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2. 11 / 수요설교 / 삿 20:17-28 / 권다니엘 목사 /
이스라엘의 총회의 결과에 따라 기브아의 비류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넘겨 달라고 베냐민 지파에게 요구를 했지만 베냐민 지파는 그 요구를 거절하고 이스라엘 지파들과 싸우기 위한 전쟁을 준비합니다. 이리하여 동족간의 전쟁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베냐민 지파를 뺀 이스라엘 11지파의 연합군은 군인의 수가 40만명이나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6700명의 군사를 갖고 있는 베냐민 지파가 먼저 전쟁을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누구든지 이스라엘 연합군이 쉽게 이길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두 번이나 전쟁을 했지만 두 번 다 이스라엘 연합군의 패배로 끝나버기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더 큰 충격은 두 번다 하나님께 묻고 응답을 받고 나간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연합군이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혼란스럽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 사건을 이해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우선 본문을 다시 한 번 살려 봅시다.
40만명의 엄청난 숫자의 군인 집결한 이스라엘 연합군은 베냐민 지파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베냐민 지파는 비록 수적으로 열세에 있었지만 한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일전을 준비합니다. 베냐민 지파의 한 순간의 만용으로 말미암아 민족 상잔의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불가피한 전쟁을 치르게 된 이스라엘 자손은 전쟁하러 나가기 전에 엎드려 하나님께 묻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18절 상반절).
일을 하기 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아름다운 신앙 자세입니다. 일의 계획을 사람이 세운다 하여도 그 과정과 결과를 이끄시는 분은 오직 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 응답하십니다.
\"유다가 먼저일지니라\"(18절 하반절).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이스라엘 연합군은 용기 백배하여 단숨에 기브아로 올라갑니다. 따 놓은 단상인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의외의 결과가 벌어지고 맙니다.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21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베냐민의 예리한 칼날에 이스라엘 용사들 이만 이천명의 목이 날아갔습니다. 엄청난 참패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 받고 나서 나간 싸움인데 지고 말다니! 이스라엘 자손은 뜻밖의 결과에 충격을 받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하나님 앞에서 목놓아 웁니다
그렇다고 아예 주저 않지는 않고 다시금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23절 중반절). 이에 다시 주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올라가서 치라\"(23절 하반절). 첫 전투에서 참패한 이스라엘 용사들은 비장한 각오로 두 번째 전투를 위해 달려나갑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주께서 올라가서 싸우라고 하셨으니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두 번째 전투 역시 참패로 끝나고 맙니다.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25절).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하나님을 등에 업고 싸운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다니! 아마 이스라엘은 큰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불의를 행하고 불의에 동참한 강퍅한 베냐민 지파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는 게 하나남의 뜻이란 말인가? 대체 하나님은 누구의 편입니까?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이 나가서 싸우라고 해놓고 연거푸 두 번씩이나 참패를 안겨 준 예가 없습니다. 아마 우리가 그 당시 이스라엘의 입장에 있었더라면 단단히 시험 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이럴 수가 있어요? 언제는 나가서 싸우라고 해놓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다니요? 격앙된 어조로 원망하며 시험에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회의가 들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1. 이스라엘 지파의 죄때문입니다.
주님의 지시를 따라 나간 싸움에서 사만명의 목숨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베냐민 지파 편인가?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예리하게 살아 움직임을 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옳은 일에 목숨을 걸고 나선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 번씩이나 돕지 않았을까요? 사만명의 목숨을 빼앗아 가시려면 아예 처음부터 싸움을 말리시거나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에 응답을 하시지나 말던지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보아야 이 난제가 풀어집니다. 사사기18-19장에서 보여진 가증한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미가.의 집에 세우신 신상, 그리고 그 일은 맡은 레위 소년, 그것을 탈취해가서 그 우상을 섬긴 단 지파, 그것을 연유로 온 이스라엘에 우상이 퍼지는 결과가 나왔던 것입니다.
불의를 행한 베냐민 지파도 징계를 받아야 하지만 그것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온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대한 징계입니다. 회개의 경종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강한 메시지가 두 번에 걸친 참패로 나타난 사만명의 죽음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개죽음 당한 사만명이 아닙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징계의 채찍을 들어 본보기로 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십니다. 쓸데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즐기시지 않으십니다. 가증한 우상 숭배로 매를 번 이스라엘 자손들을 놔두시지 않고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을 통해 무섭게 징계하셨습니다. 죄를 짓고는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지은 죄에 대한 회개를 하여 살던지 아니면 징계의 채찍을 맞고 나서 뒤늦게 참회하던지 둘 중에 한가지를 택해야 살 수 있습니다. 두 번씩이나 겪은 참패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26절).
번제와 화목제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죄의 용서를 구하고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여지기를 원하는 제사였던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 차례의 참패를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았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뒤늦게나마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살펴 보십시다.
[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 일지니라
1) 과연 베냐민과의 전쟁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를 먼저 물었어야 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지파들은 베냐민이 우리를 치려고 전쟁을 준비했기 때문에 우리 연합군이 베냐민을 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자기들의 생각을 먼저 베이스에 깔고 하나님께 누가 먼저 나가서 싸워야 할 것을 물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정확하게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중에 어쩌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 이 일을 하는 것이 좋을까요? 말까요?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는데, 이것은 묻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일을 벌여 놓고 잘되게 해 주세요 라든지.. 이 일이 잘되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할까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기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마 이렇게 기도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잠언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계획 단계부터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베냐민을 원수처럼 여기고 물었습니다.
물론 두 번째 전쟁에 나아가기 위해서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살펴 보면 첫 번째 기도보다는 달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베냐민 앞에 나의 형제라는 말을 붙입니다. 그리고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묻습니다. 매우 달라진 기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는 원수가 아닙니다. 자기의 동족입니다. 그러므로 동족끼리는 싸우지를 말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싸우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도 동족끼리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 총회의 결정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 할찌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베냐민 지파가 기브아의 비류들을 넘기지 않고 도리어 전쟁을 하려고 준비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마 이렇게 물었다면 하나님의 답변이 어떻게 나왔을까요?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 상황 속에서는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더 좋은 해결의 방법을 제시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날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그 능력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문제를 제출해 놓고 그 보기 안에서 답을 하나 선택하도록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두 번이나 패하고서야 하나님 앞에 회개의 제단을 쌓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올립니다.
[28]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나의 형제 베냐민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이제 싸우겠다는 생각이 앞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싸우라면 싸우고 싸우지 말라면 싸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자기의 생각, 자기의 분노, 자기의 감정, 자기의 전략.... 이제 다 내려 놓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겠습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우리는 항상 겸손과 사랑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공동체를 바로 세우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