) 두려움에 싸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걱정, 근심, 염려..   이런 것들이 마음에 두려움을 주게 됩니다.
  2)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인간관계, 하나님에 대한 불신, ..
  3) 죄악에 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죄는 사단에게 우리의 마음의 빗장을 확 열어 주도록 합니다.

3. 정세를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 성에서 나가서 이스라엘 연합군을 쳐서 30명 가량을 죽였을 때, 이스라엘 연합군을 아무 것도 아니구나, 이번에도 이겼어 하고 쉽게 정세를 판단하고 말았습니다. 싸움이라는 것은 복잡은 요소들이 얽혀 있습니다. 몇 사람 죽었다고 신난다 만세를 부르고 걷다가 몇 발자국 안나가서 지뢰를 밟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IMF가 왔을 때, 한국의 경제가 너무 일찍 승리의 샴패인을 터뜨렸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영적인 싸움에서는 정확하고 신중한 그리고도 냉철한 정세판단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령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잘 나간다고 해서 막나가다가는 지뢰를 밟을 수가 있으며, 함정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사단은 앞길에 지뢰를 묻어두고, 함정을 파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잘 나가는 교회일수록 더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날 잘나간다고 막 나가다가 지뢰를 밟았거나, 함정에 빠진 교회들이 적지가 않습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엉거주춤한 상태에 놓여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것들이 아직까지는 감추어져 있어서 그렇지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만약 드러나게 되면 정치권 이상의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잘된다고 편안해하거나 안일하게 안주하고 있어면 안됩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4. 상대방의 전술을 파악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복병을 사용하는구나, 성안의 군사들을 유인하고 난 뒤에 성을 점령하려고 하는구나 라는 상대방의 전술을 파악하지 못해서 패배하고 만 것이 베냐민 군사들이었습니다.
   중국의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전술을 아는 것이 전쟁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영적인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사단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단의 전술 전략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다.

1)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사단이 어떻게 인간들을 무너뜨렸는가 하는 전략과 전술들이 나타나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것을 보고 명심해서 사단을 이기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사단이 어떻게 하와를 미혹했는가? 사단이 어떻게 가인에게 아벨을 죽이도록 마음을 부추겼는가? 다윗이 어떻게 사단에 무너지고 말았는가?  등등 수많은 사단의 전략 전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깊이 있게 알고,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2)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성령께서 조명하십니다. 우리 마음의 잘못되고 죄악된 것을 조명하셔서 깨닫게 하시기도 하지만, 사단의 무서운, 교활한 의도와 전략을 조망하셔서 우리도 그것을 깨닫고 방비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는 사단에게 쉽게 패배하지를 않습니다.
3) 주의 종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의 종들은 목자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양으로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양들을 사랑하셔서 주의 종들에게 분별력과 예지력을 주십니다. 
  성령의 지혜라고도 할 수도 있고, 영적인 통찰력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일반 성도들에게 주시는 것과는 달리 양들을 맡은 목자들에게만 주시는 독툭한 은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목자의 마음을 가진 목자에게만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목자 다윗이 양들을 들짐승이 물고 갔을 때, 끝까지 쫓아가서 사자의 입을 벌리고, 곰을 쳐서 쓰려뜨려서 양들을 찾아오기 위한 은사들입니다. 목자들은 양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고,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에게는 양들을 넘어뜨리려는 사단의 간교한 전략과 전술들이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목회자들을 제일 싫어 하지요.
 주의 종의 말을 귀담아 들어십시오. 여러분에게 결코 손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암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나님께서 그 종들에게 양에게 행할 일을 보이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가 양들을 위해서입니다. 양들이 실패하거나 잘못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가 종들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에게 하나님께서 권위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침략하기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 작전을 다 세우면 이스라엘에서 그 작전을 다 알고 금방 방비를 해서 도저히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이고 작전을 수행했지만 그때마다 이스라엘이 길목에 지키고 방비를 하고 있어서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말하기를 엘리사라고 하는 선지자가 왕이 침상에서 하는 말이라도 듣고 심지어는 왕이 마음에 생각하는 것도 그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를 잡기 위해서 많은 말과 병거와 군사를 보내서 그의 성을 에워쌌습니다.
   엘리사 선지자 한 사람이 적은 전략을 전술을 꿰뚫어 보니깐 적이 이스라엘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의 종의 말을 청종하면 여러분들이 영적인 싸움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을 것입니다.

5. 앞뒤좌우를 동시에 보아야 합니다.

   싸움은 한 방향을 보면서 싸우서는 안됩니다. 한 방향을 보면 속기가 쉽고 적의 치명적인 공격을 받기가 쉽습니다. 베냐민은 도망가는 이스라엘 군사들만 바라보고 쫓아갔던 것입니다.
   바둑을 두게 되면 전체를 보는 자세가 아주 중요합니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일 수도록 한 방향만을 보고 돌을 놓기가 바쁩니다. 내 돌이 살기 위해서라든지, 상대방의 돌을 잡기 위해서라든지 말입니다.
   그러나 실력이 쌓일 수도록 전체를 보게 됩니다. 물론 내 돌이 살고, 상대방의 돌을 잡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것이 전체적인 상황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방의 속임수도 알게 되고, 상대방의 전략도 파악하게 됩니다.
   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만 잘 간다고 운전을 잘하는 것이 아니지요. 앞뒤 좌우를 동시에 보아야 합니다. 사고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내차가 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차를 보고 방어운전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 어떤 중요한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앞 뒤 좌우를 살펴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실수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싸움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앞뒤 좌우를 바라보아야만 판세와 정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치열한 전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마음에 새겨 승리하시는 은총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